이토록 완벽한 천재들.. '매너리즘'이 이해간다
이준희 입력 2018.06.28. 14:39
[오마이뉴스 이준희 기자]
르네상스 후기로 접어들면서 사실적인 인체의 표현과 원근법의 사용, 안정적인 구도로 조화와 완벽함을 추구하던 르네상스의 그림이 변화하기 시작한다. 완벽함을 추구하던 천재 작가들이 마침내 그 완벽함을 이루어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아름다울 수 없는 인간의 모습과 더 이상 이룰 수 없는 조화와 예술적 기교의 끝은 완벽함을 넘어 극한을 향한 인위적인 실험으로 향했다. 얼굴과 신체를 길게 늘어뜨리고 자세를 뒤틀었으며 손을 부각시키고 우아함을 강조했다. 또한 안정적인 구도를 벗어나 그림으로 표현될 수 있는 한정된 공간에 대상들을 구겨 넣고 원근법을 과장되게 적용함으로써 사실적인 공간적 감각을 무너뜨렸다.
이러한 특징은 르네상스의 완벽함을 이루어낸 천재 작가들의 후기 작품에서 나타나기 시작해 이후 여러 작가들에게 이어졌는데 이러한 특징의 그림들을 매너리즘이라 불렀다. 이 명칭에는, 천재 작가, 특히 미켈란젤로가 이루어낸 인간의 신체와 근육에 대한 탐구, 특히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독특한 자세의 표현을 통해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고자 한 천재 작가의 예술을 보면서 그 기교만을 흉내내고자 한 후대 작가들의 접근방식을 비판하는 의미가 섞여있다.
하지만 완벽함을 옳은 것이라고 판단하는 고전적인 잣대로만 봤을 때 매너리즘을 비판할 수 있을지 모르나 작가의 개성과 새로운 실험을 권장하는 모더니즘의 관점에서 봤을 때 매너리즘은 오히려 현대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미켈란젤로 '최후의 심판'
▲ 최후의 심판, 1536-41 미켈란젤로 Source: Wikimedia Commons |
ⓒ 바티칸 뮤지엄 시스티나 성당 |
최후의 심판이라는 엄중하고 긴장감이 넘치는 순간에 과연 어느 누가 느긋하고 평온한 수 있겠는가. 특히 가운데 위치한 신의 분노한 듯한 모습을 마주했을 때 어느 누구도, 심지어 바로 옆의 성모마저도 그 분노를 피하고자 얼굴을 돌리고 있는 모습이고 주변을 둘러싼 성자들 또한 누구 하나 당당하고 자신감에 넘칠 수는 없는 듯하다.
하물며 필사적으로 살아남고자 몸부림치는 인간들의 누드는 공포스러우면서도 긴박한 상황을 표현하는 데 조금도 모자라 보이지 않는다.
배경이나 상징, 또는 색의 과감한 사용이 전혀 없이 오로지 몸의 움직임과 자세를 통해 가장 공포스럽고 필사적인 순간을 표현해낸 것이다. 어찌 보면 '천지 창조'의 순간과 완전한 대조를 이룬다고도 할 수 있는데, 이것이 그림에 효과적으로 표현된 것은 바로 신체의 아름다움 보다는 신체의 뒤틀림, 과장된 동작을 통해 가능한 것이었다. 이러한 선택은 결국 작가 개인의 미술적 성취의 측면에서도, 최후의 심판이라는 그림의 주제의 측면에서도 더 없이 적절한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라파엘 '그리스도의 면모'
▲ The Transfiguration, 1518-20 라파엘 Source: Wikimedia Commons, Author: Alvesgaspar |
ⓒ Pinacoteca, Vatican |
특히 그림 아래 사람들의 동작과 표정에서 부자연스럽고 과장된 듯한, 연극의 한 장면과 같은 느낌이 강하다. 전체적으로 고른 톤에 안정적인 구도와 인물들의 편안한 자세와 표정, 부드럽고 절제된 색의 사용을 특징으로 했던 라파엘의 그림은 이 작품에서는 거의 정반대로 방향을 튼 듯한 인상까지 준다.
명암이 부분적으로 과장되게 사용되었고 자세와 동작, 표정은 극적이고 과하며 색깔도 화려하고 선명하다. 하늘로 오르는 예수의 옷과 주변이 흰색으로 처리된 것과 달리 그 아래 인간들의 옷은 화려하고 현란하다. 구도 또한 윗부분이 다소 안정적인 구도인데 반해 아랫 부분의 인간들은 거의 뒤엉키다시피 빽빽하게 모여있다.
워낙 선대와 당대 작가들의 그림에 많은 영향을 받아 결국은 자신만의 것으로 표현하는데 능했던 라파엘답게 그의 후기 작품은 모든 예술적 기교를 종합하여 표현한 듯한 느낌이 든다. 이것은 이미 최고의 아름다움을 표현해낸 천재 작가만이 할 수 있는 여유로운 모습이자 자신의 성취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열정적인 모습이기도 한데 라파엘이기에 가능한 것이리라 짐작된다.
따라서 르네상스의 천재 작가들의 뒤를 이은 후기의 작가들이 매너리즘에 빠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물론 후대에 길이 남을 훌륭한 작가의 그림에 필수적인 자신만의 색깔이 부족한 경우에는 단지 매너리즘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이는 곧 매너리즘이 자연스러운 흐름이었으나 계속될 수는 없었던, 잠시 머물다 말 수밖에 없었던 한계를 설명해주기도 한다.
▲ Madonna of the Long Neck, 1534-40 파르미지아니노 Source: Wikimedia Commons |
ⓒ Uffizi Gallery |
의자에 앉은 자세 또한 뒤틀리고 어색하며 성모의 무릎에 비스듬히 누운 아기 예수도 부자연스러워 보이기는 마찬가지이다. 배경의 기둥과 기둥 옆의 인물은 상대적으로 너무 작아 공간적인 사실감을 전혀 느끼지 못하겠는데 이는 모두 완벽함을 위한 법칙들을 철저히 무시하고 인위적이고 왜곡된 효과를 주기 위한 의도적인 선택의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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