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실/역사의기록

아아 ! ! 잊으랴. 어찌 우리 그날을

淸潭 2018. 6. 23. 09:30



6.25 한국전쟁 사진 자료 / '6.25의 노래'와 악보

 

2번의 좌파정권, 10년동안 부르지 못하게 해서 사라질 뻔 했던 노래...

다시는 민족의 비극을 당하지 않겠다는 결단의 노래...6.25노래를 부릅시다.

야만과 폭정은 야만과 폭정이 자리잡을 만한 곳에 자리잡습니다.

우리 민족이 6.25남침사건을 잊고 있으면 6.25는 다시 고개를 쳐들 것입니다.

우리들의 아이들에게 6.25의 노래를 가르칩시다.

비참하게 당했던 세월들을 잊지않게 해야 합니다.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버지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말하리로다.

-신명기 32장 7절 말씀-

 

1. 아아...잊으랴. 어찌 우리 그 날을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맨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내어

발을 굴러 땅을 치며 의분에 떤 날을

 

2. 아아...잊으랴. 어찌 우리 그 날을

불의의 역도들을, 멧도적 오랑캐를,

하늘의 힘을 빌어 모조리 쳐 부수어

흘려온 값진 피의 원한을 풀으리.

 

3. 아아...잊으랴. 어찌 우리 그 날을

정의는 이기는 것, 이기고야 마는 것.

자유를 위하여서 싸우고 또 싸워 

다시는 이런 날이 오지 않게 하리

 

후렴>이제야 갚으리 그날의 원수를 쫓기는 적의 무리 쫓고 또 쫓아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 이제 빛내리 이 나라 이 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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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를 38도선 이남과 이북으로 갈라 한쪽은 김일성이 하나님자리에 올랐고,

다른 한쪽, 곧 우리가 살고 있는 남쪽은 하나님을 섬기는 교회들이 자유롭게 신앙생활하는 나라가 된 것은,.

우리들의 공로가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던 것이다. 아무 죄없이 북쪽에 남아있던 백성들은..

굶기를 밥먹듯 하고 인간을 하나님처럼 모셔야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는

지구에서도 흔치 않은 야만정치의 포로들이 되고 말았다.

북한주민의 오늘 날 불행이 북한주민의 잘못이 아니듯,

대한민국 국민의 풍요와 자유가 남한주민의 공로로 인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북한 주민을 위해 반공과 북한인권에 대하여 맹렬할 이유가 충분하다.

 

조국과 민족앞에 진정 행동하는 양심이라면 다시는 이러한 6.25사변이 일어나지 않도록..

반공의식을 새롭게 고취하여

후손에게 살기좋은 미래를 유산으로 물려주어야 하리라.

 

 

 

 

 

1947년 5월 1일 노동절날 죄익단체들의 행사모습. 당시엔 행사가 좌우익으로 나뉘어 치러졌다.

작금의 좌파성향의 단체와 개인들이 배부른 이 나라에 살면서, 백성들을 굶어죽이는 김정일을 찬양하고 위원장이라 깍듯이 부르면서도

자기나라 대통령은 쥐박이라고 하면서 서슴없이 욕설을 하는 현상이 마치 해방 후  전쟁전의 양상과 너무도 흡사하여

역사의식을 가진 識者들을 근심하게 하고 있다.

주적개념조차 없는 무지한 반골 좌파들이 정권을 공격하고 국론을 흔들어대면 결국,

험한 국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반공법을 재정비 강화하여 나라의 사상과 기강을 바로 잡고

다시는 제 2의 6.25가 일어나지 않도록 위기의식을 새롭게 하여 국민과 정부는 역사와 후손앞에 헌신되어야 한다.

 

 

 

 

 

 

 

1951년 7월 3일. 중공군과 합류한 공산군과 치열한 전투에서 부상한 샘 아얄라 상병이 후송을 기다리고 있다. 그 옆에는 카튜사한국병사.

 

전쟁은 아무 것도 가리지 않고 파괴하여 피폐한 삶을 남겨둔다. 다시는 이러한 민족적 비극이 재현되지 않도록,.

투철한 반공정신으로 애국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우리 민족끼리라는 어설픈 감상적 민족주의는 참으로 위험천만한 것이다.

북은 변하지 않았다. 변할 수도 없다. 북한동포를 위해서라도 반공은 우리 풍족한 대한민국 국민의 사명이며 몫이다.

 

1951년 1월 25일 수원시 화성에 소재한 장안문은 공산군의 포격으로 심하게 훼손되었다.

 

1950년 9월초, 대구 학도의용군 병사들이 보급품을 받으면서 전장에 투입되기 직전 최소한의 교육을 받고 있다.

20세를 전후한 대한의 아들들...귀한 가문의 금지옥엽같은 아들들...이들의 애국적 헌신으로 대한민국은 지켜졌다.

 

1950년 8월 중순 경남 창녕군 영산지역전투에서 참패한 북한군이 물러나면서 밤이면 나타나 양민을 괴롭혔다.

낮에는 조용하다가 밤만되면 나타나 무법천지가 되어 공포에 떨던 주민들이 북한공산군을 피해 피난을 가다가 발각되어 학살 당한 모습.

 

1951.10.1. 서울수복 후에 발견된 전쟁고아들.. 전쟁의 폐허더미를 헤매다가 유엔 복지담당관에 의해 시립보육원으로 보내기 전.. 

 

북한군포로 신상명세를 타자기로 작성하는 중, 누가 이 청년들을 죽음의 현장으로 내 몰았는가?

 

구덩이에 버려진 시체들..우리들의 정겨운 가족들이 어느 날 공산군의 남침으로 참혹한 피해자들이 되었다.

 

다리 밑에 응달에 몸을 피해 잠시 쉬고 있는 피난민 가족들.

 

포격에 가족을 잃고 피난 길에 홀로 남겨진 아이가 누군가 밥한술을 놓고 간 뒤에 홀로 울고 있다.

 

나뒹구는 시체들. 6.25사변으로 행불처리된 사람들은 모두 이렇게 한반도 곳곳에서 죽고 썩어갔다.

 

아무렇게나 버려진 소년들의 시신들. 전쟁이 얼마나 잔혹한 것인지를 말해주고 있다.

전쟁은 전쟁을 두려워 하며 피하려는 백성에게 찾아오고

기꺼이 惡과 싸워 생명을 바치겠다는 백성에게는 덤벼들지 못한다.

공산주의 앞에 깨어있지 않고 반미친북하는 어리석은 편향적 민족주의 환상은 제 2의 6.25를 부를 수 있다.

 

공산군은 후퇴를 하면서 경찰가족, 공무원가족, 신앙인 등을 무차별 학살한 뒤 식수원도 끊을 겸 우물에 던졌다.

 

완전 폐허가 된 마을 - 1951. 4. 서울근교 

 

공산군에게 학살 당한 시체 가운데 남편을 찾고 있는 부인. 뒷줄엔 처리반원들이 악취로 인하여 코를 막고 있다.

 

시체가운데 가족을 찾는 생존가족들의 표정이 담담하다.

 

북한이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두 개의 좌파정권 10년 간 부르지 못하게 했던 6.25노래

1. 아아...잊으랴. 어찌 우리 그 날을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맨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내어

발을 굴러 땅을 치며 의분에 떤 날을

 

2. 아아...잊으랴. 어찌 우리 그 날을

불의의 역도들을, 멧도적 오랑캐를,

하늘의 힘을 빌어 모조리 쳐 부수어

흘려온 값진 피의 원한을 풀으리.

 

3. 아아...잊으랴. 어찌 우리 그 날을

정의는 이기는 것, 이기고야 마는 것.

자유를 위하여서 싸우고 또 싸워 

다시는 이런 날이 오지 않게 하리

 

후렴>이제야 갚으리 그날의 원수를 쫓기는 적의 무리 쫓고 또 쫓아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 이제 빛내리 이 나라 이 겨레.

 

(당부의 말씀)

이 노래를 자녀들에게 가르칩시다.

다시는 후손들이 6.25사변의 비극을 당하지 않도록, . .

-write by solle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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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설레임| 원글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