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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태주 시인의[어머니가 남긴 글]

淸潭 2017. 10. 30. 21:38



아들아, 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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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원체 배우지 못했다.


호미 잡는 것보다 글쓰는 것이 천만배 고되다.


그리 알고, 서툴게 썼더라도 너는 새겨서 읽으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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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유품을 뒤적여 네가 이 편지를 수습할때면 나는 이미 다른세상에


가있을 것이다. 서러워할 일도 가슴칠 일도 아니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왔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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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도 산것이 아니고, 죽어도 죽으것이 아닌것도 있다.


살려서 간직하는건 산 사람의 몫이다. 그러니 무엇을 슬퍼한단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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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옛날 사람이라서 주어진 대로 살았다.


마음대로라는게 애당초 없는 줄 알고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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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낳을때는 힘들었지만, 낳고 보니 정답고 의지가 돼서 좋았고,


들에나가 돌밭을 고를때는 고단했지만, 밭이랑에서 당근이며


무며 감자알이 통통하게 몰려나올때


내가 조물주인 것처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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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꽃은 얼마나 예쁘더냐, 양파꽃은 얼마나 환하더냐,


나는 도라지 씨를 일부러 넘치게 뿌렸다.


그 자태고운 도라지꽃들이 무리지어 넘실거릴때 내게는 그곳이 극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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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뿌리고 기르고 거두었으니 이것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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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뜻이 없다.


그런걸 내세울 지혜가 있을리 없다.


나는 밥지어 먹이는 것으로 내 소임을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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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오면 여린쑥을 뜯어다 된장국을 끓였고


여름에는 강에 나가 재첩 한 소쿠리 얻어다 맑은 국을 끓였다.


가을에는 미꾸라지를 무쇠솥에 삶아 추어탕을 끓였고


겨울에는 가을무를 썰어 칼칼한 동태탕을 긇여냈다.


이것이 내삶의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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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책줄이라도 읽었으니 나를 헤어릴것이다.


너 어렸을적, 네가 나에게 맺힌듯이 물었었다.


이장집 잔치 마당에서 일돕던 다른 여편네들은 제새끼를 불러


전 나부랭이며 유밀과 부스러기를 주섬주섬 챙겨 먹일때


엄마는 왜 못본척 나를 외면했느냐고 내게 따져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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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태 대답하지 않았다.


높은사람들이 만든 세상의 지엄한 윤리와 법도를 나는 모른다.


그저 사람사는데는 인정과 도리가 있어야한다는 것만 겨우 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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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여식이지만 나는 그에 맞는 예의를 보이려고 했다.


그것은 가난과 상관없는 나의 인정이었고 도리였다.


그런데 네가 그 일을 서러워하며 물을 때마다


나도 가만히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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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할수록 두고두고 잘못한 일이 되었다.


내도리의 값어치보다 네 입에 들어가는 떡 한점이


더 지엄하고 존귀하다는걸


애미로서 너무 늦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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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슴에 박힌 멍울이다.


이미 용서했더라도 애미를 용서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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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박하기 그지없다.


네가 어미사는것을 보았듯이


산다는것은 종잡을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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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망하기가 한여름 날씨 같아서


비내리겠다 싶은 날은 해가나고


맑구나 싶은날은 느닷없이 소낙비가 들이닥친다.


나는 새벽마다 물 한그릇 올리고


촛불한자루 밝혀서


천지신명께 기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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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수소관의 변덕을 어쩌진 못해도 아주 못살게


하지는 않을거라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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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살이 센 강을 건널때는 물살을 따라 같이 흐르면서


건너야한다.


너는 네가 세운 뜻으로 너를 가두지 말고


네가 정한 잣대로 남을 아프게 하지도 마라.


네가 아프면 남도 아프고, 남이 힘들면 너도 힘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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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롭고 이롭고를 이것을 기준으로 삼으면


아무탈이 없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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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거 별게 없다.


속끓이지말고 살아라.


너는 이 애미처럼애태우고 참으며 제속을 파먹고 살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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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날이 있을것이다.


힘든 날도 참지 말고 울음을 꺼내 울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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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없이 좋은 날도 있을것이다.


그런날은 참지 말고 기뻐하고 자랑하고 다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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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것은 욕심을 내면 호락호락 곁을 내주지 않지만


욕심을 덜면 봄볕에 담벼락 허물어지듯이


허술하고 다정한 구석을 내보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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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거 없다.


체면차리지 말고 살아라.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없고 귀천이 따로없는 세상이니


네가 너의 존엄을 세우면 그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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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녀자들이 알곡의 티끌을 고를때


키를 높이 들고 바람에 까분다.


뉘를 고를때는 키를 가까이 끌어당겨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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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끌은 가벼우니 멀리 날려보내려고 그러는 것이고


뉘는 자세히 보아야 하니 그런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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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치가 이와 다르지 않더구나.


부질없고 쓸모없는 것들은 담아두지 말고


바람부는 언덕배기에 올라 날려보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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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라면 지극히 살피고


몸을 가까이 기울이면 된다.


어려울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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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네가 남보란듯이 잘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억척떨며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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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롭지 않게, 마음가는대로 순순하게


수월하게 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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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곤하고 희미하구나.


자주 준비가 다녀갔지만 맑게 갠 날,


사이사이 살구꽃이 피고 수수가 여물고


단풍물이 들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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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대로 괜찮았다.


그러니 내삶을 가여워하지도 애달파하지도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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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질없이 길게 말했다.


살아서 한번도 해본 적없는 말을 여기에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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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를 사랑으로 낳아서


사랑으로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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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자식으로 와주어서 고맙고 염치없었다.


너는 정성껏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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