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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야만리성(一夜萬里城)

淸潭 2017. 5. 13. 11:45

일야만리성(一夜萬里城)

 

[요약] (: 한 일. : 밤 야. : 일만 만. : 거리 리. : 성 성)

하룻밤을 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는 뜻으로, 하룻밤의 인연이라도 만리장성을 쌓을 만큼의 큰 일일 수 있으므로 신중해야 한다는 교훈으로 쓰이는 속담 설화. 남녀관계로 쓰일 때에는 하루 밤이라도 깊은 정을 맺을 수 있다는 말.

[출전] 송남잡지(松南雜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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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중국에 맹강녀(孟姜女)의 전설이 한국에 전파되어 하룻밤 만리장성(一夜萬里城)’말이 생겼는데 한국의 원 뜻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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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 만리장성(一夜萬里城)’의 본뜻은 지금 알려진 남녀간의 하룻밤 사랑과 전혀 관계없는 말이었다.

다산 정약용이 모은 속담집 이담속찬(耳談續纂)을 보면 일야지숙장성혹축(一夜之宿長城或築)’이라는 글이 있다. 그러나 다산의 뜻풀이는 요즘 통용되는 하룻밤 만리장성설화와 천양지차다. ‘비록 잠시라도 마땅히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雖暫時之須不宜無備)는 것이다. 한마디로 유비무환의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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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학자 조재삼이 엮은 (송남잡지(松南雜識)하룻밤 만리장성을 정확하게 뜻하는 일야만리성(一夜萬里城)’ 구절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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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하룻밤 인연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원래 일본 놈들은 조선에 오면 하룻밤을 자고 가더라도 반드시 성을 쌓았다. 적을 막기 위해 성을 쌓는다는 것이다. 오늘날 남녀 관계를 이르는 말로 쓰이고 있으나 원래의 뜻과는 다르다. 그러나 본래 이런 이야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학자들은 이 속담이 원래는 "하룻밤을 자도 만인(蠻人= 日本人)은 성을 쌓는다."인데, 잘못 전해져서 "하룻밤을 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로 바뀐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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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남녀 간 하룻밤에 쌓은 연정이 아니라 다산의 해석처럼 유비무환의 뜻이라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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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학자 이수자의 논문(‘만리장성 설화의 형성기원과 문화사적 의의’)를 보면 흥미로운 만리장성 설화들이 소개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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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구비문학대계>에 기록된 진시황과 만리장성 관련 전설을 보자. 여씨 성을 가진 용사가 진시황이 수레를 부수는 설화(경기 안성)와 공자의 묘를 파거나 사당을 부수려 했던 진시황 이야기(전남 고흥, 경북 군위), 진시황과 불로초 설화(정북 정주·정읍), 진시황과 만리장성 이야기(인천, 울산시·울주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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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가운데 백미는 뭐니뭐니해도 하룻밤을 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는 설화일 것이다. 중국에는 없는 설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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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에 쌓은 만리장성의 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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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요즘엔 유비무환의 해석은 전혀 없고, ‘남 녀 간의 짧지만 깊은 여운을 남긴 연정이란 뜻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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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설화는 <한국구비문학대계>10편이나 소개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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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남자가 만리장성 축성에 동원됐다. 그런데 홀로 남겨진 부인이 다른 남자를 유혹해서 하룻밤을 보냈다.(지역마다 이 남자의 신원은 약간씩 달라진다. 소금장수나 머슴, 총각으로 표현된다. 부인은 빨래하는 여자나 주인마님으로도 등장한다)

부인은 하룻밤 동침을 한 남자에게 옷가지와 편지 심부름 좀 해달라고 부탁했다.

만리장성 현장에 간 남편에게 전해달라.’면서. 그러면서 편지와 옷만 제대로 전달하고 오면 내가 당신과 평생 함께 살겠다.’고 약속했다.

꿈에 부푼 남자가 여인의 편지를 만리장성 축성 현장에 있던 여인의 남편에게 전달했다. 편지를 전달한 남자는 불행히도 까막눈이어서 편지내용을 알 수 없었다. 편지에는 이렇게 써 있었다.

여보, 지금 이 편지와 옷가지를 전달한 남자를 대신 두고 당신은 빨리 도망 나오세요.’

편지를 받은 남편은 어리석은 남자를 만리장성 현장에 두고 도망쳐 부인에게 돌아왔다.(지역 설화 중에는 옷을 갈아입는 척하고 도망치는 수법도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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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대충 이런 내용이다. 남의 여자와 하룻밤을 잔 남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야말로 하룻밤 여인과 보낸 대가로 평생 만리장성을 쌓게 됐으니참 기막힌 사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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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 만리장성 좋아하지 마라, 신세 망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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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군산에서 채록된 설화는 더 기가 막힌다. 부부에게 속아서 만리장성 노역을 대신 뒤집어썼던 어리석은 남자가 그 지긋지긋한 노역을 다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며 했다는 말이 웃긴다.

! 내가 하룻밤 자고서 만리장성 쌓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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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을 쓴 이(이수자 민속학자)는 이 하룻밤 만리장성설화를 소개하면서 은근슬쩍 남성들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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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어떤 여성이 남성과 하룻밤을 치르고 그 대가로 만리장성을 쌓으라고 하면 어떨 것 같은가.’ 아마 절대 다수의 남자들이 미쳤어?’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어마어마하게 좋아하는 여자의 말이라면 어떨까. 진정 사랑하는 여자라면 하룻밤 인연을 대가로 만리장성을 쌓으라 갈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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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 만리장성이라는 말은 남자들에게는 매우 낭만적인 속담으로 전해져왔다. 짧은 만남에 쌓은 소중한 인연이니 얼마나 환상적인가. 그러나 앞서 살펴보았듯 남자에게 결코 유리한 속담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오히려 하룻밤 쾌락을 위해 신세망치니 낯모르는 여성을 조심하라는 경계의 뜻이 담겨 있다. 시쳇말로 깨는 속담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작금의 성추문을 꼽아보면 요즘도 통하는 속담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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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지방에 많은 만리장성 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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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앞에서도 언급했듯 왜 남의 나라, 그것도 2000년도 훨씬 넘는 중국 진나라 이야기가 이역만리 한반도에서 속담으로 전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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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만리장성 설화가 주로 영남지방에 많다는 것이 흥미로운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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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대 경남 밀양군 삼랑진 단양면에서 전승된 만어산 바위와 만리장성설화는 진시황이 만리성을 쌓을 때 만어재 고개를 회초리로 훌쳐 때려서 돌 끝이 전부 북쪽을 보고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경남 울주군 청량면에서 전하는 진시황과 만리장성이야기도 자못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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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부부가 있었는데, 남편이 내일이면 곧 만리장성 쌓으러 가야 했다. 그 부부에게 어떤 사람이 찾아와 밥을 달라고 했다. 부부가 먹고 있던 밥을 주니 고맙다하면서 급할 때 쓰라면서 말채를 선물로 주었다. 다음날 만리장성 현장으로 간 남편에게 시련이 닥쳤다. 진시황은 산더미 같은 바위를 굴려 성을 쌓도록 했는데, 돌로 말을 만든 뒤 사람들을 쭉 세워 그 돌로 된 말을 몰게 했다. 만약 말을 몰지 못하면 진시황이 죽였다. 이윽고 남편의 차례가 되었다. 남편은 선물로 받은 말채를 꺼내 말을 쳤다. 신기하게도 말이 움직였다. 이 남편의 말채 덕분에 돌이 쉽게 움직여졌고, 그 덕분에 만리장성도 쉽게 축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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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나는 욕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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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고령군 개진면 반운리의 마구할망과 만리장성이야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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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장성의 축조는 여간 힘든게 아니었다. 많은 신선들이 진시황의 축성에 도움을 주었다. 먼 남쪽 나라에 마구할망도 도움 행렬에 합류했다. 할망은 거대한 돌을 힘들게 찾아 치마폭에 싸서 중국을 향해 날아갔다. 도중에 큰 함성이 들렸고, 자세히 들어보니 만리장성을 다 쌓았다는 소리였다. 그 소리를 들은 마구할망은 이제 이걸 가져가도 소용이 없겠구나하고 돌들을 마을 근처에 던져 놓고 가버렸다. 이 돌들은 논을 개간하는 과정에서 깨어지고 지금은 일부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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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 월성에서 채록된 가시나에 얽힌 사연도 흥미롭다. 즉 만리장성을 쌓는데 남자란 남자는 다 끌고 가니 데려갈 사람이 없었다는 것. 그런데도 자꾸 남자를 보내라 하니 나중에는 할 수 없이 여자에게도 갓을 씌어 보냈다는 것. 그런 여자를 가시나라 했다는 것이다. ‘갓을 쓰고 간다고 해서그렇게 불렀다는 것이다. 그러니 가시나는 욕이 아니라는 것이다. ‘가시나의 어원이 만리장성 축성과 관련있다는 이야기니 얼마나 재미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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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로 이주한 진()나라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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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수상한 해석이 나온다. 왜 경상도 지역에 유독 만리장성 설화가 많을까.

이수자씨는 <삼국지> ‘위서·동이전 진한조를 언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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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한은 마한의 동쪽에 있다. 진한의 노인들이 전하는 말이 있다. 옛날 진나라에서 있었던 노역을 피해 한국(진한) 땅으로 왔다.(辰韓在馬韓之東 其耆老傳世 自言古之亡人避秦役來適韓國)”,

진서(晉書) ‘동이전은 한술 더 떠 진한 사람들은 스스로 진나라 유민들이며, 진나라 언어와 비슷하다.(辰韓在馬韓之東自言秦之亡人避役入韓韓割東界以居之立城柵言語有類秦人由是或謂之爲秦韓)”고 했다.

북사(北史) ‘신라전은 아예 신라의 선조는 진한의 종자(新羅者其先本辰韓種也地在高麗東南居漢時樂浪地辰韓亦曰秦韓)”라 규정했다. 비단 중국 사료에만 남아있는 것이 아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三國史記)에도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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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0(박혁거세 38), 예전에 중국인들이 진()의 난리를 괴로워하여 동쪽으로 온 자들이 많았다. [이들 중] 마한 동쪽에 자리 잡고 진한(辰韓)과 뒤섞여 산 경우가 많았다(前此, 中國之人, 苦秦亂, 東來者衆. 多處馬韓東, 與辰韓雜居.).”(삼국사기 신라본기· 박혁거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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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인가. 진시황의 일으킨 만리장성 축성은 진나라 백성들을 도탄에 빠뜨렸다. 만리장성 축성에 동원된 백성들 가운데 죽거나 도망친 이들이 부지기수였다. 이때 바다 가운데로 가서 신선들을 찾아오라는 진시황의 지시에 따라 수 천 명의 동남동녀(童男童女)를 데리고 신선을 찾아 동쪽으로 간서불(徐市·혹은 서복) 같은 이도 있었다. 지금 한반도 곳곳에 서불이 거쳐 갔다는 서불과차(徐市過此)’의 전설이 새겨져 있다. 또 진시황의 죽음(기원전 210)-진승의 반란(기원전 209)-항우·유방의 다툼(기원전 209~202)이라는 미증유의 혼란기를 거치면서 동북아는 엄청난 소용돌이에 휩싸인다. 시쳇말로 민족대이동의 격동기가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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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삼국사기>는 바로 진나라 말기의 혼란, 그리고 그 혼란을 피해 한반도, 그것도 한반도 영남지방으로 이주한 진나라 후예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만리장성 전설이 유독 영남지방에 많은지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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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경향신문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하룻밤 만리장성' 좋아하지 마라에 첨삭하여 재구성함. 경향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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