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지 (月池) - 안압지 (雁鴨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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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을 통일하여 국력이 강해진 문무왕 14년(AD674)에 월지를 조성하였으며, 그 뒤 동궁(東宮)을 건립(AD679) 하였는데 임해전(臨海殿)은 동궁 속에 속했던 건물 중의 한곳으로서, 용도는 나라의 경사스런 일이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연회를 베풀었던 곳 이었답니다.
월지와 임해전에 대한 『삼국사기』의 기록들을 살펴보면
- 문무왕 14년 2월 (AD674) ; 궁 안에 못을 파고, 산을 만들어 화초를 심고, 귀한 새와 진기한 짐승을 길렀다.
- 문무왕 19년 8월 (AD679) ; 동궁을 짓고, 궁궐 안팎 여러 문들의 이름을 지었다.
- 효소왕 6년 9월 (AD697) ; 군신들을 임해전에 모아 잔치를 베풀었다.
- 경덕왕 11년 8월 (AD752) ; 동궁아(東宮衙)를 설치하고, 상대사(上大舍)와 차대사(次大舍)를 각 1인씩 두었다.
- 혜공왕 5년 3월 (AD769) ; 군신들을 임해전에 모아 놓고 잔치를 베풀었다.
- 소성왕 2년 4월 (AD800) ; 폭풍으로 임해(臨海), 인화(仁化) 두 문이 파괴 되었다.
- 애장왕 5년 7월 (AD804) ; 임해전을 중수하고, 새로 동궁 만수방을 지었다.
- 헌덕왕 14년 1월 (AD822) ; 동생 수종을 부군(副君; 太子)으로 삼고, 월지궁으로 들였다.
- 문성왕 9년 2월 (AD847) ; 평의전과 임해전을 중수하였다.
- 헌안왕 4년 9월 (AD860) ; 왕이 임해전에 군신을 모았다.
- 경문왕 7년 1월 (AD867) ; 임해전을 중수하였다.
- 헌강왕 7년 3월 (AD881) ; 임해전에서 향연을 베풀었다.
- 경순왕 5년 2월 (AD931) ; 고려 태조를 임해전에 초청하여 잔치를 베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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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못의 규모는 동서 길이가 약 180M, 남북 길이가 약 185M의 장방형인 평면으로, 면적은 약 4,730평이고, 3섬을 포함한 호안 석축의 길이는 1,285M이며, 동북남쪽의 호안의 높이는 2.1M, 궁전이 있는 서쪽의 높이는 5.4M로 다른 곳보다 높아, 누각에 앉아서 연못을 내려다 볼 수 있게 설계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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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발굴 당시 조사한 결과 건물터 26곳, 담장터 8곳, 배수구 시설 1곳, 입수부 시설 1곳으로 밝혀졌으며, 1980년에는 연못 서편에 연접하여 세워졌던 5개의 건물 중에서 3개를 복원하였으며, 나머지는 건물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자리에 주춧돌로만 복원하여 놓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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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안압지에서 발굴된 토기 파편에서 나온 명문으로 보아 안압지의 본래 명칭은 월지(月池)로, 현재의 명칭은 신라가 망한 후 방치되어 ´무성한 갈대와 부평초 사이를 기러기와 오리들이 날아다니는 한가로운 못´이라는 의미로 시인 묵객들에 의해 ´안압지´라 불리어 졌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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