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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癖)- 2

淸潭 2017. 2. 1. 11:40

()- 2

() 없는 자는 맛없는 자

()’이라. 사전적인 의미로 1)무엇을 치우치게 즐기는 성벽(性癖)이며, 2)고치기 어렵게 굳어버린 버릇을 일컫는다.

그러니까 괴짜라 할 수 있고, 요즘 말로 마니아라 할 수도 있고, 속어로 말한다면 똘아이의 범주에도 들어갈 수 있겠다. 가장 최근의 어법이라면 '~덕후'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자의 부수는 갑골문자로 환자가 땀을 흘리고 있는 형상이다. 갑골문자의 ()’침상에 누운 환자가 땀을 흘리는모양이다. 그러니까 땀 흘리는 병자의 모습을 담은 ()’도 일종의 질병’, 혹은 병폐로 치부할 수 있겠다. 그렇지만 선인들을 을 단순한 질병이나 병폐로만 치지 않았다.

 

박제가는 ()이 없는 사람은 버림받은 사람이라고 규정했으며, 소품문의 대가인 장대(張垈·1597~1676)는 아예 벽이 없는 자와는 사귀지도 마라고 했다. 그는 그 이유를 벽이 없으면 깊은 정도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허균(1569~1618)은 한정록 제17권 병화사(甁花史)편 호사(好事)에서 다음과 같이 외쳤다.

혜강(嵇康)의 쇠붙이 다루기를 좋아한 것과 무자[武子=() 나라 왕제(王濟)의 자()]의 말을 좋아한 것과 육우(陸羽= 당 나라 사람)의 차[]를 좋아한 것과 미전[米顚= () 미불(米芾)의 이칭(異稱)으로 큰 바위를 향하여 절[]하면서 형()이라 했다)]의 바위에게 절한 것과 예운림[倪雲林= () 예찬(倪瓚)의 자호(自號)]의 깨끗한 것을 좋아한 것은, 다 벽()으로써 그 뇌락(磊落)준일(雋逸)한 기개를 보인 바이다. 내가 보건대, 세상에서 그 말이 맛이 없고 면목(面目)이 가증스러운 사람은 다 벽이 없는 무리들이다. 만약 진정 벽이 있다면 거기에 빠지고 도취되어 생사(生死)조차 돌아보지 않을 터인데, 어느 겨를에 돈과 벼슬의 노예 노릇을 할 수 있겠는가.”

 

부스럼딱지에 집착한 유옹

아닌게 아니라 동양의 문헌을 살펴보면 희한하고, 엽기스럽기까지 한 의 소유자가 한 둘이 아니다.

덕후의 끝은 역시 중국 남송 시대의 인물인 유옹(劉邕)이다. ‘부스럼딱지먹기(瘡痂癖) 덕후였으니까. 맛이 복어와 비슷했다니 참 독특한 취향이다.

 

하루는 자창(炙瘡·화상)에 걸린 맹영휴라는 인물을 찾아가 그의 상처부위에서 떨어진 부스럼 딱지를 먹었다.

 

깜짝 놀란 맹영휴는 떨어지지도 않은 부스럼딱지까지 떼어 유옹에게 먹였다. 후에 맹영휴는 지인에게 쓴 편지에서 농 섞인 뒷 담화를 했다.

 

유옹이 나를 먹어치우는 바람에 온몸에 피가 흐르는군요.”

 

유옹은 이같은 엽기행각을 두고 남들이 조롱하기라도 하면 벽기가(癖嗜痂)’라고 받아쳤다. ‘기호의 차이일 뿐이라고 응수한 것이다.(<송서> ‘유목지전’)

邕所至嗜食瘡痂以為味似鰒魚嘗詣孟靈休靈休先患灸瘡瘡痂落牀上因取食之靈休大驚答曰:「性之所嗜。」靈休瘡痂未落者悉褫取以飴邕邕既去靈休與何勗書曰:「劉邕向顧見噉遂舉體流血。」宋書列傳第二 劉穆之

 

돈 밝히는 전벽(錢癖)’

()나라 완부가 나막신에 항상 밀랍을 반들반들하게 칠해서 신는 괴이한 습벽을 지니고 있었는데, 언젠가 어떤 사람이 그를 찾아갔을 때에도 밀랍을 칠하는 일을 태연히 계속하면서 일생 동안 이런 나막신을 몇 켤레나 신을지 모르겠다.未知一生當着幾緉屐라고 탄식했다는 납극(蠟屐)’의 고사가 전한다. 世說新語 雅量

 

또 진()나라 화교(和嶠)는 가산(家産)이 풍부해서 왕자(王者)와 견줄 만하였는데도 돈을 계속 모으기만 할 뿐 지극히 인색하였으므로, 두예(杜預)가 그를 전벽(錢癖)이라고 평하기도 하였다(嶠家產豐富擬于王者然性至吝以是獲譏于世杜預以為嶠有錢癖). 晉書 卷45 和嶠列傳

그리고 그의 집 정원에 맛 좋은 자두나무가 있었는데, 그가 없는 틈을 타서 여러 아우들이 몰려와 자두를 따 먹자, 나중에 먹고 남은 씨를 계산해서 돈을 받아냈다는 계핵책전(計核責錢)’의 이야기도 전한다(和嶠性至儉家有好李諸弟徃園中食李而皆計核責錢). 世說新語 儉嗇

 

동문선 제7권 칠언고시(七言古詩)

백화부우덕린과 함께 지은 음주 한 수[飮酒一首同白和父禹德麟作] 이곡(李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사람에 따라 옅기도 짙기도 하니 / 物情好惡淡且濃

이것이 다 조화로 속에서 용화되어 나오는 것 / 俱出造化爐中鎔

완부의 나막신[], 화교의 돈[和嶠錢癖]/ 阮孚好履和嶠錢

달인이 들으면 낯을 붉히리 / 達人聞之面發紅

우리들의 좋아하는 것 이네들과 달라 / 吾徒所好異於此

항상 꽃 앞 달 아래서 만나노라 / 長向花前月下逢 [이하 생략]

 

돈만 병적으로 밝히는 전벽(錢癖)’ 중에 중국 남조 양나라 때 인물인 소굉(473~526)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남조 양()나라 무제(武帝)의 동생이기도 한 소굉(蕭宏)은 집안 창고 100여 칸에 무려 3억전()을 모았다. 황제의 동생이라는 점을 이용, 매관매직에 앞장선 것이다. 그에게 뇌물을 건넨 자들은 승승장구했다.

그렇게 축재한 돈을 훔쳐가지 못하도록 돈을 쌓아둔 창고문은 닫히자마자 잠기는 특수장치를 설치해놓기도 했다. 소굉은 한때 형인 무제의 의심을 사는 바람에 역모죄로 죽을 뻔했다.

집안에 엄청난 무기를 숨겨두었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쌓아놓은 것이 무기가 아니라 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에는 일절 동생을 터치하지 않았다.

소굉이 얼마나 인색했는지 무제의 아들인 예장왕(豫章王) 소종(蕭綜)은 돈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을 빗댄 <전우론(錢愚論)>을 지어 삼촌을 비웃었다.

무제가 형제라 하여 사사롭게 친한 데다 정치적인 야심은 없어 질책하지 않았다.


이 글은 경향신문 이기환의 [고려 조선의 '덕후', 그 기묘한 '덕질']에 첨삭하여 재구성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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