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개바위와 탕사장
이순신 장군의 전설이 깃들어 있는 활개바위
고흥 발포 포구에서 1km 떨어진 남서쪽 해변에 활개바위가 있다. 마치 남국의 해변에서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들 하는 활개바위는 그 기묘한 생김새로 인하여 지나가는 뱃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활개바위는 그 생김새가 마치 여자의 생식기와 닮았다고 해서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 그런데 이 활개바위와 나란히 돌출한 바위는 반대로 남자의 생식기처럼 생겼다. 각도에 따라 활개바위 속으로 남근석이 들어가 있는 것처럼 보여 많은 이들이 이야깃거리로 삼고 있다. 일부에서는 활개바위 앞에 서 있는 남근석을 본 여자들이 바람이 난다는 이야기도 있다.
임진왜란 때 일이다. 발포 포구에 들렀던 이순신 장군이 활개바위를 보고는 그쪽으로 배를 몰아라고 지시하였다. 활개바위 일대를 훑어보던 이순신 장군이 발포만호에게 일렀다.
“이 바위 일대는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오. 그러니 이곳의 경계를 늦추지 마시오.”
그러자 발포만호가 물었다.
“아니, 장군. 발포 포구도 있는데 어찌 이곳을 지키라 명하십니까?”
이에 이순신 장군이 다시 한 번 활개바위 일대를 살펴보더니 발포만호를 바라보고 이야기하였다.
“이곳은 비록 바위가 돌출되어 있지만 제 아무리 커다란 함선이라도 접안할 수 있는 지형이오. 또한 접안과 동시에 자유자재로 상륙이 가능한 곳이니 만일 왜군이 이곳으로 들어온다면 큰 낭패가 아닐 수 없소. 그러니 경계를 삼엄하게 해야 할 것이오.”
해저 관측 장비가 전혀 없었던 임진왜란 때였는데도 불구하고 검푸른 바닷물 가운데 돌출한 활개바위 근처가 접안과 상륙의 천연적인 요새지라는 것을 알아차린 이순신 장군의 지혜가 놀랍지 않을 수 없다.
발포 포구에서 활개바위 반대쪽, 즉 동북쪽으로 2km쯤 가면 발포해수욕장이 있다. 발포해수욕장은 예로부터 탕사장이라 불렀다. 그런데 이 탕사장에는 아주 오랜 옛날 정렬적인 사랑을 나누던 젊은 남녀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온다.
발포 근처 어느 마을에 아라라는 규수가 살고 있었다. 지체가 그리 높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양반댁이라 아라는 제법 귀티가 나보였다. 또 다른 마을에는 태평이라는 이름의 청년이 살고 있었다. 어부의 아들로 태어난 태평이는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뱃일을 도와주었던 탓에 나이에 비해 어른스러워 보이고 우람한 근육이 돋보였다.
발포 근처에는 제법 넓은 탕사장이 있는데, 그 근처 바닷가에는 기암괴석이 즐비하였다. 그래서 아라는 가끔 탕사장에 나가 바닷가를 거닐곤 하였다.
어느 날 한가한 틈을 타 태평이가 탕사장에 놀러왔는데 멀리서 보아도 아리따운 아가씨가 보였다. 태평이가 보기에 너무도 고운 규수였기에 감히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한 채 먼발치서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파도가 밀려들더니 아라가 파도에 휩쓸려 허우적거리기 시작하였다. 그 광경을 목격하자마자 태평이 쏜살같이 달려가 아라를 구하였다. 어려서부터 뱃일을 해서 그런지 태평이는 파도 따위는 거침이 없었다.
한참 후에 정신을 차린 아라는 자신의 목숨을 구한 사람이 태평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것도 고맙지만 한눈에 보기에도 듬직한 태평이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해서 두 사람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이름도 제대로 모른 채 탕사장에서 밀회를 나누던 두 사람이 어느 날 서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런데 아라 아버지는 양반이고 태평이 아버지는 어부라는 사실을 알게 된 두 사람은 한 동안 말을 잇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미 서로에 대해 은밀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던 두 사람이었기에 신분의 차이가 장벽이 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당분간 부모에게는 알리지 않기로 하고 탕사장에서 만나 사랑을 속삭였다. 당시로서는 신분의 구별이 엄하였던 때라 양반댁 규수와 어부의 아들이 만나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양가 부모가 알게 되면 누구라도 반대가 심할 수밖에 없었다. 아라 집에서는 신분의 차이 때문에 반대할 것이 분명하였고, 태평의 집에서는 넘보지 못할 여인을 만나면 불행해진다고 믿고 있기에 더욱 반대할 것이 분명하였다.
거의 매일 탕사장 근처 은밀한 곳에서 만나 사랑을 속삭이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집에서 가져온 음식을 나눠먹으며 사랑을 나누던 두 사람에게 웬 할머니가 다가왔다. 인적이 드문 해변에 할머니가 나타나자 두 사람은 깜짝 놀랐다. 사랑을 나누다 들킨 것도 들킨 것이지만 백발노파가 나타났기에 더욱 놀랐던 것이다. 그런데 할머니가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건넸다.
“두 사람은 아직도 사랑이 뭔지를 모르는 것 같은데, 고생을 더 해야겠어.”
그리고는 혀를 끌끌 차고 나서는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졌다. 할머니가 사라지고 나서 잠시 침묵이 흐르고 나서야 아라가 태평에게 말을 꺼냈다.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어요. 그러니 우리 당분간 만나지 말아요.”
태평 역시 할머니가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괜히 찜찜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그날은 그냥 헤어졌다.
느닷없이 나타난 할머니의 불길한 이야기를 듣고는 한동안 잠잠하게 지내려던 두 사람은 결국 며칠을 참지 못하고 다시 탕사장에서 밀회를 하였다.
그런데 금지된 사랑을 나누어서인지 다음날 두 사람은 동시에 뜻하지 않은 열병을 얻어 고통을 받게 되었다.
열병도 보통의 열병이 아니라 두 사람 모두 피부가 부어터지고 종기가 나는 등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두 사람을 보고 수군대기 시작하였다. 집에서도 난리가 아니었다.
며칠 뒤 탕사장 근처에서 만난 두 사람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하염없이 울었다. 한참을 울다가 서로의 얼굴을 보고는 또 울고, 그렇게 한참을 울다가 갑자기 아라가 태평에게 극단적인 말을 하였다.
“우리 같이 죽어요.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게 낫겠어요.”
느닷없는 아라의 제안에 순간 움찔하던 태평이 이내 진정을 하고는 아라에게 말을 하였다.
“그래요. 함께 죽는다면 그나마 행복할 거예요.”
죽자고 맹세한 두 사람이 탕사장으로 가다 보니 서로가 부모님 생각도 나고, 죽자고 생각하면 무슨 일을 못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주춤하고 있는데 지난번에 보았던 할머니가 또 나타났다.
“쯧쯧쯧.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다니. 그런다고 또 아까운 목숨을 버리려 해?”
그렇게 호통을 치던 할머니가 두 사람에게 열병 낫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이열치열이라고 탕사장 모래를 파고 웅덩이를 만들어 알몸으로 지내라는 것이었다. 낮에는 그대로 들어가고 밤에는 모래사장에 장작불을 피워 불에 달군 모래를 이불삼아 지내라 하였다. 할머니가 일러준 대로 보름을 지내자 두 사람은 차차 열병이 낫게 되었다.
사람들은 그 후로부터 이곳을 탕사장이라 불렀는데, 여름철이면 전국 각지에서 모래찜질을 하러 오는 인파가 극성을 이루었다고 한다. 지금은 발포해수욕장이 들어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허석 / 한국설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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