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문학/野談,傳說,說話,등

너무 가난해 속옷은 아예 입지도 못한 채

淸潭 2016. 12. 20. 11:08

공평무사(公平無私)

 

과연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할 수 있을까. 내 이웃을 내 부모처럼 공경하며 모실 수 있을까. 사람이 저울의 중심 추처럼 완전 중립 지점에 서 있을 수는 없다. 관계없는 사람을 평가할 때는 냉정한 결론을 생각하다가도 그 대상이 부모 형제이거나 지연, 학연 등 관련인 이라면 변호할 이유를 찾거나 최대한 용납해주는 쪽으로 서게 된다.

같은 사람이라도 딸네 집에 가서 사위의 처신을 보는 것과 며느리 집에 가서 아들의 처신을 보는 것에는 똑같은 잣대를 적용하지는 않는다. 한 쪽에는 변호사 입장에서 또 다른 쪽은 검사 입장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다음과 같은 경우를 보면 이런 현상 즉 아전인수(我田引水) 격의 상황이 흔히 있음을 알 수 있다.

남의 딸에게 애인이 많으면 행실이 가벼워서고, 내 딸이 애인이 많으면 인기가 좋아서다.

남이 학교를 자주 찾는 것은 치맛바람 때문이고, 내가 학교를 자주 찾는 것은 높은 교육열 때문이다.

며느리에게는 시집왔으니 응당 이 집 풍속을 따라야한다, 딸에게는 시집가더라도 자기 소신을 가져야한다고 가르친다.

며느리가 친정 부모한테 주는 용돈은 남편 몰래 빼돌린 것이고, 내 딸이 친정 부모한테 용돈을 주는 것은 길러준데 대한 보답이다.

며느리는 남편에게 쥐어 살아야 하고, 내 딸은 남편을 휘어잡아야 한다.

남의 아들이 웅변대회에서 상을 받으면 누구에게나 주는 상을 어쩌다 받은 것이고, 내 아들이 웅변대회에 나가서 상을 받으면 실력이 뛰어나 받은 것이다.

남이 자식을 관대하게 키우면 문제아를 만드는 것이고, 내가 자식을 관대하게 키우면 용기를 살려주는 것이다.

남의 자식이 어른한테 대드는 것은 버릇없이 키운 탓이고, 내 자식이 어른한테 대드는 것은 자기주장이 뚜렷해서다.

며느리가 부부싸움을 하면 여자가 참아야한다라고 말하고, 딸이 부부싸움을 하면 아무리 남편이라도 따질 건 따져야한다고 말한다.

남이 내 아이를 나무라는 것은 이성을 잃은 행동이고, 내가 남의 아이를 꾸짖는 것은 어른 된 도리로 타이르는 것이다.

남의 아이가 대학 입시에 낙방하면 실력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고, 우리 집 아이가 대학 입시에 낙방하면 경쟁률이 워낙 치열했기 때문이다.

내 아이가 어디 가서 맞고 오면 쫓아가서 때린 아이를 혼내주고, 내 아이가 어디 가서 때리고 오면 아이들의 싸움이라고 접어둔다.

남의 아이가 눈치 빠르면 약삭빨라서고, 내 아이가 눈치 빠르면 영리하기 때문이다.

사위가 처가에 자주 오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내 아들이 처가에 자주 가는 것은 줏대가 없어서 그런 것이다.

남의 딸이 말이 많으면 수다스러운 것이고, 내 딸이 말이 많으면 붙임성 있기 때문이다.

남이 아이를 셋 낳으면 무식한 것이고, 내가 아이를 셋 두면 다복한 것이다.

 

아담 스미스가 쓴 <국부론>에는 이 세상 모든 일이 마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밭고랑과 이랑이 서로 낮추고, 높여 평평하게 되듯 조정된다고 했다.

뿔 가진 놈은 이빨이 없다(角者無齒)”란 속담도 있다. 옛날 중국 사람들이 가르쳐 준 지혜가 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돈(재산), 권세, 명예를 갖고 싶어 한단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어떤 이가 돈을 얻었으면 권세와 명예는 탐내지 말고, 혹 권세를 얻었으면 돈과 명예를 포기하며 명예를 갖게 됐으면 돈과 권세를 기대하지 말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 이 셋을 모두 갖는다면 분명 어떤 사람은 셋 중 하나도 갖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공평하고, 공정한 사회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옛날 어떤 왕이 중병에 걸려 백약이 무효라 전전긍긍 하니까 전국의 명의가 모두 동원됐지만 치료하지는 못했다. 그 때 시골의 무명 의원이 뒤늦게 와서 회복 비방을 한 가지 일러 주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근심, 걱정, 우수(憂愁), 사려(思慮)가 없는 이의 속옷을 구해다 입히면 나을 것이라는 처방이었다.

전국을 두루 찾아도 그런 사람을 찾기가 어려웠다. 건강, 재물, 인간관계 등 어떤 걱정거리든 한두 개는 다 갖고 있었다.

그때 벽촌 시골의 면사무소 직원이 깊은 산속 외딴집 처마 밑에서 소나기를 피하던 중 집안의 웃음소리가 너무 명랑해 혹시나 하고 근심, 걱정이 없는가 물었더니 아무 걱정도 없으며 항상 행복하다고 고백했다. 자초지종을 고하고 속옷을 얻자 하니 그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어쩌나, 우리 집은 너무 가난해 속옷은 아예 입지도 못한 채 사는데라고 했다.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인 방글라데시 국민의 행복지수가 세계 1-2위를 차지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북한의 한 연구조사를 보면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1위는 중국, 2위는 북한인데 반해 한국은 152위로 세계에서 가장 불쌍한 나라 중 하나라고 선전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길 가의 돌멩이가 웃을 일이다. 오늘 우리들도 조용히 앉아 이 세상이 과연 공평하고 무사(無私)한가 철저히 점검해보자.


 


'글,문학 > 野談,傳說,說話,등'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활개바위와 탕사장   (0) 2016.12.21
의상대사와 천등산 미녀  (0) 2016.12.21
충절녀(忠節女) 논개(論介)  (0) 2016.12.20
주막  (0) 2016.12.19
북망산 이야기  (0) 2016.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