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이야기
내 이름은 운풍지이고
나이는 여든 두 살 할아버지라네
아무래도 이제 나는 며칠 안으로
이 세상과 이별을 하게 될 것 같아
만 81년을 살아온 세상과
영원히 이별을 하게 되겠지
혼인과는 인연이 없었던지라
난 부인도 자식도 없으니
나의 이별 이야기를 들어줄 이는
시력도 청력도 기력도 나처럼
희미해져 버린 친구 몇 명 밖엔
없을 것이지만 난 슬프지 않아
지금 내 마음을 표현해보자면
11월 어느 가을 날 저녁에
낙엽지는 산자락이 정적에 덮히고
붉은 노을이 쓸쓸하게 어둠에
묻히고 있는 것같은 풍경이라네
누가 인생이 뭐냐고 물으면
이제서야 확신을 갖고 답변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아
인생은 죽기 직전에
"고작 이런게 인생이었어?"라고
말하고는 죽는 거란 걸
그동안 살아오면서
끊임없는 질문을 던졌고
미궁과 혼돈 속을 헤맸었지만
결국 깨닫게 된 것은 단순하다네
난 이 세상에 태어났기에
살아갈 수 밖에 별 다른
도리가 없었던 거야
태어나고 죽는 것은 마치
내가 느끼지도 못하는 사이에
지구가 우주 공간에서 돌고 있듯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만 하지
심곡의 맑은 물처럼 순수했던
동심의 추억이 아직 남아있고
붉은 태양처럼 이글거리던
젊은 시절의 추억이 꿈틀거리고
사랑을 찾아 헤매고 외로움에
몸부림치던 추억이 떠오르고
자연을 벗삼아 산천을 유랑하던
초로의 추억이 마치 어제 일 같고
지팡이를 친구삼아 걷던 공원의
흑내음이 내 코에 스물거리는데
난 이제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해야 할 뿐
내가 살던 집과 얼마남지 않은
통장 잔고는 독거 노인들을 위해
따뜻한 식사를 제공하는 데에만
나라에서 잘좀 써줬으면 좋겠어
그리고 친구들이 내 흔적일랑
섬이 보이는 바닷가에
뿌려주었으면 좋겠어
그게 필요한 이야기의 전부지만
내 이별 이야기 몇 글자 더 남기네
내가 사랑했던 여인들에 대해
난 털끝만큼의 후회도 없어
사랑하면 결혼해서 한 평생
해로해야 한다는 생각은 정말
다시 태어난다 해도 난 불편해.
내가 결혼 한 번 못해 봤으니
제대로된 사랑 못해 본 거라고?
육체와 마음으로 하는 것이
사랑이지, 결혼으로 하는 것만이
사랑은 아니야.
딱 한번 손을 잡은 추억 밖에 없는
그녀를 난 오래도록 사랑했고
그녀에게 난 편지를 썼었지
그녀는 내 편지가 너무
감동적이었다며 눈물을 흘렸어
그녀의 눈물이 내겐
다이아몬드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가치가 있었지
내가 그녀를 사랑했고
그녀가 나의 마음을 알아주었던
그 추억은
지금 내 나이에 아직도 재계의
손꼽히는 모회장님 재산 중
1조원보다 지금 내겐 더 소중하네
가져가고 싶은 것은 무엇이냐고?
먼 여행길에 호주머니에
넣어갈 수 있는 것을 선택하라면
나는 산천을 유랑하며 가슴으로
느꼈던 대지와 산과 하늘과
바람을 삽화로 삽입한
가슴으로 쓴 내 삶의 소중한
순간들을 엮은 한권의 시집을
선택하겠네
금덩어리가 무슨 소용이겠나
먼 길 홀로 떠나는 여행 길에,
산해진미가 무슨 소용이겠나
냇물을 마시고 과일을 따먹으며
길가에 쉬엄 쉬엄 앉아서
그 한권의 시집을 펼쳐보며
행복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쉬어가면 그 뿐,
미련 덩어리는 난 필요가 없다네
무엇을 깨닫고 무엇을 가졌냐고?
그것은 다만
자유로웠을 때
살아 숨쉬는 때에만
잠시 "마음 속에" 머무는 것,
그것은 잠시 뿐,
내가 깨달은 것도
내가 가진 것도
난 아무 것도 없다네
세상에 잠시 머물다 가는
내 육신과 마음 밖에
그리고 애초에
난 존재하지도 않았었지
82년 전에는
82란 숫자가 무슨 의미가 있지?
단 한 가지 의미가 있다면
밤하늘에 별들이 더 아름다운 건
그 반짝이는 별들이 무수히 많아
밤하늘을 환하게 밝히기 때문
별이 몇개 뿐이라면 밤하늘은
훨씬 더 어두워져 버리겠지
그래, 난 수없이 깜빡이는
밤하늘 별중의 하나의 의미야
밤 하늘에 별이 하나 진다고
대수겠어? 여전히 별들은 빛날꺼야.
수십억년을 그래 왔으니까.
난 도대체 저 별들중 어느 별로
여행을 떠나는 것인가?
결국 나의 이별 이야기는
어이없게도 질문으로 끝나는군
글. 동건
어쩌면 이글 읽으실때 저는 이미 떠났을수도ㅠㅠ
'글,문학 > 감동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빠, 내가 소금 넣어 줄께 (0) | 2016.11.12 |
---|---|
사형수와 딸 (0) | 2016.10.28 |
어머니는 위대하다 (0) | 2016.10.13 |
고부갈등 (조선 명종때 실화 ) (0) | 2016.09.18 |
성가정의 지름길 (0) | 2016.09.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