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래 대대로 청빈한 선비 집안이라 장마철이면 초가지붕에서 비가 새고 쌀독은 바닥을 드러내기 일쑤였는데, 장가를 잘 들며 유지록은 가난의 때를 벗어버렸다.
이웃 고을 강 좌수는 천석꾼 부자이지만 항상 벼슬에 목말라 있다가 사또에게 논문서를 바쳐 매관매직을 하고 병석에 누워 있던 유지록의 아버지를 꼬드겨 사돈을 맺었다. 유지록은 본 성품이 조용하고 얌전한데, 강씨 부인은 친정 재산으로 스물네칸 기와집을 짓고 문전옥답에 하인 하녀를 부리며 까칠한 성질에 기고만장이다.
유지록은 낙향 후, 대궐 같은 기와집 사랑방에서 뜻맞는 선비들과 어울려 술잔을 돌리고, 시를 짓고, 손님들이 없을 땐 글을 짓는 것이 일과다.
강씨 부인은 글 읽을 줄도 모르지 사군자 칠 재주도 없지 자수도 안 배워놓았지, 그렇다고 동네 여편네들을 안방으로 불러 수다를 떨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낮에는 하녀들을 들들 볶다 밤이면 금침을 펴놓고 유지록을 기다리는 게 일이다.
유지록은 양반 선비 노릇하느라 사랑방에 기거하며 가뭄에 콩 나듯이 안방을 찾는다.
삼십대 중반도 안 된 혈기방장한 남자가 어찌된 영문인지 칠일장 터울로 안방을 찾는 것도 강씨 부인의 부아를 돋우는데 안방에서 하는 짓거리 좀 보소.
선비들하고 마신 술이 덜 깨 아직 불콰한 채 중문을 열고 도둑질하듯이 고양이 걸음으로 안방으로 와 강씨 부인의 옷고름을 푸는 게 아닌가.
강씨 부인이 양반 행세를 하느라 눈을 감고 반듯하게 목석처럼 누워 있으면 양반 남편은 싸움에 진 장닭 모가지처럼 반쯤 구부러진 양물로 옥문인지 허벅지 사이인지도 모른 채 몇번 껍적이다가 요만 더럽혀놓고 휙 사랑방으로 도망가버린다.
한참 오른 열기를 식히지 못한 강씨 부인은 장롱에 감춰 놓은 향나무 목신을 꺼낸다.
요즘, 강씨 부인은 부아가 돋는 게 아니라 아예 뚜껑이 열렸다. 노상 사랑방에서 문우들과 술을 마시던 바깥양반이 선비 친구들을 따라 저잣거리 기생집을 찾더니 외박이 부쩍 잦아진 것이다.
강씨 부인이 하인 둘과 친정 남동생을 데리고 저잣거리 기생집을 찾아갔다. 기생집을 아예 부숴버릴 작정이었다.
대문을 박차고 들어갔더니 대청마루 끝에서 수기생(首妓生)이 팔짱을 낀 채 안뜰에 서서 팔을 걷어붙이고 방방 뛰는 강씨 부인을 내려다보며 말한다. “어인 일로 땅거미도 내려앉지 않은 이때 저희집을 찾으셨는지요?”
“야, 이 구미호 같은 년아!” 강씨 부인이 고함을 치려는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고, 삿대질을 하려는데 팔이 올라가지 않았다. 꼭 꿈속에서 가위눌린 것 같았다.
수기생은 삼십대 중반쯤 되는 퇴물 기생이지만 우아하고 온몸에서 기품이 배어 나왔다. 강씨 부인은 무엇에 홀린 듯 수기생의 기(氣)에 눌려버린 것이다.
“유제학 나으리의 안방마님 되시는군요. 오실 줄 알았습니다. 저를 따라오시지요.”
앞장서 뒤꼍으로 걷다 말고 뒤돌아보며 “여봐라, 저 낭군 세분께 술상을 차려드려라.”
뒤뜰은 넓었다. 강씨 부인은 최면에 걸린 듯 수기생을 따라 매화나무 아래 별당으로 들어갔다. 세식경쯤 지났을까. 수기생은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고, 강씨 부인은 꾸지람 들은 아이처럼 고개를 숙이고 장정 셋을 데리고 얌전히 기생집을 빠져나갔다.
집으로 돌아온 강씨 부인은 안방에 털썩 주저앉았다. 수기생의 첫마디가 아직도 귓전에 쟁쟁 울렸다.
“마님, 근래에 남편 되시는 유제학 나으리와 합방을 해보셨습니까?”
강씨 부인은 뒤통수를 한대 맞은 듯 멍해졌다. 불과 사흘 전 밤이었다. 남편이 딴사람이 되었다. 현란한 방중술(房中術)에 강씨 부인은 세번이나 까무러쳤다.
‘음양의 조화가 이렇게 신묘하구나.’
그날 밤, 삼일 만에 또 남편이 안방을 찾았다. 강씨 부인의 감창이 온 집안에 퍼졌다.
숨을 가다듬은 남편이 강씨 부인을 껴안고 엉덩이를 쓰다듬으며 “부인도 수기생한테 가서 방중술을 좀 터득하시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