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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이 간신을 죽였다는 이름이

淸潭 2016. 8. 18. 09:49

조선 성종 때의 문신. 학자(1439~1504). 성현(成俔) ()

용재총화(慵齋叢話) 3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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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군(安城君) 이숙번(李叔蕃)은 큰 공을 이룬 뒤에 세운 공을 믿고 교만하여 같은 반열의 재상들을 종처럼 볼 뿐 아니라 임금이 불러도 병이라 칭탁하고 가지 않았다.

게다가 병문안을 하기 위해 중사(中使 왕명을 전하는 내시)가 계속 이르는데도 내실(內室)에서는 음악 소리가 어지러웠다. 혹 어떤 사람에게 관직을 주고자 하면 이름을 작은 종이에 써서 사람을 시켜 천거하게 하니 친한 친구들은 높은 벼슬자리에 두루 나누어 있었다.

돈의문(敦義門) 안에 큰 집을 지었는데, 인마(人馬) 소리가 싫다 하여 아뢰어서 문을 막고 사람의 통행을 금하니 사치스럽고 참담한 행동이 날로 심하더니 마침내 죄를 얻어 멀리 함양(咸陽) 별장으로 유배되었다.

세종(世宗)이 유신들에게 명하여 용비어천가를 편찬할 적에, 이숙번이 태종 시대의 일을 잘 안다고 해서 급히 불렀다. 이숙번이 흰옷을 입고 궁궐에 나오니 고관들과 재상들이 모두 후배이므로 다투어 나아가 배알하였으나, 이숙번은 다만 손을 흔들어 말리면서,

어렸을 때에 누구는 영매(英邁)하고 누구는 성실하다고 하므로 나도 영장(令長)의 그릇이 되리라 생각하였더니, 과연 그렇구나.” 하고, 그의 헌걸(軒傑)한 의기를 조금도 굽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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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재(三宰) 박석명(朴錫命)은 어려서 공정왕(恭定王= 정종)과 함께 한 이불 속에서 잤는데, 석명의 꿈에 황룡이 자기 옆에 있는 것을 보고 깨어서 돌아다보니 태종(太宗)이었다. 이리하여 기이하게 여겨 서로 더욱 친밀이 지냈다. 임금에 즉위한 후 특별한 은총이 융성하여 10년 간 지신다(知申事)를 했으며 지의정부사(知議政府事)로 승진하여 육조(六曹)의 판서를 겸하였으니 근대의 신하로서는 견줄 자가 없었다.

승지가 되었을 때에 임금이,

누가 그대를 대신하여 승정원을 맡을고.” 하니, 박공이,

조정의 신하 중에는 마땅한 자가 없으나 다만 승추부 도사(承樞莩事) 황희(黃喜)가 적당한 사람입니다.” 하였다.

임금이 마침내 기용하고 얼마 되지 아니하여 박공을 대신해서 승지가 되었고 마침내 명재상이 되었으니, 세상에서 박공은 사람을 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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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좌상(孟左相 맹사성(孟思誠))이 대사헌이 되고 박안신(朴安信) 공이 지평이 되어 평양군(平壤君) 조대림(趙大臨)을 국문(鞠問)하는데, 임금에게 여쭈지 아니하고 고문하였다.

임금이 크게 노하여 두 사람을 수레에 싣고 저자에서 죽이려고 할 적에 맹상은 실색(失色)하여 말을 못하는데 박공은 침착하여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이 맹상의 이름을 불러 말하기를,

그대는 상관이요, 나는 하관이나 이제 죽을 죄인이 되었으니, 어찌 존비가 있겠는가. 나는 일찍이 그대를 지조가 있다고 했는데, 어찌 오늘은 이렇게도 겁을 내는가. 그대는 저 수레 구르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하였다.

또 나졸에게, “기와조각을 가져 오너라.” 하였으나, 나졸이 듣지 않으니, 공은 눈을 부릅뜨고 꾸짖기를,

네가 만약 듣지 않으면 내가 죽어서 반드시 먼저 너에게 화를 주겠다.” 하고, 말소리와 안색을 더욱 엄하게 하니 나졸이 두려워하여 마침내 기와조각을 가져다 주었다. 공이 시를 지어 기와조각에 쓰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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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직책 다하지 못하였으니 죽음은 달게 받겠으나 / 爾職不供甘守死

임금이 간신을 죽였다는 이름이 남게 될까 두렵소 / 恐君留殺諫臣名

하고 나졸에게 주어, “속히 가서 임금께 보이라.” 하니, 부득이 궐내에 갖다 바쳤다.

이때에 독곡(獨谷 성석린(成石璘))이 좌정승이었는데, 급히 가마를 타고 궐내에 나아가 극간(極諫)하니 임금도 노염이 풀려 마침내 용서하여 죽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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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상(孟相 맹사성(孟思誠))이 젊어서 향관(享官 제관)으로서 소격전(昭格殿)에 치재(致齋)하는데, 잠깐 조는 사이에 꿈속에서 관하인(官下人), “칠성(七星)이 들어오신다.” 전하였다. 잠에서 깬 공이 뜰에 내려가 공손히 맞았는데, 여섯 대부(大夫)는 이미 들어왔고, 일곱 번째는 독곡(獨谷) 성상(成相= 성석린)이었다. 공이 죄를 얻어 저자에서 죽음을 당하게 되었는데, 독곡이 간해서 구한 힘으로 죽음을 면하였다. 평생에 독곡을 부모와 같이 섬기었으며 독곡이 죽은 뒤에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 사당을 지날 때면 반드시 말에서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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