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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의 어머니

淸潭 2016. 6. 28. 10:42

막내의 어머니

-메콩강소년-

제게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하얀 상복을 입고 9남매를 데리고 아버지 관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 흘리던 때부터 시작됩니다.

어머니는 40 넘어서 날 낳으시고 50이 되기 전에 홀로 9남매를 떠 안으셨습니다.

아버지가 저희 가족을 두고 먼저 떠나가실 때 저는 만 5살이었고 큰 누나는 시집가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젊고 고운 어머니, 한전 소장님의 우아한 사모님의 이미지는 누이들과 형들을 통해 가끔 들었던 이야기일 뿐입니다.

제게 어머니의 향은 분가루 구르므 향이 아닌 매일 새벽예배 마치면 몸배바지로 갈아입고 논과 밭 사이를 헤매다 묻혀 온 흙과 땀 냄새입니다

제게 큰 누나는 가까운 친척 같았고 두 형은 무섭지만 기다려지는 영웅이고 공부 잘하는 셋째 형은 친구들에게 자랑거리였습니다.

둘째 누나는 엄마 같았고 셋째 누나는 착한 심청이었으며 넷째 누나는 학교 가기 싫을때 떼쓰면 받아주는 넉넉한 누이였고 다섯째 누나는 친구이고 경쟁 대상이었습니다.

어린 내가 볼 때 어머니는 형들과 누나들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셨던것 같습니다.

쌀, 깨, 콩, 감, 고구마, 고춧가루, 참기름, 메주, 된장은 물론이고 정성껏 기른 닭이나 오리 한마리도 자신을 위해 잡는 것은 보지못했습니다.

폐가 안좋은 형을 위해 땅꾼들에게 뱀을 사서 친히 불을 지펴 끓이고 가냘픈 여인의 손으로 짜서 하얀 즙을 병에 담아 갖다 주었고, 개를 잡아 엿을 고아 마루 방에 두고 형을 기다렸습니다.

내가 먹고 싶다고 하면 '이것은 형 약'이라고 손도 대지 못하게 할 때는 형이 밉기도 했습니다.

추석과 구정이 되면 온 가족의 얼굴을 볼 수 있어서 들뜬 마음으로 기다렸다 반갑게 맞이했지만 언제나 엄마 마음을 편하지 않게 하고 돌아가는 형들과 누나들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형들과 누나들이 새 가정을 꾸려 나갈 때 마다 어머니가 찾아가는 논과 밭도 줄었습니다

내가 고등학교 입학식 하는 날 어머니는 담석증 수술을하셨습니다. 입학식 마치고 병원으로 가서 어머니의 모습을 본 뒤로 나는 어머니에게 아무것도 말할 수 없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내가 40 가까운 나이가 되었을 때 어머님께서 위독하시다는 전갈을 받았습니다. 온 식구들과 함께 내려가 어머님을 뵙고 나서, 마침 아는 목사님과 연락이 되어 잠시 나갔다 오겠다고 하자 "목사가 밤에 어디를 가려고 하니" 하셨습니다.

이것이 사랑하고 존경하고 그리운 어머니가 나에게 주신 마지막 말씀입니다.

나에게 어머니는 구남매를 안고 눈물로 기도하시다 하나님 품에 안기신 천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