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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장

淸潭 2016. 3. 7. 10:36

고려장은 고려인이 효도심이 없어서 있었던 일인가?

고려장 풍습이 있던 고구려 때 박 정승은

노모를 지게에 지고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그가 눈물로 절을 올리자 노모는

“네가 길을 잃을까봐 나뭇가지를 꺾어 표시를 해두었다”

고 말합니다.

 

박 정승은 이런 상황에서도 자신을 생각하는

노모를 차마버리지 못하고 몰래 국법을

어기고 노모를 모셔와 봉양을 합니다.

그 무렵 중국 수(隋)나라 사신이 똑같이 생긴

말 두 마리를 끌고 와 어느 쪽이 어미이고 어느 쪽이

새끼인지를 알아내라는 문제를 냅니다.

못 맞히면 조공을 받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문제로 고민하는 박 정승에게 노모가

해결책을 제시해 주었습니다.

“말을 굶긴 다음 여물을 주렴, 먼저 먹는 놈이 새끼란다.”

고구려가 이 문제를 풀자 중국은 또 다시 두 번째

문제를 냈는데 그건 네모난 나무토막의 위아래를

가려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노모는

“나무란 물을 밑에서부터 빨아올린다.

그러므로 물에 뜨는 쪽이 위쪽이란다.”

고구려가 기어이 이 문제를 풀자 약이 오를 대로 오른

수나라는 또 어려운 문제를 제시했는데

그건 재(灰)로 새끼를 한 다발 꼬아 바치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나라에서 아무도 이 문제를 풀지 못했는데

박 정승의 노모가 하는 말이

“얘야, 그것도 모르느냐? 새끼 한 다발을 꼬아

불에 태우면 그게 재로 꼬아 만든 새끼가 아니냐?”

중국에서는 모두 이 어려운 문제들을 풀자

“동방의 지혜 있는 민족이다.” 라며

다시는 깔보지 않았다 합니다.

 

 

그리고 당시 수나라 황제 수문제(隋文帝)는

“이 나라(고구려)를 침범하지 말라.”

고 당부합니다.

 

그런데도 이 말을 어기고 아들인 수양제(隋煬帝)가

두 번이나 침범해와 113만 명이 넘는 대군(大軍)으로도

고구려의 을지문덕장군에게 대패하고는

나라가 망해버립니다.

 

그 다음에 들어선 나라가 당(唐)나라인데

또 정신을 못 차리고 고구려를 침범하다가

안시성 싸움에서 깨지고 당시 황제인

당태종(唐太宗)은 화살에 눈이 맞아

애꾸가 된 채로 죽습니다.

 

이렇게 해서 노모의 현명함이 세 번이나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고 왕을 감동시켜,

이후 고려장이 사라지게 되었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그리스의 격언에

‘집안에 노인이 없거든 빌리라’

는 말이 있습니다.

 

삶의 경륜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잘 보여 주는 말입니다.

가정과 마찬가지로 국가나 사회에도

지혜로운 노인이 필요합니다.

물론 노인이 되면 기억력도 떨어지고,

남의 이야기를 잘 듣지 않고,

자신의 경험에 집착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그 대신 나이는 기억력을 빼앗은 자리에

통찰력이 자리를 잡습니다.

 

노인의 지혜와 경험을 활용하는 가정과 사회

그리고 국가는 발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웃어른을 공경하는 사회분위기를 조성합시다.

누구나 노인이 됩니다.

 

<옮겨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