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서 태어난 쌍둥이 자매, 8000㎞ 떨어진 美·佛로 입양… 유튜브 동영상 통해 존재 알아
자매의 첫 만남·입양 상처 등 각자 입장서 진솔한 감정 서술
아나이스 보르디에·사만다 푸터먼 지음
정영수 옮김|책담|368쪽|1만5000원
#아나이스
2012년 12월 15일 영국 런던 패션학교 센트럴세인트마틴스 대학에 다니는 한국계 프랑스인 아나이스 보르디에는 친구가 보낸 유튜브 동영상을 보고 숨이 멎는 것 같았다. 화면 속 아시아계 여성은 자신과 똑같은 얼굴로 웃는 모습과 헤어스타일까지 닮아 있었다. 그녀는 미국 코미디물 '하이스쿨 버진'이라는 4분짜리 짧은 영상에 출연해 10대 역할을 맡은 여배우였다. 영상에는 배우 4명이 등장하지만 이름이 없어 더 이상 정보를 알 수 없었다. 아나이스는 이듬해 2월 '21&오버'라는 미국 영화 예고편에서 이 여성을 또 보게 됐다. 이름은 사만다 푸터먼이었다. 아나이스는 인터넷에서 이름을 검색하고 충격을 받았다. 프로필에 있는 사만다의 생일은 1987년 11월 19일. 자신과 같은 날 태어난 것이다! 아나이스는 페이스북을 통해 사만다에게 '친구' 신청을 했다. "내 이름은 아나이스야. 프랑스 사람인데 지금은 런던에 살고 있어. 나는 1987년 11월 19일 한국 부산에서 태어났어. 1988년 3월 5일 프랑스에 도착했어. 생후 3개월 때였지."
#사만다
2013년 2월 21일 11시쯤 사만다는 휴대폰에 뜬 메시지를 봤다. '아나이스라는 친구가 페이스북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낯선 사람이 트위터나 페이스북으로 연락해 오면 대개는 열어보지 않지만 그날은 왜 그랬는지 페이스북을 열었다. "이런, 내 영상을 보고 누군가 나를 사칭하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었군." 그러나 메시지를 보낸 여성이 가짜 신분을 만들어낸 게 아니란 걸 알고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사진 속 여성은 비슷하게 생긴 정도가 아니었다. 얼굴에 주근깨가 있는 것도 같았다. 사만다는 답장을 썼다. "우리 스카이프(인터넷 영상통화) 하자. 시차가 있으니 몇 시에 할지 결정해야 할 거야."
- 1987년 11월 19일 부산에서 쌍둥이 자매로 태어나 생후 3개월 만에 프랑스와 미국에 각각 입양된 아나이스(왼쪽)와 사만다가 2013년 5월 13일 26년 만에 런던에서 처음 만나 유전자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작은 사진은 입양 직전 찍은 아나이스와 사만다 모습. /책담 제공
부산에서 태어나 생후 서너달 무렵 각각 프랑스와 미국으로 입양된 쌍둥이 자매가 26년 만에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됐다. 지구 반대편 8000㎞ 떨어진 거리를 인터넷과 SNS가 이어준 셈이다. 둘은 입양 기록을 찾아 보고 생모의 주민번호가 같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헤어져 자란 쌍둥이들을 연구하는 캘리포니아주립대 낸시 시걸 교수의 도움으로 유전자 검사도 받았다. 둘은 런던에서 처음으로 만난다. "샘(사만다)은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입체로 된 나였다. 나는 영혼이 몸을 떠나 자신이 죽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아나이스), "내가 아니었지만 마주 쳐다보고 있는 사람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나였다. 그 사람은 마치 내가 아는, 꿈속에서 나왔던 사람처럼 느껴졌다."(사만다)
둘의 이야기는 미국과 유럽은 물론 한국 언론과 방송에도 보도됐다. 둘이 직접 출연하고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 '트윈스터스(Twinsters)'는 지난 3월 텍사스 오스틴에서 열린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다. 둘은 첫 만남 이후 런던과 파리, 뉴욕과 로스앤젤레스를 오가며 함께 시간을 보내고 서울에서 열린 해외 입양아 모임에도 함께했다.
이 책은 아나이스와 사만다가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된 때의 감정, 처음 영상통화를 하고 서로 대면했을 때의 느낌 등 만남 이후 서로 함께했던 시간을 각자의 시선에서 서술한다. 둘은 다행히도 부유하고 건전한 양부모 밑에서 부족함 없이 자랐다. 하지만 피부색이 다른 입양아로서 느꼈던 상처를 술회하는 부분을 읽다보면 가슴이 저릿하다. "'쓰레기통에서 나를 찾은 거예요?' '아니야. 너를 낳아주신 분은 너를 낳자마자 곧바로 엄마랑 아빠한테 주셨어. 너는 절대로 버려지지 않았어.' 엄마는 나를 안심시켰지만 버려졌다는 느낌은 사라지지 않았다."(아나이스), "나는 뉴저지 베로나에 사는 모든 사람들처럼 내 모습이 파란 눈에 금발이기를 간절히 바랐다."(사만다)
아나이스와 사만다는 생모가 자신을 낳았다는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을 것이다. 둘은 말한다. "한때는 내가 왜 버려졌는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샘이 여기 있다. 그러니 더 이상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아나이스), "나는 내 생모를 사랑한다. 그녀는 내게 생명을 주었다. 내게 내 가족과 함께하는 인생을 주었고, 내게 쌍둥이 자매를 주었다. 덕분에 나는 최고의 사람들을 얻었다."(사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