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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가 안타까웠던 날...르누아르 미술관에서

淸潭 2015. 3. 1. 10:52

 

 

 

1월 15일 아침,

이곳을 떠나야할 날이 다가오는데...

나 자신에게 용기를 마구 부어주는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 큰 차를 몰고 좁고 꾸불꾸불하고 복잡한 도로를 운전할 일이 정말 너무나 끔찍한데

그래도 나가야지, 꿈에 그리던 남프랑스, 비록 미술에 대해 아는 지식도 없지만

방문하려고 계획했던 곳을 가야지...  언제 또 다시 오겠어?  말이 쉽지...

혼자 이렇게 중얼중얼...$%^&*(#@!  트리오가 드디어 미쳐가는지...ㅎㅎ

 

그렇게 용기를 내고 숙소에서 불과 6키로 밖에 되지 않는

Cagnes-sur-Mer에 있는 르누아르 미술관 주소를 네비에 입력하고

무사히...별 어려움 없이 도착하니 아침 10시...

입구 앞에 파킹장도 넉넉하게 있었습니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Pierre Auguste Renoir, 1841년2월25일 - 1919년 12월3일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의 대가로 78세의 일기를 살았습니다.

며칠 전이 그의 174번째 생일이었네요.

 

 

 

 

아침 10시...뮤지엄에는 직원들 밖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P1020711ss.jpg

 

 

 

기념품 가게를 지나 넓은 정원과 오렌지가 주렁주렁 열린 나무들을 지나

미술관은 크고 넓고 모던하게 리모델링한 만년의 그의 저택이었습니다.

아내인  Aline Charigot은 르누아르가 죽기 4년 전에 먼저 죽었으니

부부가 거의 일생을 함께 해로하였군요.

 

 

 

 

 

 

 

 

사방으로 창을 통해서 지중해의 푸른 바다가 보이고 경치가 대단히 좋은 위치에 있고

대지도 얼마나 넓은지... 아, 이곳에서 모델을 놓고 그림을 그렸겠구나.

이 포스팅을 하기 전에 작년에 나온 영화 <르노아르>를 구해서 보았는데

영화를 이곳에서 촬영한 것같지는 않았지만 영화에 나온 집이

이 집의 구조와 아주 비슷하고 다만 구석구석 옛 모습이었습니다.

넓은 정원에서 모델을 놓고 휠췌어에 앉아 그림을 그리는 장면이

이곳의 정원과 흡사했고 실내도 많이 흡사해 보였습니다.

 

 



 

 

 

 

 

 

 



 



 


 



 

미술관 내에는 그의 작품도 있었지만 그의 작품보다는 친구 화가들이 그린

그의 모습, 그의 동상 등 친구 화가들의 작품이 상당히 많이 전시되어 있었고

그와 그의 가족들의 사진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가 그림을 그리던 방에는 휠체어와 화구, 물감들이 놓여 있었고

한쪽 벽에서는 무성영화 (위의 동영상)를 보여주는데

아들 Jean이 일일이 물감을 짜 놓으며 시중을 들고 있었고 조금 후에는 어떤 젊은 남자가 와서 재미있게

대화를 하는 것을 보고 안내원에게 저 사람이 누군가 물으니...영화 만드는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진지하게, 또는 즐겁게 담소하는 것을 보면서 음성이 들렸으면 참 좋았을 텐데..라고 하면서

그런데 노년의 르노아르가 담배를 무척 많이 피우고 있어서 어쩌면 저렇게 담배를 많이

피웠을까...라고 안내원에게 물으니 담배 골초였다고, 아주 좋아했다고 하길래

그래도 오래 살았잖느냐고 했더니 맞다고 하면서 담배 때문에 죽은 것은 아니라고 하더군요.

그러니 담배가 몸에 나쁘다는 것도 사람에 따라서 다른가 봅니다.

 

 


영화 르누아르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작년에 나온 영화 르노아르를 구해서 보았습니다.

관절염을 심하게 앓고 있어서 도저히 그림을 그릴 수 없지만

그는 따뜻한 물에 손을 맛사지 하면서

붓대를 손에 묶어서까지 그림을 놓지 못하는 화가였지요.

지독하게 가난하게 살다가 너무나 일찍 죽어버린 고흐와는 다르게

장수한 결과 그는 큰 집을 누리며 많은 하인들의 수종을 들며 말년을 지냈더군요.

 

피카소의 7명의 여인을 7뮤즈라고 하는 것처럼 화가들에게는 과연 뮤즈가 필요한 것인지...

르노아르에게도 뮤즈가 필요했는지, 그에게 어느 날 르노아르의 죽은 아내가 보냈다고 하면서

젊고 아릿다운 여인이 모델을 하겠다고 찾아 옵니다.

그러나 르노아르는 이미 늙어서 피카소처럼 여인을 여인으로 탐하지는 않고

오직 나신을 그리고, 그 맑고 하얀 피부를 그리지요.

밤에는 심한 통증으로 짐승처럼 고통으로 울부짓다가도 아침에 일어나면 다시 그림을 그립니다.

더구나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고 르노아르에게 목욕을 시키는 등

온갖 시중을 드는 서녀명의 여인들은 다 예전에 모델이었다가

이제는 집안일을 하는 여인으로...로노아르를 보스 Boss 라고 부르더군요.

 

 

 

 

 

 

 

 

 

 

마지막 죽는 순간 까지도 붓을 손에서 놓지 않았던 화가...

그의 그림에 대한 열정이 화가로서의

영화에 나오는 집이 지금의 미술관이 비슷해 보였습니다.

물론 지금의 집은 현대적으로 리모델을 하였지만요.

전쟁에 나갔다가 부상을 입고 돌아온 아들 Jean은 당연히 젊고 아름다운 여인에게 마음이 끌리지만

아버지의 모델로서의 그녀의 위치를 지켜주며 아버지를 지극 정성으로 보살피다가

다시 전쟁터로 떠나고... 

젊은 열정에 괴로워하던 그녀도 화가의 모델로서의 위치를 지키며 뮤즈로 남지요.

 

 

 

 

미술관을 나오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더욱 절실하게 생각했던 것은 고흐였습니다.

어쩌다 유럽여행을 하다 보니 고흐, 모네, 밀레, 피카소, 마티스, 샤갈, 드가, 등 많은 화가들의

생가나 무덤, 미술관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일 안타까운 화가는 역시 너무나 짧은 삶을 기독하게 가난하게 살았던 고흐,

비록 그가 남긴 그림은 작금에 천문학적인 숫자로 매매되고 있지만

르누아르나 지베르니에 정원을 남긴 모네, 피카소나 마티스, 샤갈은

오랜 세월을 살면서 생전에도 부를 누렸지만 후대에도 그림은 물론 미술관, 정원, 등을 남긴 것을 보니

왜 그리 고흐의 생애가 안타까운지...

그가 조금만 더 오래 살았더라면 고흐도 좀 더 여유로운 생활을 생전에 누렸을텐데...

그가 남긴 것은 이국 땅 빠리 근교 오베르 쉬르 와즈에 초라한 무덤 뿐...

물론 암스테르담은 비롯해 세계 각국의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그의 많은 작품이 남아있기는 하지만요.

  

 

ps: 영화 표지만 제외하고 모든 사진은 르누아르 미술관에서 찍은 것입니다. 

 

 

 

 

프랑스의 작곡가 Camille Saint Saens의 

Introduction & Rondo Capriccioso를 이작 펄만이 연주합니다.

날도 좀 흐리고 기분도 덩달아 울적해서 듣고 싶은 음악입니다.

생상이 1863년에 스페인의 파블로 데 사라사테를 위해서 작곡하여

그에게 헌정한 작품이지요.

사라사테의 연주로 1867년 4월 4일에 빠리에서 초연되었다고 합니다.

 

언제 들어도 우아하고 화려하고 아름다운 곡이지요.

그러나 이곡도 사라사테의 지고이네르바이젠처럼

너무 대중적이라고 해야 하는지...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좋은 걸 어떻하지요.

좋다는 것이 무슨 이유가 있어야 하나요?

좋으면 그저 좋은 것이지요. ㅋㅋ

 참으로 무식한 말을 하고 있는 첼로입니다.

 

 

 

 

가져온 곳 : 
카페 >♣ 이동활의 음악정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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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cello911| 원글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