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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고기 푸짐한 진국 한 사발에 몸도 마음도 뜨끈

淸潭 2013. 10. 20. 18:07

 

머릿고기 푸짐한 진국 한 사발에 몸도 마음도 뜨끈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2013.10.20 00:05

주영욱의 이야기가 있는 맛집 <25> ‘오복’ 진곰탕

진곰탕. 소 머릿고기만 들어 있다. 사골이 듬뿍 들어간 국물이 진하고 여운이 많이 남는다.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탕반(湯飯) 음식, 즉 국물과 밥을 함께 먹는 음식을 사랑하는 사람들도 없다. 주변 쌀 문화권인 일본·중국에서도 국물과 밥을 먹기는 하지만 우리와는 좀 다르다. 우리는 국물이 주식의 일부분이어서 밥을 먹을 때 반드시 같이 있어야 하지만 그들에게는 있어도 없어도 그만인 선택 사항이다. 게다가 우리가 하는 것처럼 밥을 말아서 먹지도 않는다.

한번은 일본에 갔다가 일본 사람들하고 식사를 하면서 아무 생각 없이 국에 밥을 말아 먹었던 적이 있었다. 나중에 같이 있던 재일교포께서 “일본에서는 보통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조심스럽게 알려주셨다. 아주 가난한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옛날부터 널리 퍼져 있어서 그렇다고 했다. 나야 뭐 한국 사람이니 상관없고 가난하게 보인다는 게 뭐가 어때서 하고 흘려버리면서도 문화 차이에 너무 무신경했던 것 같아서 공연히 민망하긴 했었다.

날씨가 쌀쌀해지면 따끈한 국물 생각이 절로 난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뜨겁고 진한 국물에 밥을 푹푹 말아서 한 숟가락 입에 넣으면 훈훈해질 것 같다. 전날 술이라도 한잔 했다면 아침부터 이런 생각이 더 절실해진다. 이런 지경이면 점심 때 국물 있는 것을 먹으러 어디로 갈까 하는 궁리에 일은 뒷전이다.

따끈한 국물이 생각날 때면 내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곰탕이다. 이런저런 재료들을 넣고 오래 끓였다는 ‘고음’에서 비롯된 것이니 우리나라 국물 음식의 가장 원조 격인 셈이다. 아주 소박한 음식이지만 뜨끈하고 충실한 고기 국물에 밥을 말아 잘 익은 깍두기를 곁들여 먹으면 구첩반상 진수성찬 부럽지 않은 훌륭한 식사가 된다.

곰탕은 딱히 한 가지 맛이 아니다. 끓이는 재료에 따라 여러 가지로 맛이 달라진다. 머릿 고기만 넣어서 끓여내는 곳도 있고, 양지머리·차돌박이·양 같은 것들을 함께 넣어 끓이는 곳도 있다. 사골이나 소뼈를 넣는 곳도 있고 그렇지 않은 곳도 있다. 내력 있는 곰탕집이라면 모두 자신들만의 비법과 내공에 따라 독특한 풍미를 만든다. 이런 집들을 하나씩 알아가는 것도 식객으로서는 큰 재미 중 하나다.

서울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곰탕집 중 하나는 서울 신사동 사거리 근처에 있는 ‘오복’이라는 곳이다. 그 부근이 모두 논밭이던 1979년에 문을 열었는데 이제는 그 일대가 강남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 되었다. 주인 조성숙(60)씨가 1984년 시누이로부터 인수해 지금까지 그때 그 자리, 그 모습대로 운영하고 있다. 원래 처음 이름은 웃으면 복이 온다는 의미에서 ‘소복(笑福)’이라고 했는데 사람들이 하도 상복 같다고 놀리는 바람에 본인이 인수하면서 다섯 개의 복이 들어오라는 뜻의 ‘오복(五福)’으로 이름을 바꿨다.

‘오복’은 진곰탕, 꼬리 곰탕, 우족탕의 세 가지 곰탕을 한다. 모두 같은 국물을 사용한다. 사골과 꼬리, 우족, 머릿고기를 넣고 삶아낸 것이다. 이 국물에 진곰탕은 머릿고기만 넣고, 꼬리 곰탕은 꼬리, 우족탕은 우족을 넣어서 손님 상에 낸다.

오복의 간판. 옛날에는 꼬리곰탕이 대표메뉴였다. 3 오복집 내부. 1979년 개업했을 당시의 모습 그대로 작고 소박한 모습이다. 사진 주영욱


이 집의 국물 맛은 진하면서도 깔끔한 맛이 특징이다. 보통 곰탕이나 설렁탕에서 나는 꼬리꼬리 한 냄새도 나지 않는다. 끓이는 과정에서 들이는 정성이 그 비결이다. 사골의 핏물을 깨끗하게 씻어서 맑은 물에 일차 삶고, 그 물을 버리고 다시 사골을 물에 씻어 끓여낸다. 이렇게 하면 잡미가 없고 냄새가 나지 않는다. 매일 매일 새로 삶기 때문에 더 신선하다. 그날 끓여 준비한 국물을 사용하고 그 국물이 떨어지면 문을 닫는다.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메뉴는 진곰탕이다. 소 머릿고기가 푸짐하게 들어간 진한 국물의 진곰탕을 한 그릇 먹으면 속이 따뜻해지면서 그 여운으로 입안이 꽉 찬다. 화려하기보다는 오래 기억에 남는 진국의 맛이다. 함께 내어 오는 신선한 양념 부추를 곁들이면 상큼하고 쌉쌀한 부추의 맛이 고기와 국물의 맛을 더 풍성하게 해주는 것이 아주 찰떡 궁합이다.

추운 날, 몸이 으슬으슬해지고 마음이 스산할 때면 중독처럼 ‘오복’의 뜨겁고 진한 국물 맛이 생각난다. 소박한 공간, 딱딱한 통나무 의자에 걸터앉아 진곰탕 한 그릇을 뚝딱 비우면 몸도 마음도 따뜻해질 것 같아서 발길이 그쪽으로 향해진다. 나 같은 ‘중독자’들이 많아서 경쟁이 너무 치열한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오복 : 서울 서초구 잠원동 21-7. 전화 02-542-4610. 테이블 7개, 28석의 작은 규모여서 점심 때는 줄을 길게 서야 할 때가 많다. 저녁에는 좀 한가하다. 일요일에는 쉰다. 진곰탕 1만3000원.



음식ㆍ사진ㆍ여행을 좋아하는 문화 유목민. 마음이 담긴 음식이 맛있다고 생각한다. 마케팅 전문가이자 여행전문가. 경영학 박사. 베스트레블 대표. yeongjyw@gmail.com

주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