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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박정희 대통령도 반한 할머니 손맛 ‘경희식당’

淸潭 2013. 3. 30. 11:35

이승만-박정희 대통령도 반한 할머니 손맛 ‘경희식당’

 

기사입력 2013-03-30 03:00:00

 

“최고의 재료 써라” 할머니 유훈 따르려 산나물 손수 재배


경희식당을 운영하는 이두영 씨와 딸 무정 씨가 4인 밥상을 떡 하니 차려놓았다. 1인분에 2만5000원인데 “식재료가 좋으니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의견과 “너무 비싸다”는 반론이 있다. 남은 반찬은 종이도시락에 싸갈 수 있다. 속리산=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여관이 투숙객에게 아침식사를 제공하던 시절이 있었다. 집에 찾아온 손님을 그냥 돌려보내지 않는 정과 덤의 문화였다. 지금도 역사가 오래된 온천지역 일부 숙박업소는 이런 전통을 이어간다.

1974년 어느 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속리산 법주사를 찾았다. 1박 일정이었다. 경호원들은 절 입구 ‘경희여관’에 투숙했다. 다음 날 주인장으로부터 아침상을 받은 경호원들은 감탄했다. 참나물무침, 더덕과 북어 보푸라기, 집 된장, 도라지무침과 산두릅무침, 표고버섯이 들어간 불고기와 조기구이….

경호원들의 이야기는 박 전 대통령에게까지 전달됐다. 그리고 여관 주인 남경희 여사(2002년 88세 나이로 작고)에게 “대통령께서 음식을 드시고 싶어 한다”고 전했다. 남 씨는 유리로 된 5합 그릇에 정성스레 밥과 반찬을 담았다.

식사를 마친 박 전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이며 ‘새마을식단’이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그리고 남 씨 소원이 뭔지 알아 오라고 했다. “지금 여관자리는 숙박업소는 가능하지만 식당은 할 수 없는 구역입니다. 도와주세요.”

충남 보은군 속리산면 사내리 법주사 입구에서 40년째 영업 중인 ‘경희식당’이 생겨나게 된 일화다.

지난해 6월 15일 채널A ‘이영돈 PD의 먹거리 X파일’에서 ‘착한식당’으로 선정된 경희식당을 27일 10개월 만에 다시 찾았다. 기자의 관심은 얼마나 맛있고, 얼마나 착한 재료를 쓰며, 또 가격은 얼마인지가 아니었다. 1950년대부터 반세기 동안 중부권 최고 한식밥상을 차려온 고인의 손맛이 얼마만큼 유지되고 있는지가 궁금했다.

2001년 기자가 이 식당을 찾았을 때 남 씨는 정정한 모습으로 음식 하나하나를 설명해줬다. 그리고 저서 ‘70년 손맛, 남경희 할머니의 최고의 한식 밥상’에 사인까지 해주었다. 이듬해 그는 고인이 됐다.

12년 만에 다시 받아 본 한식 차림. 기억을 더듬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게 많다. 한 차림 상에는 공깃밥과 국, 불고기전골에 조기구이가 기본이고 나물반찬이 줄줄이 나온다. 3월 말이라 햇나물은 아니지만 지난해 수확해 영하 18도로 급속 냉동시켜 맛과 향이 유지된다. 나물은 국내산 고사리와 홑잎 아주까리 뽕잎 두릅 다래순, 버섯은 싸리 표고 외꽃, 그리고 인삼튀김과 집에서 만든 두부가 눈에 띈다. 북어와 더덕 보푸라기는 한식의 방점인 정성과 인내가 배어 있다. 겨자가루를 미지근한 물에 갠 뒤 넓은 그릇에 펼쳐 따뜻한 밥뚜껑 위에 올려 발효시킨 겨자장은 기다림의 결과물이다.

할머니가 떠난 지 12년이 지난 지금까지 맥을 이어온 비결과 사연이 궁금했다. 지금의 주인 이두영 씨(59)는 고인의 맏손자다. 고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했지만 신통치 않자 1995년 속리산으로 들어앉았다. 부친 이병종 씨(2006년 작고)가 은행에서 정년퇴직한 뒤 이미 할머니 일을 도와주던 터였다. 아들이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요리라고는 문외한이지만 서서히 ‘서당 개’가 돼 갔다.

“할머니의 신조는 좋은 재료였어요. 재료를 구입할 때 싼 것과 비싼 것이 있으면 비싼 것을 구입하라 하셨지요. 다 이유가 있다는 거였어요.”

매년 5월에서 10월이면 식당 앞에는 동네 아낙네들이 줄을 섰다. 속리산에서 채취한 나물과 열매를 팔기 위해서였다. 할머니는 항상 “값을 후하게 쳐 주라”고 했다. 장사도 잘됐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덕분에 싱싱하면서도 순수 국내산인 재료를 확보할 수 있었다.

좋은 재료 사용→최고의 맛→소문→손님 증가→수익 증대는 곧 비싼 재료를 구입할 수 있는 여건이 됐다. 선순환구조였다.

“할머니는 고학력자는 아니지만 지금으로 따지면 최고의 마케팅 능력을 지녔던 것 같아요. 삼계탕을 만들기 위해 닭 100마리를 구입한 뒤 30∼40마리가 남으면 그날로 모두 소비해버렸죠. 오신 손님들에게 더 주든가, 아니면 음식을 만들어 영향력(?) 있는 공무원들에게 퍼 날라 주셨죠. 마케팅 전략인 셈이죠.”

할머니는 원래 대전에서 조그만 식당을 했었다. 1949년 충남도청이 있던 대전 중구 선화동에서 ‘태호’라는 한식당을 운영했다. 당시 궁중음식을 배웠던 시누이와 동업했다. 음식 맛이 좋기로 소문났다. 6·25전쟁이 일어나자 이승만 대통령이 피란차 부산으로 가던 중 잠시 충남도청에 들렀다가 할머니의 비빔밥을 먹게 됐다. 그리고 내무국장을 시켜 “맛있었다고 전해 달라”고 한 뒤 부산으로 갔다. 이 소문은 대전에서 전국으로 퍼졌다. 할머니는 유성온천에 있던 국군휴양소(지금의 유성구 봉명동 계룡스파텔)에서 한식당을 운영하기에 이르렀다.

할머니는 어느 날 식당 화장실에 족제비가 빠져 죽어 있는 것을 보고 “이제 운이 다했다”고 생각했다. 그때 연고도 없는 속리산에 밥을 팔 수 있는 여관이 매물로 나왔다는 지인의 말을 듣고 오늘에 이르렀다. 당시 60세였다. 경희식당의 역사를 1949년부터 계산해 ‘64년 전통’이라고 하는 이유다.

이 씨는 옛 단골들이 무섭다. 할머니 음식을 먹어 본 이들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옛날 맛이 아닌 것 같다”고 꼭 한마디씩 한다.

“과거 주방에서 일했던 분들 대부분은 지금도 계세요. 건강만 허락된다면 앞으로도 이분들이 주방을 책임질 겁니다.” 할머니의 맛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주방으로 가봤다. 바닥까지 훤히 들여다보이는 주방은 넓고 시원해 보였다. 주방은 평일에는 3명, 주말과 휴일에는 5, 6명이 맡는다. 김명순 씨(62)는 35년째 이 집에서 일하고 있다. 겨자장과 다래순 등 나물 10개를 맡고 있다. 30년째 일하는 박오자 씨(63)는 밥과 인삼튀김 조기구이와 된장 전담이다. 주말과 휴일이면 근처에 사는 유복구(67), 김순례 씨(72)도 합류한다. 두 사람은 할머니가 대전에서 식당을 할 때부터 함께해 온 동반자로 45년째다. 각자 맡은 일에 펑크가 나면 본인이 책임진다. 인삼튀김이 소진되면 박 씨가 책임져야 한다. 하지만 30년 이상 베테랑들이라 그런 일은 거의 없다.

“할머니가 계시지 않아 손맛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는 저도 모릅니다. 그리고 지금도 함께하시는 분들이 모두 60세가 넘으셔서 언제까지 같이 한다는 보장도 없고….”

이 씨는 고민 끝에 할머니가 늘 하시던 말씀에서 답을 찾았다. “최고의 재료를 써라. 거기서 맛의 90%는 결정된다. 나머지 손맛은 비율이다. 경륜과 정성이 있으면 계량하지 않아도 된다. 그게 바로 손맛이다.”

최고의 재료를 확보하기 위해 이 씨는 6대째 물려받은 충남 논산시 양촌면 임야를 6년 전 개발하기 시작했다. 임업후계자로도 지정받았다. 그리고 두릅나무 20만 그루, 매실 300그루를 심고 헛개나무, 가시오가피, 뽕나무도 심었다. 더덕은 씨를 뿌렸다. 나무가 자라고 생태가 변하면서 고사리와 취나물이 자생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경희식당에서 사용하는 40가지의 반찬 중 절반 이상을 ‘경희농원’에서 해결할 수 있게 됐다.

고민도 많다. 손님들이 도토리묵을 찾는데 국내산을 구할 수 없다. 인건비가 비싸 산에서 도토리를 줍는 경우가 드물다. 박고지정과도 할머니 때에는 재배 농가가 있어 내놓았으나 지금은 박을 재배하는 집이 없다. 이 씨는 “동아일보에서 이 얘기도 써 달라. 지금이라도 국내산이 있다면 구입할 용의가 있다고”라고 했다.

‘착한식당’으로 선정돼 손님이 크게 늘면서 곳곳에서 불만도 터져 나온다. 음식이 바닥나 2∼3시간 기다리게 하는 것도 미안하다. 일하는 사람이 부족해 주말에 밀려오는 손님을 제대로 서비스하지 못할 때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관광지의 경우 일주일에 이틀 장사예요. 이틀을 위해 인력을 구하고 싶지만 농촌에서 쉽지 않네요.”

식당일은 딸 무정 씨(23)와 함께 한다. 조리사 지망생으로 요리학원에 다니고 있다. 아내는 농원에서 일하기 때문에 식당에 얼굴 비치기가 쉽지 않다. 딸은 손님이 오면 상차림에 올라 있는 나물 종류에 대해 설명해준다. 그리고 남은 반찬은 모두 싸 가지고 가라며 종이도시락을 건넨다.

“할머니는 유언 없이 돌아가셨어요. 하지만 음식을 만들 때 항상 하셨던 말씀이 유언이 아닌가 싶습니다. ‘음식을 만들 때에는 잡념이 없어야 돼. 돈 이런 거…. 오로지 먹는 사람의 표정을 생각하며 정성을 쏟아야지.”

속리산=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한식·양식·중식조리기능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