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전원주택

두 칸 방 안으로 앞산 끌어안고… 이만하면 족하지 않은가

淸潭 2011. 10. 26. 17:48

두 칸 방 안으로 앞산 끌어안고… 이만하면 족하지 않은가

[금산주택 설계한 부부 건축가 임형남·노은주]
상식을 깨고 北向으로 집 지어 마루·방에서 진악산이 한눈에…
방 사이 장지문 열면 개방감 커져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선 집의 크기를 거기 사는 사람의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척도로 여기곤 한다. 성공한 사람일수록 큰 집에 산다는 인식이 생겨나면서 가족의 수는 그대로여도 집은 늘려 가는 게 당연시됐다. '큰 집=좋은 집'이라는 등식도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지난 5월 완공된 충남 금산군의 '금산주택'은 이런 풍조에 의문을 제기하는 집이다. 부부 건축가인 가온건축 임형남(50) 대표와 노은주(42) 소장이 함께 설계했다. 건물 면적이 69㎡(21평)에 지나지 않는 단층 목조주택이다. 위에서 내려다본 집의 평면 모양도 멋을 부리지 않고 반듯한 직사각형이다. 두 건축가는 서울 청진동, 강원 춘천, 전북 전주 등 전국에 집을 지으며 크고 화려한 집을 짓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믿음을 얻었다고 한다. 이 집에도 그런 믿음이 반영돼 있다.

건축가 임형남(사진 오른쪽)·노은주(사진 왼쪽) 부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완성도를 인정받아 올해 문화체육관광부가 공모한 한국공간디자인대상에서 문화부장관상을 받았다. "단순하고 작지만 주변과 자연스럽게 소통하고자 했으며, 서양식 목(木)구조를 적절하게 해석했다"는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최근 금산군 현장에서 만난 두 건축가는 "쉽게 구할 수 있는 경제적인 재료로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집을 짓고자 했다"고 했다.

지난해 이 집의 건축주가 두 건축가를 찾아와 "집을 지으려고 설계를 받아 봤다"며 도면을 내밀었다. 설계도와 대지를 살펴본 뒤 임 대표는 상식과 달리 북향(北向) 집을 제안했다. "관습적으로 남향 집을 그리다 보니 가장 중요한 경관인 북쪽의 진악산을 화장실과 부엌에서만 바라볼 수 있었다. 누구한테나 적당히 맞지만 사실은 누구에게도 딱 맞지 않는 기성복처럼, 무난한 듯하면서도 주변 환경과 어울리지 않는 설계였다."

당초 설계도상 이 집은 방 3개짜리 40여평 규모였다. 두 건축가는 크기도 절반으로 줄이자고 했다. "평소엔 부부가 살고 가끔씩 자녀들이 찾아오는 정도라면 그렇게 큰 집을 지을 필요가 없다"는 이유였다. 결국 방 두 칸 43㎡(13평), 마루 26㎡(8평)인 규모로 결정됐다.

상식을 깨고 북향을 택한 결과 마루와 방에서 멀리 늠름하게 솟아 있는 진악산을 바라볼 수 있게 됐다(위). 밖에서 보면 왼쪽 마루에 방 두 칸이 연결된 일자 집이다(가운데). 방 두 칸이 연결돼 있어 장지문을 열면 하나의 큰 방이 된다. 장지문 여러 개와 천장 근처의 작은 창 등이 겹쳐 있어 비좁아 보이지 않는다. /사진가 박영채

작은 집이지만 좁아 보이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 방 사이의 장지문을 활짝 열면 집 전체가 하나의 큰 방이 돼 개방감이 커진다. 마루에서 바라보면 두 칸의 방부터 다락으로 올라가는 계단까지 일자로 뻗어 있어 공간이 깊어 보인다. 나중에 더 넓은 집이 필요해지면 지금은 외부로 열려 있는 마루의 기둥 사이에 벽을 만들어 증축할 수 있게 했다.

살기에 비좁지는 않을까. 국토해양부가 지난 5월 발표한 최저주거기준에 따르면 가구당 최소 주거 면적은 1인당 14㎡(4평)다. 노 소장은 "화장실이나 취사공간 등을 고려해도 1인당 18㎡ 정도면 충분히 생활할 수 있다"고 했다.

목조를 택한 것은 "이 집만 튀지 않게 해달라"는 건축주의 부탁 때문이었다. 화려하지 않으면서 주변의 자연과 잘 어울리는 재료가 목재였던 것. 목조 단독주택은 한옥으로 짓는 게 일반적이지만 비싼 공사비가 문제였다. 임 대표는 "같은 규모의 전통 한옥은 공사비가 3배는 더 든다"며 더 경제적인 재료로 전통 건축의 느낌을 구현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서까래는 물론 콩댐(간 콩과 들기름 등을 섞어 마루나 장판에 바르는 것)으로 윤을 낸 마루에도 대량 생산되는 자재인 구조목을 그대로 써서 비용을 절약했다. 양생(養生) 등 콘크리트 구조로 공사할 때 필요한 기간까지 단축돼 완공까지 6주가 걸렸다.

처마선 아래로 드러난 서까래처럼 이 집 곳곳엔 한옥의 요소가 남아 있다. 다만 지붕이 직선이고 서까래도 둥근 나무가 아니라 네모 반듯한 구조목이다. "지붕을 곡선으로 하려면 안에 흙을 채워야 한다. 한옥을 짓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그 느낌을 살리되 새로운 방법으로 재해석했다"는 설명이다.

이 집에는 '형님'격인 다른 집이 있다. 퇴계 이황이 세운 도산서당이다. 옛 1000원짜리 지폐에 그려진 도산서당 역시 방 두 칸에 마루가 붙은 일자 집이다. 두 건축가는 "매우 작은 집인 도산서당에는 자신을 낮추고 남을 존중한다는 퇴계의 경(敬) 사상이 구현돼 있다"고 했다. "건축주의 나이(57세)와 퇴계가 도산서당을 짓기 시작한 나이가 같았다. 건축주는 인근 대안학교 관계자, 퇴계는 교육자라는 점도 닮았다. 노년의 퇴계가 제자들을 가르쳤던 도산서당처럼, 학생들이 수시로 찾아오는 이 집도 자연 속에서 학생들과 함께하는 공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