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스포츠

사막도 극지도 거침없이…

淸潭 2011. 1. 22. 20:00

[스포츠에 미쳤어요!] 미국 땅 5100㎞ 그가 또 길을 떠난다

 

스포츠에 미쳤어요!] 사막도 극지도 거침없이…

 

극한 마라토너 안병식영화 '포레스트 검프(1994)'에서 IQ 75의 주인공 검프는 발길 닿는 대로 3년 동안 미국 전역을 달린다. "별 이유는 없어요. 길 끝에 왔을 때 마을 끝까지 달려보고 싶었고, 거기까지 가니 그린보우를 가로질러 뛰고 싶었죠…." 제주대 미술학도였던 안병식(38)은 영화를 보다 이 대사에 꽂혔다. "어릴 때부터 방에 틀어박혀 주로 만화를 그렸어요. 근데 검프처럼 그냥 자유롭게 달려보고 싶었어요. '뛰고 싶다'는 열망이 가슴 속에 꿈틀거렸습니다."

사막 마라톤의 그랜드 슬래머

1998년 5㎞ 건강 마라톤이 시작이었다. 특별한 운동을 해본 적이 없는 터라 처음엔 10분만 뛰어도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다행히 고향엔 달릴 곳이 많았다. 제주의 수많은 오름에서 체력을 다진 그는 한라산을 뛰어다녔다.

안병식씨가 2008년 뜨거운 사하라사막의 햇볕 아래를 달리고 있다. 대학 시절 미술학도였던 그는 우연히‘뛰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혀 전 세계 오지를 누비는 극한 마라토너가 됐다. /안병식씨 제공

마라톤 풀코스, 100㎞ 울트라 마라톤, 아이언맨 대회(수영 3.8㎞, 사이클 180㎞, 마라톤 42.195㎞)를 차례로 섭렵한 그가 눈을 돌린 건 사막이었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컸어요."

2005년 사하라사막으로 날아간 것이 그의 첫 해외여행이었다. 늦바람은 무서웠다. 2006년 '사하라 레이스', 중국 고비사막을 넘는 '고비의 진군', 칠레 아타카마사막에서 펼쳐지는 '아타카마 크로싱'을 완주했다.

1주일 동안 200~250㎞를 달려야 하는 강행군이었다. 고비사막에선 우승까지 했다. 이듬해 남극에서 130㎞를 달리는 '라스트 데저트'를 완주하며 안병식은 오지(奧地) 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2008년 북극점 마라톤대회에서 우승한 직후의 모습. 추위에 땀이 그대로 얼어붙었다. /안병식씨 제공

이후에도 베트남 정글, 스페인의 카미노 산티아고, 프랑스 몽블랑에 도전했다. 2008년엔 북극점 마라톤대회에서 우승하기도 했다. "냉동창고 안에서 러닝머신을 뛰는 기분이었어요. 추위에 땀이 그대로 얼어붙더군요."

혼자 있길 좋아했던 그는 극한 마라톤이 준 변화가 즐겁다고 했다. "일주일에서 한 달 이상을 같은 목표로 달리다 보면 동지애가 생겨요. 제가 '생존 영어'로 외국 친구들과 마음을 터놓을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죠."

그래서 2006년 아타카마를 잊지 못한다. 어쩌다 보니 5명이 선두그룹으로 달렸다. 그 중엔 미국 스키 국가대표도 있었고 캐나다의 변호사도 있었다. "함께 달리다 손을 잡고 동시에 결승선을 통과했어요. 코끝이 시큰거렸죠."

남극 횡단 기록을 세우고 싶다

달리며 감상하는 숨 막히는 풍광은 극한 마라톤의 보너스다. 지구에서 달과 가장 닮았다는 아타카마의 '달의 계곡', 붉은 노을에 물든 사하라의 모래 언덕, 별이 쏟아져 내리는 고비의 밤하늘이 그가 꼽는 절경(絶景)이다.

"관광객들이 눈으로 풍경을 훑는다면 우린 직접 뛰어들어 몸으로 느끼는 거죠." 안병식은 달리기에 미쳐 아직 미혼이다. 미술학원 강사를 그만둔 그는 노스페이스와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의 후원으로 대회 경비를 마련한다.

다음 목표를 묻자 목소리 톤이 높아졌다. 지난해 일주일 간격으로 프랑스(1150㎞)와 독일(1200㎞)을 세계 최초로 횡단한 그는 올 6월 세계에서 가장 긴 마라톤 코스인 LA~뉴욕 횡단에 도전한다. 5100㎞를 70일가량 달려야 한다.

미 대륙을 발아래에 놓은 뒤엔 남극점 1100㎞ 마라톤에 나선다. 목표는 2009년 캐나다인이 세운 세계 기록 33일을 깨는 것이다. 날씨가 풀리면 한 달에 1000㎞ 이상 달리며 부지런히 몸을 만들 생각이다.

언젠가 이 경험을 화폭에 담고 사진전도 열 계획이다. "지금도 '왜 뛰느냐'고 많이 여쭤보세요. 스스로 그런 용기를 낸 저 자신에 만족하고 행복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