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부처님 마음

[붓다를 만난 사람들] ② 끼사 고따미

淸潭 2010. 5. 12. 15:10

[붓다를 만난 사람들] ② 끼사 고따미
자식 죽음으로부터 생로병사 인연 깨닫다
기사등록일 [2010년 05월 10일 16:07 월요일]
 

모진 시집살이 끝에 얻은 아들 죽자 방황
인과 법칙 깨닫고 수행자로 다시 태어나

부처님 당시, 북인도에 있었던 16대국 가운데 하나인 코살라국의 수도 사왓띠는 풍요로움을 자랑하는 대도시였다. 끼사 고따미는 이 대도시의 한쪽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어느 한 가난한 바라문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보기에도 측은할 정도의 빈약한 인상과 체형을 지닌 탓에 그녀는 말라깽이(끼사) 고따미라 불렸다. 사춘기를 앞둔 어느 날, 그녀는 행복을 꿈꾸며 상인의 아들과 혼례를 올렸다. 그러나 가난한 집안 출신이라는 이유로 시부모는 그녀를 구박하며 학대했고, 남편 역시 다정하게 대해주지 않았다.

결혼하지 않는 여자에게는 사후, 천계의 문도 굳게 닫혀 있다고 여겨지던 고대 인도의 바라문교 사회에서, 여자로 태어난 이상, 그녀에게 있어 결혼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고, 또한 결혼한 이상 그녀가 의지해야 할 대상은 남편과 시집 식구들뿐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외면당하며, 끼사 고따미는 희망이라고는 없는 그저 막막하고 고된 날들을 보내야 했다. 왜 살아가는지, 언제까지 이 고통은 계속되는지, 정말 아무런 삶의 희망도 보이지 않는 하루 하루였다.

“가난한 집 딸” 이라며 구박

그러던 어느 날, 그녀에게도 행복이 찾아왔다. 아들을 낳은 것이다. 어머니라는 이름을 얻은 끼사 고따미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이 사랑스러운 아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자신의 삶의 의미를 되찾게 해 주는 존재였다. 무엇보다, 남성 위주의 고대 인도사회에서 아들의 출산은, 그녀를 사회적 존재로서 인정받게 해 주는 일이었다. 가장이 된 남자의 가장 큰 의무는 조상에 대한 제사의 지속을 위해 가계를 존속시키는 일, 다시 말해, 다음 가장이 될 남자아이를 생산하는 것이 최대의 의무였다. 그러나 이는 남자의 의무라기보다는 오히려 여자에게 더 큰 역할을 요구하는 일이다.

여자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는 결혼해서 가계를 존속시켜 줄 아들을 생산하는데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들을 낳은 여성은 이제 ‘아무개의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게 된다. 이제 죽어 천계에 가서도 조상들 앞에 당당히 얼굴 들고 나설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의무를 잘 실행해 낸 끼사 고따미를 남편과 시부모도 예전과는 달리 대해주었다. 이제 그녀는 자신들의 가문을 이어줄 아들을, 손자를 낳아준 아내이자, 며느리인 것이다. 끼사 고따미는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아들을 불면 날아갈까 만지면 깨질까, 금지옥엽으로 귀하게 키웠다. 아들의 존재가 곧 자신의 존재 이유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아장아장 걷는 모습이 사랑스럽기 그지없던 아들이 갑자기 병이 들어 그만 죽어버리고 말았다. 자신의 삶에 있어 유일한 희망이었던 아들의 죽음을 그녀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들이 없는 자신의 인생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화장터로 시신을 옮기려는 사람들을 밀치고, 그녀는 축 늘어진 아들을 가슴에 끌어안은 채 실성한 듯 마을로 뛰쳐나갔다. ‘좋은 약을 구하면 우리 아기는 분명 다시 건강해 질거야.’너무 슬픈 나머지 아들의 죽음을 인정할 수 없었던 그녀는 마을 곳곳을 헤매고 다니며 “혹시 우리 아기의 병을 낫게 할 약을 아시나요. 가르쳐 주세요. 제발 우리 아기를 살려 주세요”라고 울부짖으며 애원했다. 마을 사람들은 위로의 말도 못 찾은 채, 그저 눈물을 흘리며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그 모습을 측은히 여기며 지켜보던 한 지혜로운 이가 “아드님의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약은 모르지만, 아마 그 분이라면 약을 알고 계실 겁니다”라며, 부처님에게 찾아가 볼 것을 권했다. 끼사 고따미는 그 길로 부처님이 계신 제따숲으로 달려갔다.

“부처님, 우리 아기의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약을 알고 계실 거라 들었습니다. 가르쳐 주세요.”가슴에 죽은 아이를 부둥켜안은 채 실성한 듯 절규하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부처님께서는 자식을 잃은 어미가 느낄 깊은 상실감과 비탄에 더할 나위 없는 연민의 정을 느끼셨다. 그녀를 구제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하신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을에 가서 한 명도 사람이 죽은 적이 없는 집, 다시 말해 부모도 자식도 형제도 그 누구도 죽은 적이 없는 집으로부터 겨자씨를 얻어 온다면 네 너에게 그 약을 알려주마.” 끼사 고따미는 아기를 끌어안고 다시 마을로 달려갔다. 한 집 한 집 문을 두드리며, 사람이 한 번도 죽어 나간 적이 없는 집을 찾아 미친 듯 돌아다녔다. 그러나 그런 집은 없었다. 발이 다 헤어질 정도로 돌아다녀 보았지만, 그런 집은 어디에도 없었다.

“사람이 죽지 않은 집은 없다”

어느 덧 해도 저물고 주위는 캄캄해졌다. 망연자실하며 주저앉아있던 그녀는 문득 깨달았다. ‘아, 그렇구나. 지금까지 나는 내 자식만이 죽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지금 살고 있는 사람보다 더 많은 사람이 이미 죽었구나.’ 그 순간, 그녀는 아들의 육신에 대한 집착을 놓을 수 있었다. 태어난 것은 반드시 죽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달은 그녀의 마음은 평상심을 되찾고 있었다. 아들의 죽음이라는 한 가지 사실에 집착해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었던 그녀의 마음이, 끝도 없는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평범한 진리를 받아들이며 위안을 얻는 순간이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길. 너무나도 빨리 찾아 온 아들의 죽음이기에 더 한스럽지만, 그 역시 생류가 지고 가야 할 운명인 것이다.

끼사 고따미는 소중하게 부둥켜안고 있던 아들의 시신을 묘지로 데려가 내려놓은 후, 부처님을 다시 찾았다. “겨자씨는 얻어 왔느냐?” “얻지 못했습니다. 온 마을의 집들을 다 돌아다녔지만, 사람이 죽은 적이 없는 집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알았습니다. 죽은 자가 살아있는 사람보다 훨씬 많다는 사실을.” “그러하다. 끼사 고따미여, 너는 오직 네 아들만이 죽었다고 생각했겠지만, 죽음이란 살아있는 모든 것이 피해갈 수 없는 길이니라. 죽음의 왕은 아직 바람을 이루지도 못한 모든 생류를 괴로움의 바다로 던져버린다. 마치 대홍수가 모든 것을 쓸어 가버리는 것처럼.” “부처님, 부디 저를 인도해 주십시오.”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인생의 무상함을 터득한 그녀는 출가자의 길로 들어섰다.

출가 후, 그녀는 열심히 수행하여 지혜를 완성했다. 혹독한 수행을 당연하다 여기며, 항상 초라한 복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의제일(粗衣第一)이라 불릴 정도였다. 출가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그녀는 어느 날 밤, 포살당에서 많은 등불을 켜고 앉아 있었다. 조용히 앉아 명상하면서 등잔불이 하나하나 사라져 가는 것을 보며 생각했다. “아, 사람들은 윤회하며, 몇 번이나 다시 태어나고 죽어가며 괴로움의 세계를 방황하고 있지만, 열반을 얻은 사람만은 그런 일이 없구나.” 끼사 고따미는 등잔에 불을 켤 때 불꽃이 크게 일어났다 사그라지는 것을 보고, 존재하는 것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도리를 선명하게 알아차리게 된 것이었다.

그러자, 향실에 앉아 계시던 부처님께서는 그녀의 생각을 아시고는, 마음속으로 그녀에게 이렇게 말을 거셨다. “끼사 고따미여, 사람들은 태어나고 죽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지만, 열반을 얻은 사람에게 이미 생사는 없다. 그러므로 열반을 알아야 한다.”그리고, 이런 게송을 읊으셨다. “불사의 경지를 보지 못하고 백년을 사는 것 보다, 설사 찰나의 삶일지라도 불사의 경지를 볼 수 있다면 이 보다 좋은 것은 없다.” 멀리 앉아 있던 끼사 고따미의 마음속에도 이 말은 전해졌고, 그녀는 모든 존재의 무상한 모습에 마음을 집중하고 열반을 체득하기 위하여 열심히 정진하였다. 그 결과, 깨달음을 성취하였다.

붓다 만난 후 진리에 눈 떠

훗날 끼사 고따미는 이런 시구를 읊었다.
“저는 화살을 뿌리 채 뽑아버리고, 짐을 내려놓았습니다. 저는 해야 할 일을 마쳤습니다.”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슬픔이라는 화살, 언제까지나 그 슬픔을 가슴에 안고 살아가야만 하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그녀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깨달음의 길을 완성한 것이었다. 자식의 죽음이라는,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도 참담한, 하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기에 더욱 더 가혹한 현실 앞에서, 부처님은 끼사 고따미가 생류의 삶을 있는 그대로 이해함으로써 그 슬픔을 이겨낼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신 것이었다.

진리를 꿰뚫어보는 지혜와 따뜻한 자비심으로 가득 찬 부처님과의 만남을 통해 그녀는 자식을 잃고 깊이 방황하던 한 어머니에서, 이제 삶의 진리를 통찰하는 훌륭한 수행자로 다시 태어난 것이었다. 

이자랑 박사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1048호 [2010년 05월 10일 1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