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한국 찾은 존 마크스 유럽과학재단 사무총장
존 마크스 ESF 사무총장은 “한국은 미국이나 일본식 모델보다 경제 규모와 과학 경쟁력이 유사한 스위스와 같은 ‘강소국 과학정책 모델’이 어울린다”고 충고했다. 사진 제공 한국학술진흥재단 |
최근 삼성경제연구소(SERI)는 한국 연구문화의 폐쇄성을 지적한 짤막한 분석보고서를 냈다. 한국의 ‘우물 안 개구리 식’의 폐쇄적인 과학연구가 앞으로 국가경쟁력 확보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경고였다.
이 보고서는 미국, 유럽 등 전통 과학 강국은 연구실 문을 활짝 열고 그간 쌓였던 경계를 허무는 데 오히려 적극적이라고 소개했다. SERI가 열린 연구의 사례로 지목한 유럽 학술연구의 중심기관 유럽과학재단(ESF)의 존 마크스 사무총장이 한국학술진흥재단(학진)의 초청을 받아 한국을 찾았다.
마크스 총장은 “연구 결과의 시너지 효과를 높이기 위해 학자와 기관 간 협업이 최근 세계적인 추세로 떠올랐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국은 다방면에 걸쳐 막대한 자본을 투자하고 연구자 수도 훨씬 많은 미국과 일본식 발전 모델보다 스위스처럼 작지만 강한 강소국 과학정책 모델이 더 어울린다”고 충고했다.
―한국 과학정책 목표를 미국이나 일본 일변도에서 탈피하라고 한 이유는 뭔가.
“한국은 미국이나 일본 같은 과학 경제 강대국 모델을 추구한다고 들었다. 그보다는 경제 규모와 과학기술 수준이 엇비슷한 나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과 일본보다 노동자 1000명당 과학자 수에서 훨씬 뒤처지고 정부 과학기술 예산 규모가 절대적으로 밀리는 상황에서 그들과 같은 발전 정책을 수용하는 것은 이상하다.”
―스위스를 모델로 제시했는데….
“노키아 같은 세계적인 좋은 기업이 있지만 핀란드가 스위스보다 과학경쟁력이 낮은 이유는 뭘까? 특정 분야에만 집중하는 핀란드와 달리 스위스는 기초연구를 포함해 더 많은 분야에서 영향력이 큰 논문을 많이 낸다. 다원성을 존중하는 교육이나 사회 풍토도 그런 풍토를 뒷받침한다. 사정이 비슷한 한국도 나라 살림 규모는 작지만 과학 강국인 스위스처럼 강대국 모델보다 강소국 모델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1971년 설립된 ESF는 각국 과학자들의 연구와 협력을 지원하는 유럽 최고의 학술지원기관이다. 현재 유럽 30개국 78개 연구기관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SF는 막대한 자금력보다는 ‘관계’와 ‘협력’에 주목한다. 적은 예산이지만 각 분야의 과학자와 학문을 서로 엮어 시너지 효과를 높이겠다는 의도다. 유럽을 하나의 거대 연구실로 묶은 ‘유럽 단일 연구공간’이란 개념도 여기서 나왔다.
―단일 연구공간이란 개념이 뭔가.
“공통된 관심사를 가진 각국 연구자를 네트워크로 한데 묶어 ‘하나의 거대한 연구실’에 소속시키는 개념이다. 일종의 과학자 간 협업(collaboration) 체계인 셈이다. 지리적인 이유도 있지만 유럽연합(EU)에서 과학은 ‘글로벌’한 개념이다. 어느 유럽국가에서 ‘밀’을 연구한다고 생각해 보자. 개선된 밀 종자는 금세 주변 유럽국가로 확산돼 농부들에게 보급될 것이다. 만일 연구 초기 단계부터 여러 연구자가 함께 연구를 한다면 시너지 효과는 높아진다.”
―그렇다면 ESF의 역할은 뭔가.
“ESF는 미국과학재단(NSF)과 규모나 성격 자체가 다르다. NSF의 절반도 안 되는 2500억 달러를 운영한다. 연구비 펀딩도 ESF의 중요한 임무지만 과학의 이슈를 찾아내고 유능한 과학자를 발굴해 공동 연구에 참여하게 하는 것이 주요 임무다.”
그래서인지 ESF의 지원 대상은 지구과학, 나노 의약학, 식품과학 같은 과학 분야 외에 언어학, 역사학, 사회학, 지리학과 같은 인문학과 사회과학까지 포괄한다. ESF가 관장하는 학문 분야는 2006년 말 통계로 2320개에 이른다.
―인문학과 사회학을 과학재단에서 지원하는 이유는….
“현대의 거의 모든 학문은 과학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거의 모든 학자가 과학적 자료와 방법에 근거해 연구를 진행한다. 학문을 한다는 말이 과학을 한다는 말과 결코 다른 말이 아니다.”
박근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kun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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