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루스벨트재단 ‘127인의 공로자’ 선정 강영우
미국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위원인 강영우 박사. 어린 시절 부모와 시력을 모두 잃은 그는 “장애 좌절 절망 실의를 경험한 사람만이 갖게 되는 능력이 있고 그것이 결국은 인생 승리의 자산이 된다”고 강조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
“영어로 기회는 ‘지금 여기에 있다(now here)’와 기회는 ‘아무 곳에도 없다(nowhere)’는 문장은 한 단어를 띄어 쓰느냐 붙여 쓰느냐 차이가 있을 뿐이다. 현재의 위기를 기회로 보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를 가져라.”
이 한마디가 어린 시절의 고난과 장애를 ‘고난의 능력’으로 삼아 세상에 밝은 빛을 비추는 그의 삶을 대변하는 듯했다.
미국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위원인 강영우(62) 박사. 한국인 시각장애인으로 미국에서는 처음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한인 재미교포로는 최고위직인 차관보급 직책을 맡았다.
최근 방한한 강 박사를 7월 31일 서울 프레지던트호텔에서 만나 2시간 동안 인터뷰하는 동안 그는 눈이 보이지 않으면서도 세상을 내다보지만 기자는 마음을 닫고 살아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마음의 장애인’임을 절절히 느꼈다.
“고난의 능력(negative capacity)은 장애 좌절 절망 실의 등을 넘어서거나 이겨내야 하는 부정적인 의미만 있는 말이 아니라 그런 경험을 한 사람만이 갖게 되는 능력이고 결국은 인생 승리의 자산이 된다는 뜻이죠.”
그는 13세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이듬해 축구를 하다가 눈을 다쳤다. 2년가량 입원 치료를 받았지만 의료진이 “현대의학으로는 어찌 해 볼 수 없다”고 하자 어머니 역시 충격으로 쓰러져 숨졌다.
꿈 많은 여고 시절을 보내야 할 17세 누나는 세 동생을 돌보기 위해 학교를 그만두고 봉제공장에 취직한다. 짐이 너무 무거웠을까. 공장을 다닌 지 16개월 만에 과로로 쓰러져 돌아오지 못할 길을 가고 말았다.
남은 3남매 중 17세이던 강 박사는 맹인재활원으로, 13세 남동생은 철물점 직원으로, 9세 여동생은 보육원으로 가게 됐다. 헤어지던 날 3남매는 서로 끌어안고 울고 또 울었다.
경기 양평군에서 태어나 불우한 시절을 보낸 강 박사는 대학 졸업 후 한미재단의 지원으로 미국으로 유학 갔다.
강 박사는 지난달 13일 ‘프랭클린 & 엘리너 루스벨트 재단’이 뽑은 ‘127인의 공로자’에 포함됐다.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 존 F 케네디 전 미 대통령,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 등이 이름을 올렸다.
재단은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생가와 묘지, 기념관이 있는 뉴욕 하이드파크의 ‘루스벨트 홍보센터’ 강당 127석의 의자에 공로자의 이름을 붙였다. 강 박사의 자리는 C열 10번.
127인의 공로자는 루스벨트 대통령이 미 역사상 유일하게 4선에 성공하는 동안 경제 대공황을 벗어나게 하는 데 공헌한 지도자나 학자,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을 승리로 이끄는 데 공헌한 군 장성, 장애인 인권 개선에 기여한 사람 등이다.
재단은 강 박사에 대해 △편견과 차별, 장애를 이기고 박사 학위를 받아 모범이 되고 △유엔 국제장애위원회 부의장으로 ‘루스벨트 국제장애인상’ 제정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백악관 장애위원회 위원으로 5400만 장애인 정책에 앞장선 점을 높이 평가했다.
또 장애에도 불구하고 두 아들을 미국의 자랑스러운 리더로 키우고 국제로터리클럽 등 단체 활동을 통해 ‘섬기는 지도자’로서 귀감이 됐다고 설명했다.
강 박사의 큰아들 폴 강(강진석) 씨는 조지타운대 안과 교수로 역대 미 대통령을 진료해 온 ‘워싱턴 안과의사연합’ 회원이다. 둘째 크리스 강(강진영) 변호사는 민주당의 최연소 수석법률비서관.
아내 석은옥 씨는 대학 1학년 때 맹학교 고등부에서 봉사를 하다 강 박사를 만나 누나처럼 돌봐 주던 사이였다.
강 박사가 강조하는 ‘섬기는 지도자’론은 ‘3C’로 요약된다. 실력(Competence)은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이에 맞게 우선순위를 정하고 시간 관리를 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인격(Character)은 남의 아픔을 함께 나누는 마음, 그리고 자신에 대한 자존감을 가져 타인을 존중할 수 있는 자세가 되어 있는 품성을 말한다. 헌신(Commitment)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일에 자신을 던지는 자세이다.
그는 “섬기는 지도자가 되는 것은 곧 승리하는 삶을 사는 것과 같다”고 덧붙였다.
해마다 한두 차례 한국을 찾는 강 박사는 교회, 육해공군사관학교, 기업 연수원, 대학 등을 찾아가 ‘섬기는 지도자’론과 ‘고난의 능력’을 전파한다.
저서 ‘나의 장애, 하나님의 능력’은 시각장애인이 들을 수 있는 ‘오디오 북’으로 제작돼 미 전역 2만5000개 공립도서관에 배포됐다.
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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