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베트남 역사학회 즈엉쭝꾸옥 사무총장
베트남 역사학회 사무총장이자 국회의원인 즈엉쭝꾸옥 씨는 9일 “베트남의 가장 중요한 과제가 성장과 발전이므로 (미국 같은) 큰 나라와 관계를 잘 유지해야 한다”며 “베트남처럼 전쟁을 겪고 분단됐는데 발전한 한국을 보면서 ‘우리도 할 수 있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미옥 기자 |
《1980년대 초에 대학을 다닌 기자에게 베트남은 민족주의, 전쟁과 혁명, 반미 투쟁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한다. 금서였던 ‘전환시대의 논리’ ‘베트남 전쟁’ 같은 책의 영향이 아닐까. 한국과 베트남은 식민지 경험을 공유했으면서도 같은 전쟁에서 한쪽은 미군과 함께, 한쪽은 미군에 맞서 총부리를 겨눴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이사장 권인혁) 초청으로 9일 방한한 즈엉쭝꾸옥 베트남 역사학회 사무총장을 서울 롯데호텔에서 만나 양국 관계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그는 역사학계의 중진이자 현직 국회의원으로 ‘베트남의 지성’으로 불리며 존경을 받는 인물이다.》
―베트남의 근현대사를 어떻게 평가하나.
“19세기 말은 프랑스의 침략 시기였다. 베트남 국민은 많은 투쟁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일본이 침략했다. 역시 베트남 국민은 독립을 위해 투쟁했다. 당시 베트남을 지지한 유일한 국가가 미국이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미국이 베트남을 침략했다. 독립이 가장 중요했으므로 20년 이상 전쟁을 치렀다. 커다란 전쟁이었고 많은 아픔이 있었다. 2차 대전 당시 미국이 베트남을 지지한 것에 대해 과거에는 언급을 꺼렸는데 지금은 양국 관계가 좋아져서 말할 수 있게 됐다.”
―미국과의 관계가 개선된 이유는….
“미국은 베트남에 아주 중요한 나라다. 미국은 경제뿐 아니라 국제정치에서 역할이 크다. 베트남과 중국의 관계가 균형을 잡는 데도 미국이 큰 역할을 한다. 역사적 관계에서 볼 때 중국은 베트남에 친구일 수도, 위협일 수도 있다. 베트남의 가장 중요한 과제가 성장과 발전이므로 큰 나라와 관계를 잘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베트남은 전쟁을 치렀던 미국과 가까워지지만 한국은 북한의 침략에 함께 맞선 미국과 조금 멀어지는 느낌이다.
“어느 나라든지 (외교의) 가장 큰 목적은 국가의 이익이어야 한다.”
―한국의 베트남전 개입에 대한 견해는….
“한국은 참전했던 많은 나라 중 하나일 뿐이다. 한국군이 있었던 지역은 주로 남쪽이다. (한국군이) 베트남 주민에게 했던 일은 아주 강한 아픔으로 남았다. 전투에 직접 참가한 친구에게서 들었는데 한국군이 전투를 잘하면서 잔인한 면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한국이 베트남 경제 성장에 도움을 주고 있으며 한국 정부와 국민이 그런 노력을 보여 주고 있다. 전쟁이 일어났던 지역을 한국이 많이 지원해 베트남 국민의 아픔을 치유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현재’다. 몇 가지 문제가 있긴 하지만, 양국 관계는 아주 잘 발전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나.
“베트남에서 활동하는 한국 기업의 노사관계, 베트남 여성과의 국제결혼 알선 등이다. 베트남 주재 한국대사와 얘기했었는데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것 자체가 양국 관계 발전의 하나의 증거라고 생각한다. 관계 발전의 반작용인 셈이다. 원인은 서로의 문화를 잘 모르는 데 있다.”
―한국의 모습은 베트남에 어떻게 비치고 있나.
“교과서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 않지만 ‘베트남처럼 식민지 경험이 있다’ ‘전쟁을 겪었다’ ‘남한이 미국과 동맹을 맺었다’ ‘경제적 성장의 모범적인 모델’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요즘 베트남 사회는 한국의 드라마, 축구, 대기업, 유명 브랜드에서 좋은 인상을 받고 있다. 우리 국민은 한국을 통해 자극받게 됐다. 베트남처럼 전쟁을 겪고 분단됐는데 발전한 한국을 보면서 ‘우리도 할 수 있을까’ 생각한다.”
―역사교과서 문제로 한국 중국과 일본 사이에 갈등이 생겼는데….
“과거에 일어난 일과 현재 협력관계를 충실하게 기록하는 일이 중요하다. 하지만 역사가 정치화되는 경향이 많다. 정치에서는 역사가 한 도구이다. 교육자의 역할, 특히 역사학자의 독립성이 그래서 중요하다.”
―베트남은 개방의 길을 걷는데 북한은 그렇지 않다.
“북한을 옛날부터 동맹으로 생각했지만 완전히 개방하지 않는 점은 이해하지 못한다. 핵을 개발하고, 이탈리아를 이겼던 좋은 축구팀이 있고, 큰 빌딩을 지은 나라가 왜 그렇게 국민을 힘들게 하는지 납득이 안 된다. 과거에 베트남은 국력 증진이나 국민의 가난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변했다. 나라도 강해야 하지만 역시 국민이 잘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송상근 기자 songmoon@donga.com
■ 즈엉쭝꾸옥 사무총장은
즈엉쭝꾸옥 씨는 1998년부터 베트남 역사학회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2002년 5월 실시된 선거에서 5년 임기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1988∼1994년 사학원 부원장을 지냈고 1997년부터 지금까지 역사학회 학술지인 ‘과거와 현재’ 편집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베트남 역사학회는 1966년 베트남 인문사회과학분야 중 최초로 생긴 학술단체. 역사를 연구하는 교수와 중고교 교사 등 2000여 명이 회원이다. 정치인과 장성 출신 회원이 많은 점이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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