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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안보 맏형 노릇 / 박세직 씨

淸潭 2010. 2. 8. 16:37

[초대석]박세직 씨 “국가안보 맏형 노릇 제대로 해야죠”




21일 서울 잠실 향군회관에서 열린 재향군인회장 선거에서 제31대 회장에 선출된 박세직 전 서울올림픽조직위원장이 취임사를 하고 있다. 박 신임 회장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고 국가 안보를 저해하는 모든 행위와 이를 자행하는 집단에 대해 전 회원이 단결해 강력 대처하겠다”고 강조했다. 김미옥 기자

‘과거 정보기관의 수장(首長)을 지낸 두 거물의 빅 매치.’

21일 치러진 대한민국재향군인회(향군) 신임 회장 선거의 초미의 관심사는 국가안전기획부장을 지낸 박세직(朴世直·73·육사 12기) 전 서울올림픽조직위원장과 천용택(千容宅·육사 16기) 전 국가정보원장의 맞대결이었다. 선거 결과 박 전 위원장이 선출됐다.

이날 서울 잠실 향군회관에서 열린 선거에서 박 전 위원장은 전국 향군 대의원 359명의 표 중 204표를 얻었다. 박 신임 회장은 이번 선거에서 주한미군 철수 반대와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 향군 조직력 강화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향군 안팎에선 ‘정통보수’를 자임하는 박 신임 향군회장이 취임함에 따라 국보법 폐지 반대를 주도해 온 향군 활동이 더욱 보수적 색채를 띠면서 정부 여당의 압박이 더 강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향군의 가장 큰 존재 목적은 엄정한 정치적 중립을 유지하며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호를 위한 국가 안보의 제2보루 역할을 하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고 국가 안보를 저해하는 모든 행위와 이를 자행하는 집단에 대해 전 회원이 단결해 강력 대처하겠다.”

650만 회원이 소속돼 있는 대표적 보수단체인 향군 신임 회장의 취임사에는 결의가 느껴졌다. 국보법 폐지 반대를 비롯해 대북 안보정책에 비판적 목소리를 내 온 향군은 최근 정부 여당으로부터 유무형의 견제를 받고 있다.

향군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열린우리당 김현미(金賢美) 의원 등에게서 ‘국고 지원을 받은 향군이 안보를 명분으로 반정부, 정권 퇴진 운동을 벌이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을 받은 뒤 올해 예산에서 안보 관련 예산을 전액 삭감하고 이를 호국정신 선양과 회원 복지 예산으로 바꾼 바 있다.

이런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몸에 좋은 약은 쓴 법”이라고 잘라 말했다.

“사람에 비유하자면 한 국가의 건강은 안보이고, 향군은 바로 안보 분야의 독보적인 전문가 단체다. 사람도 건강을 위해선 먹기 싫은 것과 쓴 약을 먹어야 하듯, 향군의 주장이 정치적으로 쓴 약이 될지 몰라도 국가 건강의 자양분으로 여겨 따뜻한 관심과 지원을 베풀어 달라.”

그러나 그는 “과거 향군이 참여한 각종 집회에서 군중심리에 의해 정치적 구호와 과격한 언사가 돌출돼 당초 취지를 빗나가면서 정부로부터 오해를 살 가능성도 있었다”며 “앞으로 집회에서는 정치적 구호나 과격한 언동을 삼가도록 최대한 대비하겠다”고 말했다.

주한미군 재배치와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문제, 대북정책 등 현 정부의 외교안보정책에 대해 그는 “지나치게 조급해져선 안 된다”며 신중을 기할 것을 당부했다.

그는 “과거 희생적으로 한국을 도와준 미국이라는 ‘안보 파트너’와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가운데 여러 변화를 추구하는 게 옳은 방향”이라고 전제한 뒤 “철저한 안보적 대비 없이 대북정책을 너무 조급하게 추진하는 것은 굉장한 위험이 따를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 대목만큼은 정치권도 안보 전문가인 향군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게 국가와 국민을 위해 상당히 이로울 것”이라고 충고했다.

대부분의 예산을 국고에 의존하고 있는 향군의 재정 자립에 대한 고민도 감추지 않았다. 그는 “궁극적인 재정 해결책은 향군 회원이 국민에게 존경과 신뢰를 받은 대상으로 거듭나 회비를 내는 풍토가 마련되는 것이지만, 향군에 대한 국민적 이해가 부족하고 홍보 기회도 별로 없는 게 현실이다. 단기적으론 현재 추진 중인 사업의 경영 투명성과 수익성을 높이는 데 주력할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해 향군을 비판하고 군대문화 개혁을 표방하며 출범한 ‘평화재향군인회(평군)’에 대해서도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평군이 좌경화를 위해 복수 향군을 만들어 전통 향군을 붕괴하기 위한 저의로 시작했다면 굉장히 경계하고, 이런 사상적 논리를 절대 용납할 수 없다.”

그러면서도 그는 “향군에 대해 소외감이나 불만을 가진 사병 출신 예비역들을 명예이사로 선임하는 방안을 포함해 문호 개방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여지를 남겼다.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