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소월시문학상 등 각종 문학상 휩쓴 문태준 시인
권위 있는 여러 문학상을 휩쓴 젊은 시인 문태준 씨. 그는 “쉬우면서도 감동이 있는 시, 아름답고도 슬픈 서정시를 통해 독자들과 더욱 가까워지고 싶다”고 말했다. 김재명 기자 |
아버지는 고향을 떠나본 적이 없다. 경북 김천시 봉산면 태화2리, 서른다섯 가구가 모여 사는 작은 마을에서 아버지는 평생을 살았다. 여덟 살 연하의 처녀와 결혼해 딸 넷에 아들 하나를 두었다. “벼농사도 짓고 자두도 키우시고…요즘은 포도 농사 하세요. 날마다 날이 밝으면 논에 나가셨다가 어두워져서야 돌아오시지요.”
그 아버지는 시인이 뭐 하는 사람인지 잘 모른다. 그렇지만 최근 2, 3년 새 시인인 아들의 이름이 신문에 자주 오르는 걸 보고 ‘큰일을 하는구나’ 생각한다.
문태준(文泰俊·36) 시인은 최근 ‘소월시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상복이 많다. 2004년 동서문학상을 시작으로 노작문학상, 미당문학상, 유심문학상을 수상했다. 도서출판 작가의 문인 대상 설문조사에서 문 씨의 시 ‘맨발’이 2004년 ‘가장 좋은 시’로 꼽힌 데 이어 지난해에는 ‘가장 좋은 시’(‘가재미’), ‘가장 좋은 시집’(‘맨발’), ‘가장 좋아하는 시인’으로 꼽혀 3관왕을 차지했다. 지금껏 단 두 권의 시집을 냈지만 한국 시단의 새로운 대표 주자로 떠오르고 있다.
18일 만난 문 씨는 소탈했다. “저 경운기 잘 몰아요. 아버지 따라 추풍령 청과상회에 과일 내다 팔았거든요.” 그는 농사밖에 모르는 아버지에게서 삶의 경건함을 배웠다. 어머니를 따라 직지사 말사 용화사를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불교에 젖었다. 몸에 밴 농촌 서정과 불교의 정서가 작품의 거름이 됐다.
기자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국문과에 들어갔다. 중고교 때 수차례 백일장에 나가 상을 타면서 ‘글 솜씨가 있다’는 말을 들었던 터다. 어수룩해 보이는 문 씨의 얼굴을 보고는 과 선배가 문예창작반에 들어오라고 꼬드겼다. 생각도 해 보지 않은 길이었지만 한번 들어서니 그럭저럭 순탄하게 풀렸다. 대학 4학년 때 등단을 했고 불교방송 PD가 되면서 직장을 갖게 됐다. 등단 6년 만에 첫 시집 ‘수런거리는 뒤란’(2000년)을 묶기까지 문 씨는 서둘지 않았다. 2004년 낸 시집 ‘맨발’이 호평을 받으면서 그의 이름이 알려졌다.
‘소월시문학상’ 수상작 ‘그맘때에는’은 존재의 사라짐에 대한 노래다. 잠자리 떼가 하늘을 까맣게 덮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 잠자리들이 없어졌다. 날이 서늘해졌으니 자취를 감춘 것이다. 그런데 시인은 그 풍경에서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인 사유를 건져 냈다.
‘하늘에 잠자리가 사라졌다/빈손이다/하루를 만지작만지작 하였다/두 눈을 살며시 또 떠보았다/빈손이로다…그맘때가 올 것이다, 잠자리가 하늘에서 사라지듯/그맘때에는 나도 이곳서 사르르 풀려날 것이니’(‘그맘때에는’ 중에서)
생명이란 그렇게 순식간에 사라져 버릴 수 있는 것이다. “사는 게 그렇잖아요. 좋은 일만 있는 게 아니니까. 오늘만 해도 꽃비(벚꽃)가 날리면서 흙비(황사)도 내리지요.” 일희일비하기에 인생은 덧없다. 문 씨는 그의 눈에 가장 잘 보이는 자연 풍경에서 인생에 대한 성찰을 끌어낸다.
젊은 시인들의 실험시가 도드라진 흐름으로 자리 잡은 2000년대에 서른여섯 살 문 씨의 서정시는 어쩌면 촌스러워 보인다. 그는 “그 경향은 그대로 시단에서 의미 있는 흐름이며, 나는 내가 쓸 수 있는 시를 쓰는 것”이라고 말한다. 시가 독자들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문 씨는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속 깊은 시를 쓰고 싶다”고 한다. 몇몇 유명한 시인의 발언이 큰 울림이 되던 때가 지나간 지금, 문 씨는 “더 많은 시인이 독자들의 생활 속으로 소박하게 파고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시 낭송회, 시를 연극이나 무용으로 옮긴 공연 같은 대중적인 행사가 활성화되는 것을 반갑게 여긴다.
“감사한 한편으로 걱정도 되고…. 친구랑 흙장난하면서 신나게 놀고 있는데, 어느 순간 주변에서 사람들이 둘러싸고 지켜보는 느낌이에요.” 연이은 문학상 수상에 대한 부담스러운 감정을 그는 이렇게 표현했다. 시인의 경륜이 중히 여겨지는 문단 풍토에 비춰 보면 젊은 시인의 부각은 이례적이거니와 한 시인에게 이렇게 조명이 집중되는 것도 드문 일이다. “시를 늘 데리고 다녀야겠다고 생각해요. 시인이 시 쓰는 일에서 멀어지면 시는 토라져 버리거든요. 뒤늦게 쓰려고 해도 잘 안 써지지요.”
마음이 답답할 때는 아내와 두 아이와 함께 고향에 간다. 농사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아버지가 “소 받아라”라고 할 때 그는 가슴이 뭉클해진다고 했다. 시인의 섬세한 귀에는 ‘받다’는 단어가 겸손하면서도 멋있게 들린다. “시를 쓰면서 수마(睡魔)를 쫓아내고 잠 못 드는 새벽을 갖게 됐다”며 웃는 시인. 올여름 세 번째 시집을 낸다는 문 씨는 “시인이 있어야 할 본래 자리에 있는지 항상 돌아볼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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