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너피’ 탄생 일등공신 이병천 서울대 교수
복제 개 ‘스너피’ 탄생의 일등공신인 서울대 수의대 이병천 교수. 황우석 교수의 뒤를 이을 세계적인 복제 전문가다. 안철민 기자 |
3일 오전 11시 서울대 수의대 대형 강의실. 100여 명의 내외신 기자들 앞에서 황우석(黃禹錫·52) 서울대 석좌교수가 세계 최초로 개 복제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설명을 끝낸 황 교수는 옆에 있던 연구자 한 명을 소개했다.
“‘스너피’를 태어나게 한 일등공신입니다.”
서울대 수의대 이병천(李柄千·40) 교수였다.
이 교수는 개 복제 실험을 설계하고 실질적으로 주도했다. 영국의 과학전문지 ‘네이처’에 게재된 논문에서도 그가 제1저자로 올랐다.
“2년 8개월 만에 개 복제에 성공한 것은 기적입니다. 최소한 5년은 걸릴 줄 알았거든요. 일생일대의 목표를 성취했습니다.”
그가 처음 개를 복제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2001년.
당시 황 교수는 호랑이를 복제하기 위해 미국의 선진기술을 배워 오라며 이 교수를 뉴올리언스대 ‘멸종동물복원연구소(ACRES)’에 보냈다.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을 복제하는 연구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연구소였다.
“1년 있어 보니 미국이 만만하게 느껴졌어요. 조금 더 노력하면 세계 최초는 우리가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이 시기에 이 교수는 난자를 얻기 어려운 호랑이 대신 학계에서 난공불락의 대상으로 여기던 개 복제를 목표로 하기로 했다.
2002년 8월 일명 ‘K9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K9’의 발음은 개를 뜻하는 영어 ‘케이나인(canine)’과 같다. 극비리에 실험을 진행하느라 프로젝트 이름도 이렇게 붙였다.
그리고 2005년 4월 24일 마침내 실험에 성공한 순간 그는 2명의 스승이 떠올랐다고 한다.
먼저 조충호(趙忠鎬·75) 전 서울대 수의대 교수. 이 교수는 대학교 1학년 때 부친을 여의었다. 부친은 충북 청원군 가덕면의 가난한 시골에서 평생 농사를 지어 할아버지 할머니와 6남매, 친척 등 12명의 대가족을 먹여살렸다.
“당시 시골에서는 소 한 마리가 큰 재산이었죠. 집에서 소를 돌보는 일은 늘 막내인 제 몫이었어요. 방과 후 소에게 풀을 먹이며 공부하다가 전공도 수의학으로 택했죠.”
이 교수가 서울대에 합격하자 아버지는 경운기로 청주까지 2시간을 달려 쌀 10여 가마를 팔아서 첫 등록금을 마련해 주었다.
그러나 1년도 되지 않아 아버지는 날뛰는 성난 소를 잡으려다 소에 받혀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를 잃자 소가 미워졌습니다. 공부가 하기 싫어 방황도 많이 했죠.”
이런 그에게 조 교수는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 이 교수가 외로움에 방황하고 게으름을 피울 때도 늘 푸근하게 다독거리며 감싸줬다. 조 교수는 이 교수의 대학원 시절 지도교수였으며 퇴임 후에는 이 교수가 그 자리를 물려받았다.
또 한 사람은 황 교수.
황 교수의 수제자인 이 교수의 어린 시절은 황 교수와 너무도 비슷하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리틀 황’.
대학에 입학할 때 이 교수의 꿈은 ‘최고의 수의사’였다.
하지만 그의 소박한 꿈은 대학 4학년 때 갓 부임해 온 황 교수의 강의를 듣고 흔들렸다. 일본 홋카이도(北海道)대에서 2년간 연구하고 돌아온 황 교수는 학생들에게 바깥세상에서 벌어지는 생생한 연구 동향을 들려줬다.
우수한 품종에서 얻은 난자와 정자로 인공 수정란을 만들어 태어나는 ‘시험관 송아지’, 인간의 유전자를 이식해 유용한 약물을 대량 생산하는 ‘약용 가축’ 등등….
“수의학에 대한 관념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동물을 인간의 목적에 따라 ‘제어’할 수 있다는 획기적인 발상이었죠.”
1987년 황 교수가 어렵사리 빈 강의실 하나를 얻어 만든 실험실 이름은 ‘생물제어연구실’. 변변한 실험기기 하나 없던 이곳에서 이 교수는 황 교수에게 ‘인생을 맡기고’ 실험에 매달렸다.
1995년 시험관 송아지 탄생, 1999년 복제소 영롱이와 진이 탄생 등 굵직한 연구 성과 뒤에는 항상 이 교수가 있었다.
요즘도 이 교수의 출근 시간은 오전 5시 55분. e메일을 점검한 뒤 6시 35분이면 어김없이 황 교수와 만나 하루 계획을 세운다.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일관해 온 ‘황우석 사단’의 맏형인지라 하루라도 가족과 함께 놀러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 교수가 된 지 10년째 이런 생활을 이어 왔다.
부인 최은경(崔銀京·39) 씨와의 사이에 초등학교 6학년 아들과 2학년 딸이 있지만 여름휴가는커녕 놀이공원 한번 같이 가지 못했다.
“아내에게 개가 태어날 때까지만 참아 달라고 했는데….”
막상 스너피가 태어났지만 이 교수는 선뜻 실험실을 비울 생각을 하지 못한다.
머릿속은 이미 백두산 호랑이, 한국산 늑대와 여우 등 새로 도전해야 할 과제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김훈기 동아사이언스 기자 wolf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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