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임진각 ‘2005 세계평화축전’ 기획 강준혁 총감독
문화 기획, 공연 기획이라는 신조어를 만들면서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걸어온 강준혁 씨. 9월 11일까지 임진각에서 열리는 세계평화축전의 총감독을 맡은 그는 전시장이 관람객들에게 바깥의 평화가 아닌 내면의 평화를 가져다주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임진각=석동률 기자 |
《분단의 상징 임진각이 올여름에는 평화의 땅으로 바뀌었다. 1일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이 공동 주관해 개막한 ‘2005 세계평화축전’(www.peacef.org)에는 ‘평화’를 주제로 한 각종 공연, 전시, 학술행사가 열리고 있다. 특히 이 행사는 강준혁(姜駿赫·58) 총감독이 기획해 관심을 모았다. 그가 누구인가. ‘문화 기획’ ‘공연 기획’이란 말을 처음으로 만들어 내면서 불모의 땅에 신종 직업을 만든 원조가 아닌가.》
‘임진각(臨津閣)’은 남한에서 하나의 지명이기 이전에 문화적 상징 코드다. 정초에는 어김없이 이곳에서 북녘 땅을 바라보며 흐느끼는 실향민들의 이미지가 익숙하기 때문에 가 보지 않은 사람도 ‘임진각’ 하면 으레 망향의 상처를 떠올린다.
처음엔 1972년 실향민들을 위해 6000평의 대지 위에 지하 1층, 지상 3층으로 세운 건물만을 뜻했지만 망배단, 탑 등이 들어선 뒤에도 함께 그냥 임진각이라 부른다.
강 감독이 어떤 인터뷰에서인가 이번 축제의 취지를 설명하면서 “으레 평화 하면 떠오르는 반전(反戰)의 이미지를 없애고 싶었다”고 한 말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그가 풀어낸 평화의 축제는 어떤 모습일까.
행사가 개막한 지 며칠이 지났지만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그를 임진각 휴게소 내 가건물에서 만났다.
―처음에 축제 기획을 맡아 달라는 제의에 주저하셨다고 들었습니다만….
“손학규(孫鶴圭) 경기도지사로부터 평화를 주제로 축제를 꾸며 보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평화를 축제 주제로 삼기가 어렵다고 생각했어요. 게다가 임진각이 아닙니까. 통일, 분단 같은 이미지에서 벗어나서 어떻게 평화를 이야기할까, 궁리 끝에 선입견을 버리고 평화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자 결론을 냈지요.”
―그게 무엇입니까.
“평화의 본질은 남에 대한 인정이고 포용입니다. 상대에 대한 이해 없이 자기만 잘났다고 떠들어대면 거기서부터 갈등이 나오는 거 아닙니까. 행사장을 거닐고 축제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평화의 에너지를 받고 나누는 일이 되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했습니다.”
축제 참가자들이 세계 난민이나 기아 돕기 기부 행사에 자연스럽게 참여하고 적대 국가의 가수들이 무대에서 함께 공연을 하는 프로그램은 이런 생각에서부터 출발한 것들이다. 심지어 불꽃놀이를 할 때도 총소리를 없앴다. 그와 함께 행사장을 걷다 2만여 평 잔디광장이 펼쳐진 ‘음악의 언덕’에 섰다.
“이번 행사를 위해 가장 야심 차게 준비한 장소입니다. 원래 논이었는데 언덕을 만들고 잔디를 깔았습니다. 한꺼번에 2만5000명을 수용할 수 있으니 가히 국내 최대 야외공연장이라 할 만하지요.”
14일 첫 공연을 시작으로 마치 소풍 나온 것처럼 편안하게 잔디에 앉아 공연을 즐길 관람객들의 모습이 그려지는지 강 감독의 목소리는 힘이 넘쳤다.
말이 공연 기획이지 사실 기획자는 대중성을 강조하는 주최 측과 예술성을 강조하는 출연진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할 때가 많다. 기획의 성패는 공연의 격을 떨어뜨리지 않으면서도 관객 동원에 실패하지 않는 데 있다. 밑바닥 공연 기획에서부터 어느덧 30여 년. 그는 지난 세월을 어떻게 헤쳐 왔을까.
“1970년대 후반부터 건축가 김수근 선생이 만든 공간사랑 소극장에서 극장장을 했었어요. 초반에는 의욕이 넘쳐서 1년에 무려 1000회 공연을 한 적도 있습니다. 그때마다 생각한 게 ‘오늘 사람이 안 오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었습니다. 1년에 1000번 마음을 졸였으니 피가 말랐지요.”
강 감독은 그런 경험을 통해 ‘얼마나 모일지는 하늘에 맡기자’는 텅 빈 마음을 얻게 되었다고 했다.
1948년 대전에서 태어난 그는 1966년 서울대 문리대 미학과에 입학했지만 본래는 음대에 가려고 했단다. 고교 시절 대학 음악 콩쿠르에서 잇따라 관악부 수석을 차지했을 정도로 재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형(강준일·작곡가)의 절친한 친구였던 시인 김지하의 ‘꼬드김’으로 미학과에 들어갔다. 그리고 1976년 세실극장 개관 작업에 참여하면서 공연과 인연을 맺었다.
그의 인생 황금기는 1977년 4월부터 11년간 일했던 소극장 공간사랑 극장장 시절. 김덕수의 사물놀이, 공옥진의 병신춤, 김숙자의 살풀이춤, 이매방의 승무가 그의 힘으로 무대에 올려졌다.
“1986년 김수근 선생이 별세하시고 2년 뒤에 공간사랑을 떠났습니다. 처절한 마음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던 일이었지요. 이제 후배를 키워야겠다고 생각한 게 그즈음입니다.”
그는 아리 아카데미에 이어 스튜디오 메타를 세워 본격적인 문화 기획자 양성에 몰두했다.
문화 기획자의 원조인 그는 대화 말미에 뜻밖에 ‘문화 기획’이란 말에 거부감을 드러냈다.
“요즘엔 돈의 논리가 앞서다 보니, 무슨 돈 버는 테크닉처럼 변질됐어요. 원칙도 없어졌고 정신도 사라졌습니다. 거창하게 ‘예술 경영’이라는 말까지 나왔지만, 이걸 무슨 미술가나 음악가를 다루는 기술을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문화 기획자는 예술가들 위에 군림하거나 그들을 이용하는 게 아니라 그들을 진정으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강 감독은 “스스로 예술가적 정신으로 무장된 감수성과 열정이 있는 사람만이 이 바닥에서 버틸 수 있다”고 했다.
▼적대국 음악인들 합동공연…평화축전 9월 11일까지▼
야외 공연장인 ‘음악의 언덕’에서 월드뮤직, 재즈, 인디록, 힙합, 국악 등 다양한 음악 공연이 날마다 펼쳐지며 김덕수 사물놀이패와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등이 출연하는 축하공연이 9월 11일까지 이어진다.
특히 아프리카 나이지리아 그룹, 이스라엘과 아랍 아티스트가 함께하는 에세에바 공연은 정치에서는 적대국이지만 무대에서 하나가 되는 통합의 메시지를 전한다.
음악의 언덕 뒤편으로는 철조망이 설치될 예정인데 14일 저녁 공연에 앞서 빛이 철조망을 넘지 못하다가 마술사가 철조망을 없애는 순간, 빛이 철조망을 넘어 멀리까지 비추는 의미심장한 이벤트가 예정되어 있다. 여기에 인라인스케이트 행렬, 국내외 대학생들이 참가해 분단의 현장을 체험하는 비무장지대(DMZ) 순례단, 퍼레이드 자동차 등이 어우러진 길놀이도 함께 펼쳐질 예정.
음악의 언덕 옆에는 ‘바람의 언덕’이라 명명한 잔디 언덕에 바람개비 3000여 개로 만든 세계 지도가 눈길을 끈다.
한편 1만 원의 기부금을 내면 인조 벽돌에 희망의 메시지를 새길 수 있는 ‘통일기원 돌무지’ 행사도 14일부터 시작된다. 북한 어린이들의 결핵 퇴치를 위해 유진벨재단에 기부할 계획이다. 031-247-1262∼4, www.peacef.org
▼강준혁 감독은…▼
△1948년 대전 출생
△1966년 서울대 미학과 입학, 4학년 중퇴
△1977∼88년 ‘공간사랑’ 극장장
△1988년 춘천인형극제 기획
△1989∼95년 종합문화기획사무실 ‘스튜디오 메타’ 대표
△1997∼98년 프랑스 아비뇽페스티벌, 한국의 밤 예술자문
△2000∼2002년 추계예술대 예술경영대학원 원장
△2004년∼현재 성공회대 문화대학원장
임진각=허문명 기자 ange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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