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빈 바랑

무쇠소는 사자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淸潭 2009. 6. 22. 12:19
[무쇠소는 사자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깊은 골짜기(深谷)

깊은 골짜기(深谷)


깊고 먼 이 곳에 그 누가 이르리.

조각구름 한가로이 골의 입구에 걸렸는데

이 가운데 뛰어난 경치를 아는 이 없어

명월과 청풍이 푸른 하늘을 희롱하고 있다.


極遠誰能倒那邊  片雲橫掛洞門前

 극원수능도나변    편운횡괘동문전

其中勝境無人識  明月淸風弄碧天

 기중승경무인식    명월청풍롱벽천


- 나옹혜근(懶翁惠勤)

 

 

   나옹(懶翁, 1320~1376) 스님의 ‘깊은 골짜기(深谷)’라는 시다. 말씀은 깊은 골짜기를 이야기 하고 있으나 내용인즉 자신만이 도달한 높고 깊은 선경(仙境)을 의미한다. 선사들의 선시는 언제나 그렇다. 사물과 풍경을 이야기하고 있으나 그 말 속에는 언제나 자신이 터득한 깨달음의 경지와 독보적 정신세계를 은근히 드러내고 있다. 만약 그것이 없으면 선사의 선시라 할 게 없다.


   나옹 스님은 우리 불교사에 자랑할 만한 매우 훌륭하신 도승이다. 특별한 행적도 많다. 문장과 지견이 남다르다. 그래서 좋은 시가 많이 전하며 스님의 토굴가(土窟歌)는 아직도 선불교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입에서 떠나지 않고 있다.


   깊고 먼 이곳이 그냥 깊기만 한 것이 아니고 흰 구름 한 조각이 동구에 가로걸려 있어서 풍경이 얼마나 깊은지를 가늠할 길이 없다. 그 뛰어난 경치를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다. 나옹 스님의 그 훌륭한 선의(禪意)와 선기(禪機)를 누가 감히 짐작하겠는가. 그야말로 불불(佛佛)이 불상견(不相見)이나 도인만이 도인을 알아본다. 그래서 명월과 청풍만이 푸른 하늘을 희롱하고 있다고 하였다. 한 평생 자신의 생애를 다 바쳐서 이르러 온 지극한 도의 경지를 이렇게 아름다운 시어를 통해서 그리고 있다. 곱씹고 음미할수록 참으로 숨이 멎는 절창이다.

 

출처 : 무비 스님이 가려뽑은 명구 100선 ③  [무쇠소는 사자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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