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쇠소는 사자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깊은 골짜기(深谷)
깊은 골짜기(深谷)
깊고 먼 이 곳에 그 누가 이르리.
조각구름 한가로이 골의 입구에 걸렸는데
이 가운데 뛰어난 경치를 아는 이 없어
명월과 청풍이 푸른 하늘을 희롱하고 있다.
極遠誰能倒那邊 片雲橫掛洞門前
극원수능도나변 편운횡괘동문전
其中勝境無人識 明月淸風弄碧天
기중승경무인식 명월청풍롱벽천
- 나옹혜근(懶翁惠勤)
나옹(懶翁, 1320~1376) 스님의 ‘깊은 골짜기(深谷)’라는 시다. 말씀은 깊은 골짜기를 이야기 하고 있으나 내용인즉 자신만이 도달한 높고 깊은 선경(仙境)을 의미한다. 선사들의 선시는 언제나 그렇다. 사물과 풍경을 이야기하고 있으나 그 말 속에는 언제나 자신이 터득한 깨달음의 경지와 독보적 정신세계를 은근히 드러내고 있다. 만약 그것이 없으면 선사의 선시라 할 게 없다.
나옹 스님은 우리 불교사에 자랑할 만한 매우 훌륭하신 도승이다. 특별한 행적도 많다. 문장과 지견이 남다르다. 그래서 좋은 시가 많이 전하며 스님의 토굴가(土窟歌)는 아직도 선불교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입에서 떠나지 않고 있다.
깊고 먼 이곳이 그냥 깊기만 한 것이 아니고 흰 구름 한 조각이 동구에 가로걸려 있어서 풍경이 얼마나 깊은지를 가늠할 길이 없다. 그 뛰어난 경치를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다. 나옹 스님의 그 훌륭한 선의(禪意)와 선기(禪機)를 누가 감히 짐작하겠는가. 그야말로 불불(佛佛)이 불상견(不相見)이나 도인만이 도인을 알아본다. 그래서 명월과 청풍만이 푸른 하늘을 희롱하고 있다고 하였다. 한 평생 자신의 생애를 다 바쳐서 이르러 온 지극한 도의 경지를 이렇게 아름다운 시어를 통해서 그리고 있다. 곱씹고 음미할수록 참으로 숨이 멎는 절창이다.
출처 : 무비 스님이 가려뽑은 명구 100선 ③ [무쇠소는 사자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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