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기세포의 진실/줄기세포

"한국, 이대론 '줄기세포 식민지' 된다"

淸潭 2009. 2. 20. 13:12

 

"한국, 이대론 '줄기세포 식민지' 된다"

 

 

한국 줄기세포 대표 연구자가 토로하는 '위기의 현실'
"美, 원천기술 특허 대부분 독차지
英, 체세포 복제 방식 가장 앞서가
이젠 '황우석 콤플렉스' 벗어나야"
김철중 의학전문기자 doctor@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 延大김동욱 교수

"이러다 우리는 '줄기세포 식민지'가 될지 모릅니다. 몇 년 전만 해도 우리가 줄기세포 만드는 기술은 세계 최고라고 자부했는데…." 연세대 의대 김동욱(金東旭·49) 교수는 양손을 머리 뒤로 올리고 잠시 천장을 올려다봤다. 그러고는 약간은 쉰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요즘 줄기세포 관련 고급 원천기술 특허는 미국과 영국이 대부분 가져가고 있어요. 전 세계 수백개 줄기세포 연구소 중 웬만한 곳은 우리의 줄기세포 배양 기술을 다 갖고 있으니 과거는 무의미합니다. "

그는 "미국·유럽·일본은 나는데 우리는 걷고 있는 꼴이죠. 그럼에도 우리는 '황우석 사건' 이후 줄기세포가 국민적 관심 대상에서 싹 사라졌으니…"라며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각국의 생명공학 석학들이 모이는 국제줄기세포 포럼에 한국측 인사로 참여하고 있으며, 국내 줄기세포 연구를 이끌고 있는 세포응용연구사업단 단장을 맡고 있다. 줄기세포 연구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연구자인 그의 답변에는 매번 얇은 한숨이 번져 나왔다.

물량공세 펼치는 미국

"지금 생명공학 분야에선 '줄기세포 전쟁'(stem cells wars)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원천기술을 서로 경쟁적으로 개발하는 단계이고 어떤 것이 먼저 실용화될지 모르는 시기이기 때문에 물량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지금 미국 캘리포니아주(州)에선 19세기 골드러시에 버금가는 '21세기판(版) 줄기세포 골드러시'가 이뤄지고 있다. 주정부 산하 재생의학연구소가 1년에 3억달러씩을 줄기세포 연구에 쏟아붓자 각국의 우수한 연구진이 이곳으로 모이고 있는 것이다. 스탠퍼드대가 35개 프로젝트로 1400억원을 받았고, UC샌프란시스코(UCSF)는 1162억원, UCLA는 798억원을 받았다.

의료계에선 '공포의 질병'이었던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가 정복된 것은 미국인이 에이즈에 많이 걸린 '덕분'이라는 속설이 있다. 의학 연구에 막대한 연구비를 쏟아 붓는 미국이 '미국인 병(病)' 연구에 달려들면 분명 새로운 치료법이 나온다는 뜻이다.

"미국은 그만큼 의학 연구에 독보적 파워를 갖고 있습니다. 신약(新藥)이나 치료제 개발 단계마다 원천기술을 특허와 로열티로 겹겹이 둘러싸 놓고 있죠. 우리에게 그런 기술이 없다면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합니다."

세계줄기세포학회 산하 정부정책 위원회는 올해 1월 미국에 권고안을 제출했다. 사람 체세포 복제 등 모든 유형의 줄기세포 연구를 허용하고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바마 정부가 이를 받아들일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미국도 복제 연구를 공식적으로 시작하는 거죠.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이미 민간 연구비로 체세포 복제 연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발 빠르게 움직이는 유럽·일본

영국은 체세포 복제를 통한 줄기세포 개발에 한창이다. 이른바 '황우석 방식'의 줄기세포를 말한다. 영국 정부는 런던대와 뉴캐슬대 등에 복제 연구를 허용했다. 영국은 체세포 복제에 성공했으며, 이를 통한 줄기세포 개발 성공의 턱밑까지 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복제 연구를 쉽게 할 수 있도록 동물의 난자에 사람의 핵을 이식하는 이종(異種) 간 복제 연구도 열어놓았다(한국은 이종 간 복제 연구 금지).

일본은 2년 전 교토대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유도만능줄기세포(iPS)에 전폭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만능세포'는 다 자란 인간의 피부 세포를 배아단계로 역분화(逆分化)시켜 만든 줄기세포다. 김 교수는 "교토대의 줄기세포는 '환자 맞춤형'이면서 난자가 필요 없기 때문에 전 세계 연구진이 달려드는 분야"라며 "일본 정부는 지난해 여기에 400억원의 연구비를 줬다"고 전했다.

싱가포르는 아시아 최고 바이오 강국을 만들겠다는 뜻으로 'A Star' 프로젝트를 시행하고 있다. 줄기세포 연구 바이오 벤처 등을 육성하는 '바이오폴리스' 단지를 만들고, 영국의 줄기세포 학자들을 스카우트해 오고 있다.

한국은 도리어 연구비 줄어

반면 한국은 지난해 정부에서 지원하던 줄기세포 연구비가 줄어들었다. 2007년 350억원이던 것이 작년에는 344억원이 됐다(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 미국 UCLA·일본 교토대 등 한 개 대학보다 적은 액수다.

미국은 한 해 줄기세포 연구비로 최소 1조원, 영국은 1390억원, 일본 1270억원, 프랑스는 630억원을 썼다(2007년 환율기준). 싱가포르(460억원), 남아프리카공화국(440억원)도 우리보다 연구비가 많다.

"그래도 희망은 있습니다. '사이언스 논문 조작 사건'의 악조건 속에서도 2007년 국내 배아줄기세포 관련 논문 수가 세계 4위를 기록했으니까요. 일당백(一當百)으로 싸운 거죠."

뇌질환 파킨슨병이나 동맥경화로 인한 혈관질환 등에 대한 국내 연구진의 줄기세포 치료제 개발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평이다.

'황우석 콤플렉스' 버려라

가장 큰 장애물은 생명과학계에 그림자를 드리운 '황우석 콤플렉스'다. 황우석 박사 논문조작 사건에 하도 덴 나머지, 줄기세포하면 곧 '허황된 꿈'을 연상 작용하는 '고착 방정식'이 미래의학의 꽃으로 불리는 줄기세포 연구 활성화를 가로막고 있다.

"(황우석 박사가 했던) 체세포 복제 연구는 전체 줄기세포 연구의 일부분에 불과한데 줄기세포 얘기만 꺼내면 다들 손사래를 치니…. 연구진의 사기는 떨어져 있고, 정부도 줄기세포에 관심을 적게 주니 전반적으로 가라앉아 있는 게 제일 큰 문제입니다."

사이언스 논문 조작이 불거진 2006년 국제줄기세포학회는 '코리아 스캔들'이라는 주제로 윤리 심포지엄을 잇따라 연 바 있다.

그는 "연구자(황우석) 개인의 문제이지 왜 '코리아 스캔들'이냐고 항의를 해서 주최측으로부터 사과를 받아내곤 했다"면서 "이제 우리도 윤리적 심의 시스템을 강화했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신뢰를 회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제는 '스타 과학자' 한 명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성체와 배아 줄기세포, 역분화 만능세포 등 모든 유형의 줄기세포 연구를 통합적으로 지원하고 관리하여 원천기술을 쌓아나가야 합니다."

김 교수는 "왜 선진국들이 줄기세포에 엄청난 투자를 하는지 생각해 보라"며 이렇게 말을 맺었다. "지금 우리는 줄기세포 선진국으로 가느냐, 후진국으로 가느냐의 기로에 있습니다. 지금 바짝 따라가지 않으면 줄기세포 전쟁의 패전국이 될 수 있습니다."

체세포 복제 줄기세포

기증받은 난자의 핵을 제거하고 그 자리에 환자의 체세포(體細胞·주로 피부세포) 핵을 집어넣어 복제해 줄기세포를 만드는 방법. 줄기세포는 신경·췌장·심장·간 등 각종 인체 세포를 만들어 내는 '세포 공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