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료1(문온공파 김윤만 자료 제공)
첫째 왕비는 죽방부인 죽주박씨로 슬하에 마의태자, 그리고 경주김씨 관조
영분공을 비롯한 3남1녀가 있었고
후비는 태조 왕건의 따님이시고 충주태사 유긍달 외손녀이신 낙랑공주 개성
왕씨로 슬하에 5남2녀를 두었으며,
그리고 또 한분 육비께서는 1남을 두었다.
2. 자료2 (<김씨의 뿌리>)
소원왕후(昭元王后) 박씨 소생으로 -- 1남 김일, 2남 김굉(범공),
3남 김명종
왕씨(낙랑공주) 소생으로 -- 4남 김은열, 5남 김석, 6남 김건,
7남 김선, 8남 김추
순흥안씨 소생으로 -- 9남 김덕지 라고 정리되어 있고.
경순왕에게는 아홉 아들 이외에 세딸이 있었는데,
첫째딸은 제5대 경종의 왕비 죽방부인 (獻肅夫人)이 되었고,
둘째딸은 長水人 黃瓊(황경)의 부인이 되었으며,
셋째딸은 신라 시중 이금서 (李今書)의 부인이 되었다. 라고 되어 있다.
경순왕의 딸
월악산 국립공원내 미륵사지와 덕주사, 덕주산성, 덕주골 등지에는 경순왕의 딸
덕주공주과 마의태자와 관련된 전설이 산재해 있고 강원도 원주시 귀래면
주포리 산 25-2에 있는 원주황산사지(原州黃山寺址) --- 전설에 의하면
경순왕의 공주가 이 절에 와서 부왕의 존상을 산정 석벽에 조각케 하였고,
그후 경순왕이 직접 이곳에 와서 존상을 보고 환경한 후부터 산명을
대왕산(大王山)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귀한 분이 왔다 하여 동리 이름을
귀래(貴來)라고 하였다 그러나 관련 기록에는 경순왕의 딸 중에 덕주공주라는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덕주공주가 경순왕의 딸이 맞다면 윤만 종친의 의견대로
첫째부인 죽방부인의 3남 1녀중 1녀일 것이다. 덕주공주는 신라가 망하기 전의
신라공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경순왕에게는 딸이 셋이 있었다고 하는데 덕주공주가 첫째부인 죽방부인
소생이라면 딸 셋 (경종왕비, 황경, 이금서)중 낙랑공주는 2녀(경종왕비,황경)를
낳은 것으로 되어 있는데, 딸 하나 (이금서)는 어느 소생인지 불분명해지게 되고,
전체적으로 경순왕의 딸은 넷(덕주공주, 경종왕비, 황경, 이금서)이 된다.
경순왕의 아홉 아들이 어떻게 퍼져 나갔는가를 [김씨의뿌리] 책자에 나와 있는 데
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가) 경순왕의 9아들
◈ 1남 김일
첫째아들 金鎰(김일)은 소원왕후 (昭元王后 )박씨 소생으로 경순왕이 나라를 고려에
바치자 이를 통분히 여겨 금강산에 들어가서 움막을 짓고 산 마의태자를
가리키는데, 기록에 보면 그에게는 입산 전에 낳은 金較(김교)라는 아들이
하나 있었다. 마의태자 김일이나 그 후손을 시조로 하는 김씨는 다음과 같다.
부령(부안)김씨, 부여김씨, 통천김씨
마의태자와 관련해서는 KBS1TV 역사스페셜 홈페이지중 [2000.4.15 신라
최후의 미스테리, 마의태자]를 보면 자세한 내용을 볼 수 있고, 인제군청
홈페이지를 보면 김부대왕각 동제, 김부리와 군량리(軍糧里), 김부리의
옥새바위, 마의태자 유적지비, 김부 대왕각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 2남 김굉
장남 김일과 함께 소원왕후 박씨 소생인 차남 金 (김굉)은 마의태자가
금강산에 들어가자 자기도 머리를 깍고 화엄종에 들어가 중이 되었는데,
법명은 梵空(범공)이었으며 나중에 해인사에 있었다.
<삼국유사>에는 이 범공이란 중이 마의태자의 막내아들이었던 것으로 기록
되어 있으나, 己未譜 같은 족보에 보면 범공은 둘째아들 김굉이었던 것으로
되어 있고, 사가에 전하는 족보도 그렇게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작가는 이
설을 택했다.
김굉은 중이 되기 전에 낳은 아들이 둘 있었는데, 장남의 이름은 金雲發
(김운발)이고, 차남의 이름은 金雨發(김우발)이었다.
김굉이나 그 후손을 시조로 하는 김씨는 다음과 같다.
---교하김씨, 울산김씨, 나주김씨, 안로김씨, 해주김씨
*(2남 김굉의 후손에서 울산김씨가 분관되었다는 것은 2005. 1. 21. 울산김씨
김강씨의 주장과 요청에 의하여 일단 삽입하였으나 사실 여부는 계속하여
조사 연구 중에 있음)
◈ 3남 김명종
3남 金鳴鍾(김명종) 또한 소원왕후 박씨 소생이다. 각간을 역임했으며 시호는
永芬公(영분공)인데 뒤에 경주김씨의 시조가 되었다.
경주김씨의 시조는 3남 김명종과
4남 김은열 두 명인데, 이처럼 경주김씨의 시조를 두명으로 한 것은 김명종이
소원왕후 박씨 소생인 데 반해, 김은열은 왕건의 장녀인 낙랑공주 소생이었기
때문이다.
3남 김명종이나 그 후손을 시조로 하는 김씨는 다음과 같다.
---강화김씨, 경주김씨, 계림김씨, 낙안김씨, ... <생략>
◈ 4남 김은열
4남 金殷說(김은열)은 왕씨 소생이다. 왕씨란 왕건의 장녀 낙랑공주를 가리킨다.
大安君에 봉해졌으며, 김명종과 함께 경주김씨의 시조로서 가장 많은 후손을
남긴 사람이다.
김은열에게는 김태화, 김숙승, 김염(→김품언, 김심언) 세 아들이 있었는데, 이
들에게서 나오는 손자들이 또 분파를 해나갔기 때문에 많은 성씨가 나오게
된다.
첫째아들 김태화는 김은열의 경주김씨를 이어받으나,
둘째아들 김숙승은 안동김씨(구안동)의 시조가 되며,
셋째아들 김염은 김해김씨(후김)의 시조가 되었다.
김염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첫째아들 김품언은 수원김씨의 시조가 되고,
둘째아들 김심언은 영광김씨의 시조가 괴었다.
그런데 안동김씨에서 대구김씨, 사천김씨가 갈라져 나가게 되며, 수원김씨에서
는 용담김씨, 용성김씨, 인동김씨, 한남김씨가 갈라져 나가게 된다. 김은열이나
그 후손을 시조로 하는 김씨를 가나다순으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너무 많아 생략>
◈ 5남 김석
5남 金錫(김석)은 왕씨 소생이다. 김석은 金重錫이라고도 불리며 의성군에
봉해졌기 때문에 의성김씨의 시조가 되었다.
김석이나 그 후손을 시조로 하는 김씨는 다음과 같다.
---개성김씨, 고령김씨, 광주김씨, 설성김씨, 의성김씨, 적성김씨
◈ 6남 김건
6남 金鍵(김건) 역시 왕씨 소생이다. 강릉군에 봉해졌기 때문에 강릉김씨의
시조가 되었다.
강릉김씨에는 두 파가 있는데,
하나는 무열왕의 후손인 김주원을 시조로 하는 강릉김씨고,
다른 하나는 김건을 시조로 하는 강릉김씨다.
이 두파를 구분하기 위해 김건의 강릉김씨를 후강릉김씨라고 구분해서 부른다.
김건이나 그 후손을 시조로 하는 김씨는 다음과 같다.
---강릉(후)김씨, 강서김씨, 청주김씨, 홍주김씨
◈ 7남 김선
7남 金繕(김선) 역시 왕씨 소생이다. 언양군에 봉해졌기 때문에 언양김씨의
시조가 되었다. 김선이나 그 후손을 시조로 하는 김씨는 다음과 같다.
---담양김씨, 언양김씨, 예천김씨
◈ 8남 김추
8남 金錘(김추) 역시 왕씨 소생이다. 삼척군(三陟君)에 봉해졌기 때문에
삼척김씨의 선조가 되었다.
김추나 그 후손을 시조로 하는 김씨는 다음과 같다.
---진주(晋州), 영월(寧越), 경산(慶山 ), 남원(南原), 길안(吉安), 옹진(甕津),
진위(振威), 춘양김씨(春陽金氏) 등 8개 분파(分派)가 있다.
◈ 9남 김덕지
9남 金德摯(김덕지)는 순흥안씨 소생이다. 학성부원군에 봉해졌으며, 뒤에
울산김씨의 시조가 되었다. 학성은 울산의 옛이름이다.
김덕지 계열은 울산김씨 하나밖에 없다. (이 내용은 사실 여부를 연구중에
있음)(*현재 상기 내용 중 2남인 김굉의 후손에서 울산김씨시조로 분관되었
다는 울산김씨 김강씨의 주장(2005. 1. 21)에 의해 사실 여부를 조사 연구
중에 있음)
3, 경순왕과 고려의 1대에서 5대까지와 8대왕의 재위기간과
자녀 비교
-신라56대 경순왕 김부 ?-978, 재위 927-935, 부인 3명, 자녀 9남 3녀
-고려1대 태조 왕건 877-943, 재위 918.6-943.5 (25년) 부인 29명 자녀 25남9녀
-2대 혜종 왕무 912-945, 재위 943.5-945.9 (2년4월) 부인 4명, 자녀 2남3녀
-3대 정종 왕요 923-949, 재위 945.9-949.3 (3년6월) 부인 3명, 자녀 1남1녀
-4대 광종 왕소 925-975 재위 949.3-975.5 (26년2월) 부인 2명, 자녀 2남3녀
-5대 경종 왕주 975-981, 재위 975.5-981.7, (6년2월) 부인 5명, 자녀 1남
-(현종 아버지) 안종 왕욱 (? - 997)
-8대 현종 왕순 992-1031, 재위 1009.2-1031.2 (22년3월) 부인13명,
자녀5남 8녀
참고문헌
* 신라삼성연원보(계림김씨 연원보)
안동김씨의 계보 중 경순왕--방경까지의 계보를 밝힘(11세손)
1세 2세 3세 4세 5세 6세 7세 8세 9세 10세 - 11세
敬順王 - 殷說 - 叔(承) - 습돈
-元姜 -文雄 -日兢 -利請 -義和 -敏成 -효종
孝印 - 方慶
* 기존 안동김씨 족보에 없는 元姜, 文雄 두 분의 휘가 더 있음
* 서흥김씨(삼성연원보)
1세 → 2세 → 3세 → 4세 → 5세 → 6세 → 7세 → 8세
부賦경순왕 - 대안군 - 深(강릉군) - 정구 - 계삼 - 환공 - 경보
순보 - 세익
세우(*書興)
* 문헌에 따라서는 6대손, 7대손, 8대손등 제 각각이다. 이것은 世와 代
구분을 잘못해서 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즉 5代孫=6世孫, 6代孫=7世孫이 올바른 표기이다.
* 신라의 멸망과 후삼국의 통일과정
1. 중대에서 하대로의 전환
신문왕(689) 녹읍폐지 → 경덕왕 16년(757) 녹읍부활
혜공왕대 : 진골내부의 상쟁
4년(768) 7월 대공의 난: 96각간의 난
6년(770) 8월 대아찬 金融의 난
11년(775) 6월 이찬 김은거의 난 8월 이찬 염상·시중 정문의 난
16년(780) 4월 이찬 지정의 난. 상대등 김양상과 이찬 김경신이
진압 김양상 즉위(선덕왕)→ 나물왕 10세손
785 상대등 경신 즉위(원성왕)→ 원성왕계 왕위계승 시작
왕위는 혈통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 실력이나 무장력의 우열에
의해 결정됨으로써 연립적 정치체제로 전환되게 되어 정치와 사회의
혼란은 더욱 가중
2. 육두품세력과 지방세력의 대두
중앙귀족이 분열하여 항쟁하고 지방에서 반란이 일어날 때에 이 사회모순을
가장 민감하게 인식하고 그 극복방향을 모색하고 있었던 계층은 육두품세력
왕거인 최치원 최승우 최언위
골품제와 관련된 이들의 불만은 그들 자신 역시 골품제에 기생하는 지배층의
일부였기 때문에 현실비판도 소극적이었을 뿐 아니라 행동도 제한적일 수
없는 한계
* , 김알지계 김씨에서 다른 성으로 갈려간 성씨는
안동 권(權)씨, 강릉 왕(王)씨, 광산 이(李)씨,
감천문(文)씨, 수성 최씨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