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순왕은 누구인가?
서기 927년, 경순왕이 경애왕의 뒤를 이어 즉위하니 이름은 부(傅)이며 문성왕의 후손이다. 왕은 견훤에 의해 시해된 전 왕인 경애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라 전 왕의 시신을 모시고 신하들과 함께 통곡한 후, 시호를 경애라 하고, 남산 해목령(蟹目嶺)에 장사 지냈다.
경순왕의 전 왕인 경애왕은 박씨이다.
경애왕의 아버지 신덕왕(53대)은 원래 박씨로 헌강왕의 사위였으나 후사가 없는 헌강왕의 대를 이었다. 사위가 후사를 있는 일은 가끔 있던 일이나, 그 당시는 김씨 왕의 세습체계가 기틀이 잡힌 때라 김씨의 다음 세대로 왕위를 넘겨 주는 것이 통례였는데, 신덕왕은 자기의 아들인 경명왕, 경애왕으로 왕위를 잇게 한다. 즉 박씨가 김씨 왕위를 빼앗은 꼴이 되었던 것이다.
자신의 측근세력이 없던 경명, 경애왕은 고려 왕건에게 의지 하려 했고, 김씨왕통을 보호 하려 했던 사람들은 후백제 견훤을 끌어 드리려 했다는 설도 있다. 내부와 내통한 견훤이 술판을 벌리고 있는 경애왕을 기습하여 손 쉽게 처리하게 한, 외부의 힘을 끌어드린 일종의 구데타였다는 얘기인데, 견훤이 경주 포석정에서 대소신료들과 잔치를 벌이고 있던 자리에 기습을 하여 신하들과 경애왕을 죽게 한 뒤, 김씨 성을 가진 경순왕을 왕위에 올리고 철수한 것을 보면 허무맹랑한 소리도 아닌 것 같다.
경순왕 4년(서기 930년)에 고려 태조가 고창군(古昌郡) 병산(甁山)에서 견훤(甄萱)과 싸워 크게 이기고 견훤군을 참살하였다.
5년(서기 931년) 2월에 고려 태조는 50여 병사를 이끌고 도성 가까이 와서 신라 왕을 만나자고 하였다. 왕은 신하들과 함께 교외로 나가서 맞이하고, 궁으로 모시고 와서 큰 잔치를 베풀며 술을 권하였다. 잔치가 무러익어 가자, 왕은
"나는 하늘의 도움을 입지 못하여 환난이 끊이지 않고, 견훤이 옳지 못한 일을 자행하며 우리 나라를 쳐서 빼앗으니 얼마나 통분할 일인지 모르겠다."
하고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좌우의 신하들이 모두 울었다. 태조 역시 눈물을 흘리며 왕을 위로하고 수십 일 동안 머물다가 돌아갔다.
9년(서기 935년) 10월, 왕은 사방의 강토가 모조리 남의 땅으로 빼앗기고 나라의 힘이 약하여 스스로 지킬 수 없음을 알고, 신하들과 항복할 것을 의논하였다. 신하들은 각기 옳다거니 그르다거니 의논이 분분하였다. 이 때 왕자(마의 태자)가 말하기를,
"나라가 존재하거나 망하는 것은 반드시 하늘이 정하는 것이오. 그러니 마땅히 충신과 의로운 사람들을 모아 민심을 수습하고, 우리 힘으로 나라를 굳게 지키다가 힘이 다한 후이면 모르거니와, 어찌 천 년을 지켜온 국가를 하루 아침에 남에게 내줄 수가 있으리오."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외롭고 위태함이 이와 같으니 우리의 힘으로는 온전히 지킬 수가 없다. 이제 와서 더 강해질 수도 없고 더 약해질 수도 없을 만큼 약하게 되었으니, 죄 없는 백성들을 참혹하게 죽게 하는 일은 차마 하지 못하겠다."
하고 시랑(侍郞) 김봉규(金封休)에게 국서를 주어 고려 태조에게 항복을 청하게 하였다.
왕자는 울며 하직하고, 곧 개골산(금강산)으로 들어가 바위 옆에 움막을 짓고 살았다. 그 곳에서 왕자는 베옷 차림에 풀뿌리, 나무 열매를 먹으며 일생을 마쳤다.
서기 935년 11월, 고려 태조는 항복을 하고 나라를 이양하겠다는 경순왕의 국서를 받아보고, 대상 벼슬의 왕철 등을 신라까지 보내어 경순왕을 맞게 하였다.
마침내 경순왕은 백관을 거느리고 서라벌을 떠나 송도로 향하는데, 행렬이 30리에 뻗쳤다.
고려 태조 왕건이 송도 교외에 나와 경순왕을 맞아 위로하니, 이로써 신라는 나라를 세운 후 922년 만에 멸망하게 되었다.
경순왕의 후손은 태자 일(鎰, 마의태자), 황(金皇), 명종(鳴鍾), 대안군 은열(殷說), 의성군 중석(重錫), 강릉군 건(金建), 언양군 선(金善), 삼척군 추(錘), 학성부원군 덕지(德摯) 등 8명의 아들과 고려 경종왕비가된 현숙부인 등 3명의 딸이 있다.
경순왕은 고려 태조에게 항복한 후 태조로부터 유화궁(柳花宮)을 하사받았으며, 낙랑공주(樂浪公主)를 아내로 맞고 정승공(政承公)에 봉해졌으며, 경주(慶州)를 식읍(食邑)으로 받았다. 한편, 경주의 사심관(事審官)에 임명됨으로써 고려시대 사심관제도의 시초가 되었다. 능은 경기 연천군 장남면(長南面)에 있다
경주김씨 계림군 후 도정공파 문중회 | 글쓴이 : 로빈쿡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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