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부처님 마음

[천불만다라]37. 선과 악의 시작

淸潭 2008. 10. 23. 17:28

[천불만다라]37. 선과 악의 시작
선과 악의 시작은 나로부터 비롯된다
기사등록일 [2008년 10월 16일 20:01 목요일]
 

내가 악행을 하면 스스로 더러워지고
내가 선행을 하면 스스로 깨끗해진다
그러니 깨끗하고 더러움은 내게 달린 것
아무도 나를 깨끗하게 해줄 수 없다
 - 『법구경』

 

일본 불교 조동종의 개산조(開山祖)인 도원(道元, 1200-1253)선사가 중국에 가서 구법(求法)을 하였을 때, 처음으로 만난 스승이 천동 여정(天童 如淨)선사라고 한다. 여정선사는 인품이 고귀하여 모든 수행자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던 분이다. 일본의 도원선사가 배를 타고 중국에 가서 상륙허가를 받기위하여 배에 머물고 있을 때 선상(船上)에서 여정선사를 만났다. 그 당시 중국과 일본 등지를 오가는 배는 상선(商船)으로 무역선의 역할을 했던 시대이다. 그 무역선을 타고 많은 구법승(求法僧)들이 중국을 오갔던 것이다.

내가 짓는 공덕만이 내 공덕

도원선사가 선상에서 여정선사를 만났을 때에는 백발이 성성한 노승(老僧)이셨다. 노승이 천동산에서부터 걸어 내려오셔서 대중공양을 위하여 진귀한 물품인 표고버섯 등을 사서 짊어지는 모습을 보고서 여정선사에게 물었다. “천동산에는 젊은 수행자도 많이 거주한다고 들었는데 왜 노스님께서 직접 이 먼 곳까지 오셔서 무거운 짐을 져서 나르시는가?” 이에 노스님은 단호한 눈빛으로 도원선사를 바라보면서 “대중을 위하여 내가 몸소 짓는 공덕은 나의 공덕이고, 젊은 승려가 짓는 공덕은 젊은 승려 그들의 공덕이다”라는 말씀을 남기시고 무거운 짐을 지고는 유유히 천동산으로 올라가버리셨다. 뒤에 천동산에 참배하여 여정선사를 만나 뵙고 불법의 대의(大意)를 물으니 안횡비직(眼橫鼻直)이라는 말씀을 던지셨다고 한다. 눈은 옆으로 달려있고 코는 직선으로 자리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말로서, 도(道)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 매우 일상적이고 평범한 것 속에 있음을 가르친 법문으로 전해져오고 있다. 위의 여정선사 말씀 중에서 ‘내가 짓는 공덕은 나의 공덕이고 남이 짓는 공덕은 남의 공덕’이라는 말씀에서, 모든 선과 악의 시작이 나로부터 비롯된다는 이치를 터득하게 한다. 선악의 행위는 한 치의 틈새도 없이 나로부터 시작되어 자신의 죄업과 공덕이 된다는 준엄한 가르침인 것이다.

인간의 행위는 습관이 되고 습관은 다시 업(業)이 되어서 우리 모두를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누에가 자신이 만든 고추에 갇히듯, 만들어진 허상에 얽매여서 우리는 극락과 지옥을 오가며 살고 있다. 이 엄연한 현실 앞에서 오직 불교는 극락에 가는 원인도 지옥에 가는 원인도 오직 자신에게 있음을 찾아 그 원인을 밑뿌리부터 제거하라고 한다. 곧 자신의 업을 자기 스스로 바꾸라는 가르침이다. 현세에 선택한 직업을 바꾸기도 어려운 일인데, 여러 생으로 익혀온 숙업(宿業)을 고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 숙업을 고치는 힘이 바로 나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깨우치는 종교가 바로 불교다. 지금 자신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습을 꿰뚫어 보는 지혜의 힘을 길러서 이 순간부터 자신을 개조해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나를 깨끗이 하거나 나를 더럽히는 원동력이 바로 나 자신에게 있다고 부처님은 늘 중생을 향하여 깨우쳐 주고 계시다.

참회는 자신을 반전시켜

그리고 이 숙업을 맑히는 방법으로 불교에는 참회(懺悔)의 정신이 있다. 현재 자신이 악업을 저지르고 있다고 깨닫는 순간 악업의 고리를 끊어버리는 단호한 자세가 바로 참회의 행위이다. 우리의 삶 속에서 불행은 꼬리를 물고 계속하여 이어질 때가 있다. 이러한 일을 당할 때 우리는 매우 당황하여 좌충우돌하고 때로는 끝없는 나락으로 빠져들게 되는데, 이러한 때에는 더욱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행위를 지혜로써 살펴보아야 한다. 바로 자신의 허물을 헤아려서 모든 욕망을 비우고 허공과 같은 마음으로 깊은 참회의 기도를 시작하는 것이 필요하다. 원망과 탐욕의 마음을 버리고 부처님의 자비광명을 상념(想念)하면서 어두운 곳으로부터 자신을 밝고 선한 기운 쪽으로 이끌어 가는 힘이 바로 참회의 기도이다. 참다운 참회의 기도는 어두움과 악업의 사슬을 한순간에 끊어 버리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부터 우리는 악업의 심연(深淵)으로부터 벗어나는 행운을 얻게 된다. 이것이 바로 참회 기도의 힘이며, 이 힘 또한 전적으로 자신의 내부에서 솟아나오고 있음을 확신해야 한다. 진정한 참회는 곧 매순간 자신을 반전(反轉)시킬 수 있는 내면의 힘인 것이다.

참회로 자신을 반전시킨 우리는, 매우 겸허한 마음으로 부처님을 예경하면서 삶의 가치와 방향을 새롭게 다져가는 서원의 마음을 지니게 된다. 끝이 보이지 않던 어두운 심연에서 원망의 삶으로부터 방향을 바꾸는 자세가 서원의 마음이다. 그리고 확신을 가지고 부처님이 펼쳐 보이신 선업(善業)의 길을 따라서 그 길에 나아가는 실천자가 되었을 때 비로소 자신을 맴돌던 어두운 기운은 소멸하고 밝음을 향해 서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 커다란 변화 역시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자기를 깨끗이 하는 행위인 것이다.

본각 스님 (중앙승가대 교수)
그림=이호신 화백, 수화자문=원심회 김장경 회장


969호 [2008년 10월 16일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