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수사모

팔월 수덕사

淸潭 2008. 10. 18. 21:10

 


 

팔월 수덕사


1.


백일홍나무 붉은 속울음 우는

팔월 아침 수덕사

상사화꽃은 창백한 낯빛으로 피고 또 지고

어지러운 마음은 대웅전 뜨락을 맴맴 돈다


초파일 밤하늘에 꽃빛 둥실 떠올랐던 연등들

사무치는 염원으로 타올랐던 찬란한 기억만을 안고

지금은 오뉴월 고행의 시간

뜨락 한 구석을 붙들고 하얗게 하얗게 사위어 간다


어디 내놓고 지킬 덕이 내게 있었더냐

불혹이라는 나이에도 다를 바 없이

마음 가득한 애련과 수심

대웅전 큰부처님 뵐 낯이 없어


한갓진 관음전 텅 빈 불당에

상처 입은 새마냥 찾아드니

삼 배 올리는 엎드린 손 애처러워

보살은 다만 슬픈 눈빛으로 바라만 보시네


2.


사랑도 사람이 하는 일인지라

본래

상사화처럼 가망 없이 잎을 기다리다 시드는 양이거나

빛바랜 초파일 꽃등처럼 다만

절정을 추억하는 자세로 남은 시간을 견디며

마지막 불꽃으로 살라줄 어느 손길을 기다리는 것


누구를 탓하랴 그 무엇도

인연의 강가에서 피고 지는 꽃들인 것을

무심하게도 시퍼런 팔월 하늘은

죽을 듯 토해내는 매미울음에도 한 치 흔들림이 없네


듣는 이 대답이 없고 아는 이 해답이 없는

물음만 마음 가득하니

대웅전 돌계단을 가만가만 내려오는데

그 뉘신지

늙은 아비처럼 다정한 목소리


감당 못 할 일이거든 그만 내려놓아라

내려놓아도

괜찮다

괜찮다

누군가 그렇게 괜찮다 하시네


2008. 8.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