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부처님 마음

[천불만다라]30. 여성불자의 대명사 위사카

淸潭 2008. 8. 24. 20:41

[천불만다라]30. 여성불자의 대명사 위사카
욕망에 잡혀 스스로 노예된 여인들 경책
기사등록일 [2008년 08월 19일 화요일]
 

소치는 사람이 채찍을 들고
소를 몰아 목장으로 데리고 가듯
늙음과 죽음은 쉬지 않고
우리들의 목숨을 몰고 간다
 - 『법구경』


위의 게송은 폭력을 경계한 내용에 이어지고 있는 가르침이다. 거해 스님의 『법구경』 편역에 의하면 부처님 당시 여성 불자로 너무나 유명한 위사카 우바이와 관련된 게송이라고 한다. 위사카(또는 비사거, )는 녹자모(鹿子母), 미가라장자모, 위사카미가라장자모, 위사카녹자모 등으로 불리고 있다. 위사카는 앙가()국 거부의 딸로서 용모가 아름답고 지혜로우며, 일찍이 부처님의 교화에 의하여 예류과(預流果)를 증득한 여성 불자이다. 뒤에 사위성 미가라 장자의 며느리가 되어서 자이나교도였던 미가라 장자를 부처님께 귀의시켰으며, 미가라 장자는 며느리의 인도로 깨달음의 초입인 예류과를 성취하였다. 장자는 이 일을 기뻐하여 위사카에게 ‘어머니’라는 명칭을 붙여 주었다. 그래서 경전 상에 ‘미가라모’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여성 불자의 대표 격인 위사카는 『우바이정행법문경』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특히 많은 경전에 설법장소로서 거명되는 ‘녹자모강당’은 위사카가 결혼식에서 입었던 매우 비싼 가격의 옷을 부처님께 올리면서 부처님의 정사를 짓기를 발원하여 지어진 강당이다. 이 강당을 지을 때 목련존자에게 감독을 명하셨고, 9개월이 걸려서 완공을 본 상하 2층의 건물이다. 사위성의 남쪽 교외에는 기원정사가 있었고 동쪽 방향에는 동원정사(東園精舍)로 녹자모강당이 있었다고 한다. 이 녹자모강당은 많은 경전에 이름이 전해지고 있는데, 암파발리 여인이 승단에 보시한 ‘암파발리망고동산’과 함께 부처님 당시 여성이 건립한 사찰로 유명하며 부처님 승단에서 여성의 역할이 매우 컸음을 시사하고 있다.

팔계(八戒)를 지키는 진짜 이유

이러한 위사카 우바이는 승가에 보시하는 철저한 보시행의 실천으로 수행을 삼았다. 뿐만 아니라 많은 여성 불자들을 불법 수행의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사람으로서 기록되어 있다. 부처님 당시에는 재가 불자도 수행으로 근본을 삼았고 여성 불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여성 불자는 정해진 재일(齋日)이면 비구니 수행처에 모여서 팔계를 받고 1일 수행을 실천하고 귀가하곤 하였다. 그런데 팔재계를 받고 수행에 임하는 여성 불자들의 마음가짐에 각각 차이가 있음을 위사카는 알아차렸다. 여성 불자들이 팔재계를 지키는 것이 현세적인 욕망에만 결부되어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예를 들면 나이가 많은 여인들은 죽어서 천상에 태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팔계를 지키려 했고, 중년의 여인들은 자기 남편의 애정을 독차지 하려는 욕망으로 팔계의 공덕을 얻고자 하였다. 또한 갓 결혼한 젊은 여인들은 인도 전통사회의 요청인 아들 낳기를 갈구하는 마음으로 팔계를 지니는 공덕을 생각하고 있음을 위사카는 알아차렸던 것이다. 이는 곧 여인들이 비구니 수행처에 와서 팔계를 지니는 것이 최상의 가치인 열반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세적인 욕망을 이루고자하는 매우 조잡한 생각에 머물러 있음을 의미했던 것이다. 위사카는 이러한 사실을 모두 부처님께 말씀드렸고 가르침을 청하였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현재 처해 있는 늙고 죽음의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고 도리어 현세의 욕망으로 자신을 고통 속에 더욱 굳게 얽어매고 있는 여인들을 경책하시는 뜻에서 위의 게송을 설하셨다고 한다.

유한한 가치에 발목 잡혀서야

부처님 당시의 여성 불자나 오늘날 한국의 여성 불자나 다 같이 가족이라는 틀 속에서 현세의 이익을 얻고자 하는 소망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또한 욕망의 틀 속에 갇혀서 진리를 향하여 한걸음도 내딛으려고 하지 않고 욕망의 노예가 되어서 살아가는 여인의 속성도 동시에 감지하게 한다. 그러나 불교는 남성이든 여성이든 누구를 막론하고 유한한 가치로부터 자신을 일으켜 세워서 무한한 가치에 매진 할 것을 종용하는 가르침이다. 생로병사로 끝없이 전개되는 유한한 가치에 한번 발목을 잡히면, 우리는 일상 속에서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리듯 부질없는 일에 목숨을 걸고 삶을 허비하게 된다. 그리고 뜻과 같이 성취되거나 되지 않음에 희로애락(喜怒哀樂)하고 우비고뇌(憂悲苦惱)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이것이 중생의 업(業)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리를 보는 눈을 갖추고 욕망으로부터 털고 일어설 때, 중생의 업은 다하고 비로소 성인의 무리에 들어가게 되는 예류과(預流果)를 성취한다는 것이다.

언젠가는 모두 늙어가고 언젠가는 모두 죽음에 이르게 된다. 목동이 소 떼를 몰아서 목장에 넣고 자물쇠를 채우듯 말이다. 그러므로 풀을 뜯어 먹고 배를 불리는 것으로 끝나는 현세의 욕망의 노예가 되지 말아야 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현재 풀을 뜯어먹고 배를 부르게 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한 일이지만, 거기에 만족하거나 머무르거나 더 나아가서 집착하지 말라고 가르치신다. 곧 죽음의 그림자가 닥쳐오고 희생을 강요하는 탐욕이 덮쳐오기 때문이다. 스스로 어리석은 종이 되거나 희생될 양떼로서 남아 있지 말고, 불성(佛性)의 종자를 가진 부처님이 될 가능성을 믿고 깨어나라고 하는 것이 부처님 가르침의 근본임을 위사카 우바이는 여성 불자 모두에게 큰 소리로 외치고 있는 것이다.

본각 스님 (중앙승가대 교수)
그림=이호신 화백, 수화자문=원심회 김장경 회장


961호 [2008-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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