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뻐야 하는데 왜 이렇게 슬픈지 모르겠어요."
코트를 나와 믹스트존에 들어선 허순영은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큰 오빠같은 최석재 골키퍼 코치는 감격에 겨워 선수들에게 안아 달라고 했다. 골키퍼 오영란은 눈물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딸 서희를 불렀다. 임영철 감독은 2004년 아테네올림픽 은메달 멤버인 임오경 서울시청 감독이 보이자 덥석 안았다.
그렇게 바랐던 금메달은 놓쳤지만, 금메달 보다 더 값진 동메달을 얻었다. 선수들은 부상으로 온 몸이 성한 데가 없었고, 그동안의 설움이 밀려와 코트는 눈물 바다가 됐다.
덩치가 산만한 유럽선수들에 비해 작고, 여리고, 힘이 부족하지만 우리 선수들에게는 강한 정신력과 투혼이 살아 있었다. 베이징에서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꿈꿨던 여자핸드볼이 다시 한번 감동의 드라마를 연출했다.
금메달에 대한 아쉬움보다 더욱 진하고 감동적인 스토리다.
임영철 감독이 이끄는 한국 여자핸드볼대표팀이 토요일(23일) 베이징 국가실내체육관에서 벌어진 2008년 베이징올림픽 3~4위 전에서 헝가리를 33대28로 제압하고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헝가리는 예선에서 33대22로 대파했던 상대. 하지만 경기는 쉽지 않았다. 선수단 분위기는 가라앉아 있었고, 맏언니 오성옥과 주전 골키퍼 오영란 최임정 허순영 등 주전 대다수가 크고 작은 부상 때문에 정상적으로 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몇몇 선수는 진통제를 맞고 경기에 나섰다.
전반이 끝났을 때 스코어는 13-15. 벤치는 안절부절했고, 선수들은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후반 초반 심기일전한 선수들은 반격을 시작해 경기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후반 7분 박정희의 골을 앞세워 18-18 동점을 만들었지만 경기는 팽팽하게 흘러갔다. 한국이 1점을 리드하면 헝가리는 곧바로 따라붙었다.
하지만 힘의 균형은 태극전사들의 강한 정신력과 투혼 앞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후반 23분 홍정호와 안정화가 잇따라 골을 성공시켜 분위기를 완전히 끌어왔다. 경기 종료를 5분여 남겨놓고 한국은 무서운 집중력을 발휘, 상대의 추격의지를 꺾어 놓았다.
노르웨이와의 4강전에서 버저비터를 내주고 주저 앉았던 선수들은 다시 일어섰다.
중계방송 화면을 아무리 분석해 봐도 분명 버저가 울린 순간 공은 골라인을 넘지 않았다. IHF(국제핸드볼연맹)가 한국이 제기한 소청을 받아들이지 않아 선수들은 실망이 컸다.
무려 세 차례의 예선을 거쳐 본선 티켓을 땄고, 살인적인 지옥훈련을 이겨낸 선수들은 그냥 주저 않지 않았다.
임영철 감독은 "우리 선수들, 정말 대단하지 않나요. 이제 감히 누가 아줌마 선수들의 나이와 체력을 운운할 수 있겠어요"라고 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자부심이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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