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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본 '건국 60년, 60대 사건'][57] 첫 남북정상회담

淸潭 2008. 8. 22. 13:15

[사진으로 본 '건국 60년, 60대 사건'][57] 첫 남북정상회담

 분단 55년만에 南北정상 손 잡았지만…


발행일 : 2008.08.20 / 종합 A8 면 기고자 : 유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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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제15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김대중은 그해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대한민국 건국(建國) 50년사(史)는 우리에게 영광과 오욕이 함께했던 파란의 시기였다"며 "제2의 건국을 향한 첫 걸음을 시작한다"고 말했다. 수많은 관공서가 '제2건국' 현판을 달았고, 공기업에선 '제2건국' 홍보 비디오를 시청하도록 했다. 1999년 5월에는 서울경찰청이 '제2건국 활성화 방안'을 내려 보내 제2건국 추진실적에 따라 인사와 포상을 부여한다고 할 정도였다. '총체적 개혁'을 내건 제2건국 운동은 2003년까지 계속됐지만 국민 중 그 내용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아는 사람은 드물었다.

대내적으로 '제2건국'을 내세웠던 김대중 정부는 대북관계에선 '햇볕정책'으로 일관했다. 북한에 선의의 협력을 제공한다면 중국처럼 개혁·개방의 길로 들어설 것이란 기대였다. 1998년 6월 16일 현대그룹 명예회장 정주영이 소 500마리를 트럭에 싣고 판문점을 넘었고, 11월 18일에는 금강산 관광이 시작됐다. 2000년, 한국 정부는 비밀리에 4억5000만 달러를 대북 송금한 뒤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6월 13일, 대통령 김대중이 탄 비행기가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했다. 김대중은 마중 나온 북한 국방위원장 김정일과 악수를 나눴다. 남북 정상이 처음으로 손을 맞잡은 순간이었다. 이때 평양의 군중은 "결사옹위(決死擁衛) 김정일"을 크게 외쳤다. 김대중은 훗날 이렇게 회고했다. "사실 김정일 위원장이 뭘 이야기할지 아무것도 몰랐고, 사전에 공동성명 초안하자고 해도 오면 다 잘 된다고 오기만 하라고 해서 그냥 갔다. 내가 '남쪽 공산화할 생각 말고, 우리도 흡수통일 안 하겠다'고 하니 김 위원장이 마음을 놓게 됐다."
15일, 두 정상은 5개조의 남북공동선언을 발표했다. '남측의 연합제'와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가 공통성이 있으므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하며, 협력과 교류를 강화하겠다는 것이었다. 이후 남북교류는 크게 확대됐다. 이산가족의 상봉이 이뤄졌고 개성공단이 만들어졌다. '퍼주기식 남북교류'라는 비판을 받을 정도였지만, 북한의 개혁·개방은 이뤄지지 않았다. 김정일은 군부가 정치·경제를 통제하는 선군(先軍) 정치를 계속 펼쳤고 2006년 10월에는 핵실험을 강행해 동북아의 안보에 심각한 위협을 초래했다.

 
기고자 : 유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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