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8.06.17 23:41 / 수정 : 2008.06.18 06:14
- 1946년 1월 12일자 조선일보의 국방 경비대 모집 기사.
- 수필가 한흑구는 1946년에 쓴 '닭 울음'에서 이렇게 회고한다. 8월 15일 해방기념식이 열리는 서울운동장에서 젊은 병사들이 태극기를 앞세우고 행진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열렬한 박수를 퍼부었고, 군중 속에 있던 70대 노인은 그를 돌아보며 "나는 오늘 처음으로 우리 한국 병정들을 보오. 참 씩씩도 하오!"라며 눈물을 흘렸다.
그 '병정들'이란 '남조선 국방경비대'였다. 1946년 1월 12일자 조선일보는 '나오라� 치안의 전위(前衛)로'라는 제목으로 14일부터 국방경비대원을 모집한다는 기사를 냈다. 모집을 시작한 다음 날인 15일, 불과 600명으로 이뤄진 국방경비대 1개 대대가 태릉에서 설립됐다. 미 군정청이 치안을 목적으로 창설한 이 조직이야말로 오늘날 국군의 모체(母體)였다.
6월 15일에는 조선해안경비대가 발족했다. 정부 수립 직후인 1948년 9월 1일 조선경비대(옛 국방경비대)와 해안경비대는 국군으로 개편됐고, 9월 5일 각각 육군과 해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건군(建軍)이 이뤄진 것이다. 1949년 10월 1일에는 육군 산하였던 항공부대가 공군으로 독립했다.
- 1946년 1월 창설, 국군의 모체가 된 남조선 국방경비대의 행진 모습. 조선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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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이 풍부한 일본군·만주군 출신이 창군 과정에서 많이 참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범석(국방장관), 김홍일(육군참모학교장), 최용덕·김신(공군참모총장), 김국주(1군 부사령관) 등 광복군 출신 인사들이 국군 내에 존재했다는 사실 역시 기억될 필요가 있다. 초대 해군참모총장이었던 손원일도 독립운동가 출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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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기 4279년(서기 1946년) 국방경비대로 발족한 국군이 대군(大軍)으로 성장했다는 내용을 담은 1957년의 홍보 영상물 '약진 10년'의 일부분. /유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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