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는 말을 엮어
늘어놓는 천 마디보다
들으면 마음이 가라앉는 한 마디가
훨씬 뛰어난 말이다
- 『법구경』
『법구경』 제100에서 115게송에는 「천(千)의 장」이라는 소제목이 붙어 있다. 천과 백이라는 많음을 비유로 들어서 양적인 많음보다는 질적인 가치를 말씀하신 가르침이다.
부처님께서 가르침을 펴신 2500여 년 전의 인도사회는 절대적인 힘의 소유자로서 신을 섬기는 풍토가 만연했던 신(神) 중심의 사회였다. 인간은 신에 종속된 존재에 불과하였고 신을 중심으로 하는 계급사회에서 태어나면서부터 천민이 된 사람들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비참한 모습으로 살고 있었다. 그것이 곧 인도에 뿌리 깊은 카스트(Caste)라고 하는 신분제도이다. 신을 대신하여 국가를 통치하는 최고의 지위에 군림했던 브라흐만(Brahman)이 있는가 하면, 인간이 동물보다도 더 미천한 삶을 살아야 했던 수드라(Sudra)라고 하는 최하의 계급이 있었다.
이 카스트제도의 관습은 오늘날에도 인도사회를 어둡게 만들고 있다. 석가모니가 타파하고자 했던 이 인간의 무지가 문명사회인 오늘날에도 엄연히 존속한다는 사실이 인간의 어리석음을 대변해 주고 있다. 그 많은 훌륭한 신들도 인간의 이 어리석음을 구제하지 못했던 것이다. 대단히 불합리한 일임에 틀림이 없으나 오늘 날에도 이 모순은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 또한 인간 어리석음의 단면이다.
신구의 삼업 중 입단속이 최우선
그래서 부처님은 당시 신이라고 하는 외부의 존재에 자신을 맡겨서 현혹되지 말라고 철저하게 타이르셨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신의 존재에 너무나 많이 세뇌되어 있다. 신에 종속되지 않는 불교는 철저하게 자신을 책임지는 가르침을 교의(敎義)로 삼았다. 어떠한 유일자나 신을 섬기는 절대적 관념, 내지는 전통적 관습에 조차 얽매이지 말고 자신을 직시하라는 가르침인 것이다. 자신이야말로 모든 것을 정화(淨化)할 수 있는 무한의 힘과 가능성을 지닌 존재라고 평가했던 것이다. 이 책임 있는 가르침이 바로 자신의 몸과 입과 마음을 단속해 신구의 3업(三業)을 맑히라는 경책이다. 그리고 그 3업의 단속 중에 입, 곧 말에 관한 단속이 특히 강조되어 있다.
인간은 말로서 의사를 소통하고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 중요한 말이 악하고 거짓되고 일관되지 못하고 아첨하는 말로서 거의 전부를 채우고 있는 것이 인간사회이기도 하다. 크게는 요즈음 흔히 듣는 ‘불신지옥(不信地獄)’, 즉 예수를 믿지 않으면 지옥에 빠진다는 신에 관련된 극단적인 말에서부터, 작게는 좋은 친구와 스스럼없이 나누는 일상적인 이야기에 있어서 조차 우리는 위의 네 가지 왜곡된 언어의 잘못을 저지르면서 살고 있다. 언어가 바르지 못하면 사회 공기가 혼탁해 진다. 공기가 혼탁해 지면 어지럼증이 오는 것과 같이 이념과 사회 현상이 혼탁해져서 현기증을 느끼게 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서로 주고받는 말은 많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신뢰하고 어진마음을 낼 수 있는 참다운 말이 없다면 이 시대의 모두는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어질고 바른 삶의 시작을 3업의 청정으로 삼으셨던 것이다. 그리고 특히 자신에게서 끝나지 않고 모두를 오염시키기 쉬운 말의 단속을 강조하셨던 것이다.
따라서 위의 게송은 쓸모없는 천 마디의 말보다 참다운 실천에로 인도하는 진실한 말 한마디가 그대로 모든 생명에게 활력소가 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초기경전인 『수타니파아타』「천한 사람」장에 보면 바라문 바라드바자가 거리에서 걸식하시는 부처님을 향하여 ‘천한 사람’이라는 폭언을 던지면서 부처님을 모욕한 일이 있다.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참으로 고요한 모습으로 바라드바자 바라문에게 ‘천하다’는 진실한 의미를 알고 있느냐고 반문하셨다. 당황해 하는 바라드바자 바라문에게 ‘천함’에 대한 가르침이 바로「천한 사람」장이다.
사람의 귀천도 말로 결정
사람은 가문이나 재산, 나아가서는 사회적 지위 등의 어떠한 외적인 요인에 의해서는 결코 천한 사람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도사회를 지배했던 천형(天刑) 같은 최하급의 수드라 역시 태생으로 천한 사람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면 참으로 천한 사람은 어떠한 사람일까? “화를 잘 내고 원한을 쉽게 품으며 성질이 못돼서 남의 미덕을 덮어 버리고, 그릇된 생각으로 음모를 꾸미는 사람이야말로 천한사람이다.
이 세상에 있는 생물을 해치고 동정심이 없는 사람이 천한 사람이다. 시골과 도시를 파괴하고 마을에서나 숲에서 남의 것을 훔치려는 생각뿐인 사람이 천한 사람이다. 물건을 탐하여 사람을 상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거짓으로 증언하는 사람, 풍부한 재산을 갖고 있으면서도 늙고 병든 부모를 봉양하지 않는 사람, 덕도 없으면서 남에게 존경을 받으려고 하는 사람 등이 참으로 천한 사람이다.”라는 가르침이 이어지고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천한사람의 낙인이 찍혔던 인도사회에 각자의 행위에 의해서 천한사람이 된다고 하는 천금같은 말씀이 전해져 오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부처님의 이 ‘천한 사람’에 대한 가르침은 조용히 가슴에 손을 얹고 음미해 보아야 하는 진실한 가르침의 말씀으로 간직해야 한다.
본각 스님 (중앙승가대 교수)
그림=이호신 화백, 수화자문=원심회 김장경 회장
954호 [2008-0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