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禪이야기

안거는 깨달음 향한 아름다운 구속

淸潭 2008. 5. 28. 11:49

안거는 깨달음 향한 아름다운 구속 [중앙일보]

대구 동화사 하안거 결제 현장을 찾아서
“어떤 것이 ‘참 나’ 던고”
수행승, 안거에서 물어

 
 
18일 대구 팔공산 동화사(桐華寺)를 찾았다. 이튿날이 하안거 결제(結制·안거를 시작함)일이었다. 주지 허운(虛韻) 스님은 “안거는 깨달음을 증득하기 위한 최소한의 아름다운 자기구속”이라며 “자기 구속을 통하지 않고선 더 큰 자유, 더 큰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부처님 당시에도 안거가 있었다. 수행자들은 인도의 우기를 피해 석 달간 참선에 들었다. 그 전통이 2500년 지나, 만리길 건너 한국땅의 사찰에 지금도 숨 쉬고 있다.

숙소인 비로암으로 가다가 한 비구니 스님과 마주쳤다. 그는 스쳐 지나며 한 마디 ‘툭!’ 던졌다. “인생 60, 금방이데요. 나중에 후회 말고 지금 닦으세요.” 비로암 마당에 들어섰다. 삼층 석탑이 서 있었다. 그 주위를 아주머니 한 분이 돌고 있었다. 합장한 채 한 걸음씩 옮기고 있었다. 가서 봤더니 신라 때 탑이었다. 1000년 세월,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 주위를 돌았을까. 그들은 무엇을 빌고, 구하고, 또 버리고, 던졌을까.

땅거미가 내렸다. 설법전(說法殿)으로 갔다. 거기서 진제 스님(眞際·74·동화사와 부산 해운정사 조실·사진)을 만났다. 그는 1980년대 송담 스님(인천 용화선원장)과 함께 ‘남(南)진제, 북(北)송담’으로 불리었다. 진제 스님은 경허-혜월-운봉-향곡 스님으로 내려오는 법맥을 이었다고 한다. 그에게 물었다.

-수행승은 안거에서 뭘 묻습니까.

“어떤 것이 ‘참 나’ 던고.”

-그 ‘참 나’는 어찌 찾습니까.

 
  19일 대구 팔공산 동화사의 금당선원에서 수좌들이 하안거에 들어갔다. 선방에는 정적만 흘렀다. 문틈으로 들어오는 바람만이 이들을 찾을 뿐이었다. 석 달의 안거, 그들은 무엇을 묶고, 무엇을 푸는 걸까. 안거 때 선방 공개는 매우 드문 일이다. [사진=김성룡 기자]
 
“흐르는 물이 자나깨나 흐르듯이, 화두도 자나깨나 흘러야 한다. 그러면 모든 사물을 보고, 모든 소리를 들어도 감각이 없어진다. 그러다 홀연히 사물을 보는 찰나에 지혜가 드러난다. 그때 화두가 박살나고 사자후가 터져 나온다. 그러니 사물과 소리에 끌려선 안 된다. 그럼 화두를 깰 수가 없다. ‘참 나’를 찾을 수가 없다.”

-사람들은 ‘남진제, 북송담’이라 합니다.

“그건 형상과 말에 떨어진 사람들이 하는 소리다. 내 살림살이는 아무도 모른다. 성철 스님이나 향곡 스님이라면 알까. 과연 누가 알겠는가.”

진제 스님은 21살 때 출가했다. 석우 스님에게서 ‘시심마(이뭣고)’ 화두를 받고 수행에 들어갔다. 그러다 깨치는 바가 있었다. 그는 24살 때 바랑을 메고 전국의 선방으로 행각을 떠났다. 성철 스님을 찾아갔다가 “내는 몰라, 내는 몰라”란 말만 듣고 돌아섰다고 했다. 수소문 끝에 찾아간 향곡 스님은 그를 제접했다. “일러도 30방, 이르지 못해도 30방이다. 말해 봐라!” 그 물음 앞에서 진제 스님은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그는 자신에게 물었다. “내가 참으로 진리의 눈이 열렸나.” 물음 끝에 스스로 ‘백기’를 들었다.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33살 때 향곡 스님에게서 전법게를 받았다고 한다. 젊은 나이에 깨침에 대한 인가를 받은 셈이다. 그러나 아직도 법을 이을만한 후계자를 만나지 못했다고 했다.

산사에 어둠이 내렸다. 비도 내렸다. 처마 끝에서 빗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내일부터 석 달, 수좌들은 안거에 든다. 산문 출입을 금한 채 자신을 가둔다. 그들은 무엇을 묶고, 무엇을 푸는 걸까. 그들에게 석 달의 안거는 ‘구속’일까, 아니면 ‘자유’일까. 깊은 밤, 문밖에선 천둥이 쳤다.

이튿날이었다. 19일 오전 11시 동화사 통일대전 법당에서 하안거 입제 법회가 열렸다. 500여 명의 사부대중이 법당에 모였다. 진제 스님이 법상에 올랐다. 그는 말이 없었다. 대신 주장자를 ‘번쩍’ 들었다. 법당에는 자욱한 침묵만 흘렀다. 앞에 앉은 수좌들의 눈빛에서 화두의 그림자라도 밟으려는 ‘간절함’이 읽혔다.

‘꽝!’

진제 스님이 주장자로 법상을 내리쳤다. 뒤에 앉은 재가불자들이 ‘움찔’했다. 누구의 소리인가. 그 소리는 어디서 났나. 나의 안인가, 나의 밖인가. 그 온전한 소리의 순간에 ‘나’는 있는가. 있다면 어디에, 어떻게 있는가.

침묵 끝에 진제 스님은 입을 뗐다. 그리고 선문답 일화를 하나 던졌다. 중국의 취암 선사가 안거 해제일에 법상에 올라 말했다. “노승이 석 달 동안 모든 대중을 위해서 가지가지의 법을 설했는데, 모든 대중은 노승의 눈썹을 보았는가?” 그러자 운문 선사가 답을 했다. “빗장 관자(字), 관(關)!” 이 말을 들은 취암 선사는 “천하 선지식이 명답을 했다”고 인정했다.

진제 스님은 법당에 모인 이들에게 물었다. “이 도리를 알겠는가.” 법당에는 다시 침묵이 흘렀다. 어떤 이는 고개를 숙였고, 어떤 이는 고개를 쳐들었다. 그러나 다들 말이 없었다. 그게 자신의 앞에 놓인 ‘강(江)’일 터다. 석 달 안거에서 그 강을 건너야 한다. ‘집착’을 벗고, ‘마음’을 벗고, ‘형상’을 벗고, ‘나’를 벗을 때 노승의 눈썹도 벗겨질 터. 그 빗장을 풀 때 ‘눈썹 너머’를 보지 않을까.

법회가 끝났다. 동화사 금강선원 앞으로 갔다. 댓돌에는 수좌들이 벗어놓은 고무신이 줄지어 있었다. ‘석 달의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선방 안을 들여다 봤다. 수좌들은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다시 보니 거긴 선방이 아니었다. 백척의 낭떠러지였다. 거기서 수좌들이 까마득한 밑을 보고 있었다.

글=백성호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사진] 하안거 들어가는 스님들 [중앙일보]

 



19일 전국 100여 개의 선원에서 2200여 명의 스님이 여름안거의 시작을 알리는 결제법회(結制法會)와 함께 하안거(夏安居)에 들어갔다. 대구 팔공산 동화사에서 법회를 마친 스님들이 선방으로 향하고 있다. 하안거에 들어간 스님들은 음력 4월 보름부터 7월 보름까지 약 3개월간 한곳에 머물며 좌선과 수행에 전념한다. ‘안거’는 인도에서 비가 내리는 몬순기에 바깥 수행이 어렵고, 초목과 벌레가 다치는 것을 피해 외출을 삼가고 수행한 것에서 유래했다. 여름과 겨울 두 번 행해진다.

대구=김성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