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햇살이 고마워 절을 하는 곳
민가도 없는 숲 속 황토집에서 시인은 6번째 봄을 기다리고 있다. … 낮에는 그 밝고 화사한 햇살 속에 앉아 냉이와 쑥을 캤습니다. 점심에 국을 끓여 먹을 만큼만 캤습니다. 손에 묻은 흙을 털 때마다 짙은 냉이 향이 툭툭 발등에 떨어집니다. 냉이를 캐다가 고개를 드니 산수유나무가 저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나도 노랗게 꽃을 피워놓고 서 있는 산수유나무를 웃으며 바라보았습니다. 잠시 그렇게 서로 마주 바라보고 있는 것이 좋았습니다. 산수유나무에게 지금의 나에 대해 설명하지 않아도 될 듯 싶습니다.」
‘옥수수 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가슴 먹먹해지던 시 ‘접시꽃 당신’이 세상에 나온 지 20년 넘는 세월이 흘렀다. 100만 부 이상 판매라는 진기록을 세우며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으니, 이후 시인의 생활은 분주해졌다. 본업인 선생님을 하면서 전교조나 민예총의 문화 운동을 했고, 해직과 투옥의 삶을 겪었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면 찾아가 강연을 했고 방송 일, 글 쓰는 일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에 매순간 최선을 다했으나 직책과 직책이 주는 업무와 그로 인한 피로의 무게에 눌려 이름도 처음 듣는 희귀병을 앓게 되었다. ‘자율신경실조증’이라는, 신경 작동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병이었다. 아픈 몸 추스르려 요양차 들어왔던 곳, 주변에 민가도 없는 첩첩산중엔 도종환 시인이 사는 황토집과 주변을 둘러싼 나무들뿐이다.
몇 해를 기약하고 들어왔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러저러 지내다 보니 어느덧 다섯 해를 보냈다. 산사람으로 도가 텄을 법도 하다. 숲은 건강을 되찾게 해주었다. 더불어 새로운 삶의 방향을 알려주었으니, 전에는 알지 못했던 ‘청안(淸安)한 삶’이다. 숲이 가르쳐준 청안한 삶을 들려주고 싶어서,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라는, 서정성 짙은 제목의 책을 4년 만에 세상에 냈다.
「봄 햇살이 참 좋습니다. 진달래꽃이 연분홍 꽃잎을 스스로 열게 하는 투명한 햇살입니다. 백목련 흰 꽃봉오리의 눈을 뜨게 하는 맑은 햇살입니다. 제비꽃이 수줍게 몸을 숨기고 있다가 소리 없이 그쪽으로 고개를 들게 하는 밝은 햇살입니다.
시인의 생활이 그려진다. 너무도 혹독한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으며 진달래꽃이 피는 것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는, 봄 햇살이 고마워 절을 했다는 글에서 그 절절함이 생생히 읽힌다. 아침엔 묵상을 하고 주변의 나물들은 적당히만 뜯어 먹으며 나무와 고라니와 산새까지 애정으로 대하는 시인의 태도에 마음이 평안해진다. 시인의 표현대로 청안해진다. 책 한 권을 덮을 때까지, 그는 사람들에게 ‘숲’에 올 것을 청한다. 화장기 없는 순진한 아낙 같은 그의 수필이, 숲에 오라고 내내 읽는 이를 꼬드긴다.
집 앞마당엔 고운 잔디가 깔려 있다. 마당 옆으로 작은 개울이 흘러 사시사철 물소리를 들을 수 있다.기획 안지선 | 포토그래퍼 문덕관 | 여성중앙
누구라도 반할 황토집 이야기
황토집은 소박한 듯 은근히 멋스럽다. 오솔길이 끝나는 지점에 그림처럼 내려앉은 집은 동화책 속에 나오는, 숲 속을 헤매다 우연히 만나게 되는 경이로운 신세계 같은 느낌이다. 위에서 내려다본 지붕의 모양이 거북이를 닮았기에 ‘구구산방’이라는 귀여운 이름을 가진 집. 뒤뜰엔 나무 장작이 쌓여 있고 시인은 직접 장작을 패고 가마솥에 불을 땐다.
이 집은 본래 시인의 동료 교사가 동생의 암투병을 위해 요양할 곳으로 지었던 곳이다. 투병 중이던 그가 빌려서 지내다가 아예 구입하게 된 것. 벽부터 바닥, 지붕까지 온전히 황토로만 지은 집으로, 황토의 효능 덕분인지 그는 이 집에서 특별한 경험도 했다.
“친구가 장미꽃 한 다발을 사온 적이 있어요. 무심히 항아리에 꽂아두고 별 신경도 못써줬는데 그 꽃이 3개월을 가더라구요. 죽은 것 같은 꽃에서 푸른 새잎이 돋고요. 국화를 꽂아두면 뿌리가 나서 나중에 마당에 심어도 될 정도예요. 그런 생명력이면, 그런 기운이면 사람에게도 좋을 거다 생각했죠. 실제로 몸도 많이 좋아졌고요.”
처음 병을 얻은 후 양방 치료를 받으면서 마음수련원, 기수련원 등 좋다는 곳은 다 찾아다녔지만 별 차도가 없었는데, 산속 황토집에서 사는 것만으로 몸이 치유된 것이다.
“감기 한번 걸리면 주사 맞고 약 먹어도 일년 동안 회복이 안 됐어요. 병 치료를 하면서 면역력이 떨어져서 약 기운으로 빌빌거리며 살았는데 여기 들어와 이 집에 살고부터는 치료도 따로 안 했답니다.”
마음을 다스리지 않고 몸만 다스리면 낫지 않는다는 귀한 답을 시인은 숲 속에서 얻었다.
산에는 봄이 더디 온다. 사진에 담긴 시인의 집은 아직 눈 남은 겨울이지만 그의 수필을 읽으니 이곳의 봄 풍경이 그려진다.
꽃비 내리는 봄날, 이 숲에 다시 찾아올 수 있을까.
「벼랑에는 아직 진달래 화사하게 피었는데 산발치 과수원에는 복사꽃 피고 밭둑에는 조팝나무꽃 흐드러지게 피어 환합니다. 뜨락에는 금단추 같은 민들레가 진노랑빛 불을 밝히고 마당에는 작은 꽃다지와 봄맞이꽃이 피어 발길을 함부로 내딛지 못하게 합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하루 두 끼를 직접 챙겨 먹는다. 심심한 삶이지만 그 심심함을 즐기는 것이다.
1 가마솥에 물도 끓이고 군불도 때는 아궁이.
2 현관 입구엔 ‘구구산방’이라는 이름의 현판이 걸려 있다. 직장 생활을 하느라 이곳에서 같이 살지 못하고 청주에 살고 있는 아내가 종종 들러 밭일을 한다. 부부의 밭일용 장화가 나란히 놓여 있다. 기획 안지선 | 포토그래퍼 문덕관 | 여성중앙
내가 이 집, 이 숲을 뜨지 못하는 이유
처음엔 잠시 건강을 회복할 때까지 살 생각이었다. 그런데 살다 보니 이 생활이 좋아졌다. “우선 글 쓰는 일 하기 제일 좋죠. 한적하고 온전히 나 혼자만의 시간이 있고. 작가에게 그런 시간은 꼭 필요하니까요. 그리고 여기 있으면 복잡했던 생각들이 없어져요. 마음이 맑고 편안해져요.”
사람 사는 곳이 갖추어야 할 기본은 춥고 덥지 말아야 할 것, 물과 불을 마음대로 쓸 수 있어야 하고 안전해야 할 것. 그런 점에서 숲은 불편할 수 있다. 그러나 책 읽기 좋고 글도 잘 써지니 다른 것이 상쇄된다고 한다. 실은 다섯 번의 겨울을 보내는 동안 모든 불편에 씩씩하게 대처할 수 있는 요령도 생긴 것이다. 초창기 겨울엔 수도관이 파열되어 개울의 얼음 깨고 물을 퍼다가 가스 불에 녹여서 쓰는 일도 많았지만 이제는 숲 속의 겨울에 익숙해져서 올겨울은 가장 안락하게 보냈다.
“사막의 삶과 숲의 삶은 달라요. 사막에선 목마르고 지쳐 있어요. 한 손에는 경전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무기를 들고 일사불란하게 ‘나를 따르라’고 하는 게 사막의 종교예요. 경쟁자들로부터 나를 지켜야 하는 불안한 삶. 그래도 다 채워지지 않아서 늘 근심하는 현대인의 삶은 바로 사막이죠.”
숲은 공생, 공존의 삶이다. 나를 해할 원수도 없고 내 안의 신성과, 본성과 만나게 되는 시간. 짐승도 나무도 하나하나가 소중한 삶이니, 사람은 얼마나 더 소중하겠나.
“현대인들은 여유로운 삶을 원해요. 여의치 않아서 못 하는 거죠. 의료 문제, 직장과 아이들 교육 문제도 있고요.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내 경험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이렇게도 살아보세요, 얘기하고 싶었단다. 일상의 책임을 다하느라 자기 자신에게는 무책임한 것이 아닌지 돌아보라고, 억지로라도 여유를 만들어보라고 전하고 싶었단다. 그것이 작가로서의 소명이라 여긴 것이다.
천장이 유난히 높아 실내 공기는 차갑다. 벽난로에 부지런히 땔감을 넣어 본다. 이 집을 지은 미술교사는 집을 짓던 때의 황토 자재로 벽면에 그림을 그려넣었다.
기획 안지선 | 포토그래퍼 문덕관 | 여성중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