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실존주의 철학자 칼 야스퍼스(Karl Jaspers)는 『붓다 공자 그리고 예수』라는 저서에서 “불교야말로 한번도 폭력, 이교도의 탄압, 종교재판, 종교전쟁을 일으키지 않은 유일한 종교”라고 했습니다.
얼마 전 전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이 자신의 모교인 조지타운대에서 이번 아프카니스탄의 탈레반에 의한 테러에 대하여 “우리는 지금 노예제와 원주민 학살, 십자군 전쟁의 대가를 치르고 있다.”며 미국과 기독교가 그간 인류에 대해 저지른 원죄를 지적하며 지금도 중동지역에서는 십자군 원정 때 기독교인들이 예루살렘 신전 언덕에 살고 있던 모든 이슬람교도를 살해한 것을 잊지 못하고 있다고 연설하였습니다.
탈레반은 이슬람 정권을 표방하고 지난 봄 서기 5세기의 조각상으로 동서문화의 교류에 있어 중요한 위치에 조성된 높이 53m 세계 최대의 불상인 ‘바미얀 석불’을 “신은 하나이며 조각상을 숭배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하면서 불교인들뿐만 아니라 세계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성스러운 신앙의 귀의처를 파괴하였습니다.
세계는 지금 이렇게 자기 주장에만 익숙한 종교인들이 앞장서서 싸우고 있으며 종교인들이 이렇다 보니 다른 목적으로 전쟁을 일으키면서도 종교를 이용해 성전(聖戰)이라는 명분을 내세우기에 급급해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날의 이런 현실 앞에서 부처님께서 강조하신 “종교는 뗏목과 같다”는 가르침에 대하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교법(敎法)을 배워서 그 뜻을 안 후에는 결코 거기에 집착하지 말아라. 너희들은 이 뗏목처럼 내가 말한 교법까지도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생사의 강을 건너고 고통의 강을 건너고 어리석음의 강을 건너는 사람이 뗏목을 이용해 건넜으면 그 때부터는 뗏목을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종교의 본질을 정확하게 꿰뚫는 말씀이며 멋진 말씀이며 넉넉한 말씀입니까?
제가 단문(短文)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불교 외의 종교에서 이런 뜻의 가르침을 접해본 적이 없습니다. 기존의 종교들은 자신의 종교에 귀의한 사람들에게 믿음만을 강요하는 경향으로 흐르다 보니 자연히 배타적인 생각, 언어, 행동으로 집단 분쟁을 유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종교를 진리의 수단으로 보는 부처님의 견해에 의하면, 종교 자체는 배요, 뗏목이고, 불경이나 성서, 코란 등은 뱃길을 밝히는 항해도(航海圖)라 할 수 있는 데에 반해서 타종교는 성전(聖典)이라는 이름으로 절대화를 강요하고 독단적으로 성전만이 진리 그 자체라고 주장하는 경향이 아주 짙게 깔려 있습니다.
인류전쟁사의 대부분을 차지한 종교전쟁의 시발점도 종교간의 갈등에서 특히 자신의 종교에서 따르는 신과 교리에 의해서 일어난 것입니다. 같은 의미의 표현도 장소, 시간, 대상에 따라서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에조차도 매달리는 것이 오늘날 편협한 종교인들의 사고이며 거기에 전투적인 성향을 지닌 신자들은 타종교를 파괴하는 데에 자신의 종교를 지키는 수행보다 더 적극적인 행동을 일삼아 인류의 안녕을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세기경(世紀經)에 보면 모든 하늘과 아수륜이 싸우는 내용이 있는데 아수륜은 악해서 항상 싸움을 즐기며 적극적으로 싸우는데 결과는 언제나 선신(善神)인 제석천왕이 이긴다고 합니다. 그렇게 싸운 결과 아수륜은 제석천왕의 결박에 묶이는데 그 밧줄은 다름 아닌 아수륜의 탐착심이라고 하며 아수륜이 탐착심을 버리지 못하는 이상 결박에서 풀려나지 못하며 제석천이 아수륜을 이기는 힘은 인욕(忍辱)에서 나오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즉 모든 악 가운데 가장 악한 것은 끝없이 화를 내고 싸우는 것인데 이 때 싸움을 이기는 방법은 화를 내지 않고 싸우는 것이 최상의 법이라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미국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문명충돌론에 관심을 갖고 현대 신학계(神學界)의 거장으로 알려진 독일 뮌헨대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 교수의 내한 강연내용을 지면을 통해 읽었습니다. 그는 ‘기독교와 타종교의 대화’라는 주제에서 “종교간의 대화는 우리 시대의 분명한 요청”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하였습니다.
그의 강연 내용 중 특히 공감이 가는 것은 “세계 종교의 진리 주장은 모든 사람에게 타당한 신에 관한 진리를 주장하고 각자에게 복종을 요구함으로써 불가피하게 갈등을 야기할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보편적 진리 주장은 한 종교의 정체성을 상실하지 않고서는 포기될 수 없기에 세계는 계속 종교적 갈등에 시달리고 있다”고 하며 “종종 종교적 갈등 뒤에는 사회적 정치적 이유들이 있으며 종교적 신념의 차이는 단지 부차적 동기로서 갈등에 기인한다. 때로는 종교가 사람들 사이의 세속적인 차이를 은폐하고 조장하도록 오용하기도 한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현재의 중동전쟁을 종교 차이에만 너무 비중을 두는 많은 학자 언론인들이 미국을 바라볼 때 종교 이면에 감추어진 것들에 대해서 좀 더 심도있게 설명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계가 온통 파괴로 무너져가기 전에 종교인들도 정신을 차려서 진지한 종교간의 대화는 물론 궁극적으로는 진리와 궁극적 실재에 대한 일치에 관심을 가지고 상호이해를 증진하고 무엇보다 인간생명의 존중에 관해서 합의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폭력을 폭력으로 대항해서는 서로간에 파괴밖에 남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머무르실 때의 일입니다. 그 당시 사리불(舍利弗) 스님께서는 지혜가 높고 인욕행을 잘 닦아서 어떠한 경우에도 성내는 일이 없다고 소문이 나 있었습니다.
하루는 어떤 사람이 그 소문이 사실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사리불 스님이 성안에 탁발을 하러 오시는 것을 기다렸다가 뒤를 따라가 주먹으로 등을 때렸습니다. 그러나 사리불 스님은 뒤도 돌아보시지 않고 그냥 탁발을 계속할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때린 사람이 감동을 받아 성인을 때린 잘못을 참회하며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비니 사리불 스님께서는 묵묵히 들으시고 “아, 그런 일이 있었소? 내 당신을 용서하리라.” 하고는 그 자리에서 용서를 하셨고, 때린 사람은 감사의 뜻으로 자신의 집으로 사리불 스님을 초청해서 공양을 올리니 스님께서는 기쁜 마음으로 공양을 받으셨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스님을 때린 사람을 혼내주기 위해서 사람들이 몰려들자 이를 말리며 “이 사람은 당신들을 때린 것이 아니라 나를 때렸으니 내가 용서를 했으면 다 된 것이니 당신들은 이제 당신들 일이나 하도록 하시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후 이 일을 전해들으신 부처님께서는 사리불 스님을 칭찬하시며 “누구든지 수행자를 때려서는 안 된다. 또 수행자를 때린 자에게 성을 내서도 안 된다. 수행자를 때린 것은 부끄러운 일이요, 자기를 때린 자에게 성내는 것은 더욱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가르침을 내리셨습니다. 이 얼마나 폭력을 경계하신 말씀이시며 인욕을 강조하신 말씀입니까?
강의를 마치며 여러분의 신앙에 대하여 함께 풀어야 할 과제를 물어보겠습니다. 여러분들 중에서 불교인이 있다면 부처님을 믿으시나요?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으시나요? 천주교인 기독교인이 있다면 천주님과 예수님을 믿으시나요? 천주님과 예수님의 가르침을 믿으시나요? 다시 말씀드려 종교인이라면 신을 믿으시나요? 진리를 믿으시나요?
저는 이 자리에서 분명히 말씀드리건대 진정한 종교인은 진리를 믿고 따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신만 따르고 진리를 따르지 않으니 종교인들이 세상을 분쟁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서에도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고 하였습니다.
이제는 종교인들이 앞장서고 사회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 모두 반성하고 낡은 이분법을 버리고 오직 믿음과 대화를 통해서 미래의 발전과 세계의 안녕을 모색할 때입니다.
국가와 민족을 수호하고 자유와 인권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심혈을 기울이시는 경찰 관계자 여러분들께 항상 건강과 행복이 충만하시길 부처님전에 기원드리겠습니다. 성불합시다.
- 경찰청 초청법회
'불교이야기 > 인곡당(법장스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언론 자료방 (0) | 2008.03.03 |
---|---|
생명나눔 편지 (0) | 2008.03.03 |
[야단법석] 끝없는 행원 (0) | 2008.03.02 |
[야단법석] 반야동산에서 (0) | 2008.03.02 |
[야단법석] 여성의 미덕 (0) | 2008.03.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