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집 제4주제 논평:法脈, 나무냐 江이냐
윤원철(서울대)
禪宗의 法脈 교리는 여러 가지 미묘한 문제를 안고 있다. 禪의 모든 것이 法脈을 중심으로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선에서 법맥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하기는 혈통, 족보를 강조하는 것이 禪만의 특유한 현상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禪이 그런 것을 중시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좀 역설적이다. 禪은 궁극적으로 正統이라든가 傳統, 傳承을 부인하기 때문이다. 신라 말기의 無染(799-888) 國師는 ꡔ無舌土論ꡕ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禪의 傳承은.... 전하는 것 없음을 전승으로 삼는다. 그래서 전하면서도 전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禪傳者.... 以無傳爲傳 故傳而不傳也 (天頙, ꡔ禪門寶藏錄ꡕ 卷上, ꡔ韓國佛敎全書ꡕ 6, 473하 5~6줄).
물론, 袈裟가 전승되고 그와 함께 法이 전승되었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러한 전승도 실제로는 전승이 아니라고 한다. 전승의 典據, 전승되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以心傳心”일 뿐이라고, 또는 그뿐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袈裟라는 것은 다만 徵標일 뿐이고, 전하는 마음이라는 것도 기실은 無心일 뿐이다. 부처의 典範을 따르려고 하는 것은 소용없는 짓이라는 경고는 禪師들이 누차 숱하게 해 온 바이다. 그에 흔히 쓰이는 잘 알려진 비유로 이런 것이 있다. 어떤 사람이 강 위에 배를 타고 가다가 들고 있던 칼을 떨어 뜨려 강물에 빠뜨렸다고 하자. 칼을 빠뜨린 지점을 뱃전에다가 표시해 놓고는, 나중에 그 뱃전의 표시 지점에서 강물을 들여다보며 칼을 찾겠다고 한다. 옛 부처의 전범을 따라 한다면 바로 이와 똑같이 어리석은 짓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傳法의 否認을 말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는 것을 누구나 잘 알고 있다. 여느 禪師들처럼 臨濟 義玄도 그 語錄에서 자기는 전할 法이 없다고 선언하였다.“山僧無一法與人”(백련선서간행회 ꡔ臨濟錄․法眼錄ꡕ: 75쪽).
그러나 그 바로 몇 쪽 뒤에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의 佛法은 정통으로 이어져 온 것이다. 麻谷, 丹霞, 道一, 廬山 그리고 石鞏 스님으로부터 한 가닥으로 세상에 두루 행하여 퍼졌다.”“山僧佛法的的相承 從麻谷和尙 丹霞和尙 道一和尙 廬山與石鞏和尙 一路行徧天下”(백련선서간행회, 같은 책: 84쪽).
일본의 도겐(道元, 1200~1253) 같은 禪師는 佛法의 傳承을 영원하고 거의 신성한 것으로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보수적인 선사들은 자기들의 전통이 일정한 궤도에 따라 이어지는 폐쇄적인 것이 아니라 개방된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선종의 이런 이중적인 태도는 법맥 문제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면에 걸쳐서 드러난다. 예를 들어 선종은 전통적인 戒律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내놓으며 매우 자유로운 태도를 표방하는 선언을 누누이 해왔지만, 수행자의 실제 일상생활에서는 淸貧과 禁慾이라는 계율 원칙을 여전히 엄격하게 강조한다. 言語文字를 통렬히 否認하면서도 엄청나게 많은 양의 言語文字를 생산해냈다. 모든 틀을 타파하면서도 現實態에서는 부단하고 강력한 正統의 주장을 기치로 하여 자기 正體의 틀을 단단하게 조성해 왔다.
그것은 어쩌면 원칙의 차원에서 모든 所依를 극단적으로 부정함으로써 실제의 차원에서는 오히려 모든 所依를 마음껏 받아들일 수 있었던 편리한 자유로움인지도 모른다. 어떤 所依를 취하든 간에 “방편일 뿐”이라는 한 마디로 변명이 가능한 것이다. 실제로 禪宗은 경전과 제도를 비롯한 각종 유용한 “所依”를 마음껏 구사하면서도 자가당착이라는 비난을 그 한 마디로 비켜갈 수 있었다.
현대 세속 학문에서 말하는 좁은 의미의 歷史 槪念을 기준으로 볼 때, 그 숱하고 방대한 傳燈史籍의 法脈 記錄은 대부분 擬似歷史이다. 옛 시절로 거슬러 갈수록 그렇고, 심지어는 近現代의 것까지도 많은 부분이 검증되지 못한다. 그러나 법맥은 예나 지금이나 禪宗의 살림살이에서 中樞 役割을 하며 크나큰 영향을 발휘한다. 어쩌면 바로 그 점 때문에 법맥의 주장과 기록이 분명한 反證이 제기되지 않은 경우까지도 일단 그 사실성을 의심부터 해놓고 보는 지경에 이르렀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禪의 정신은 傳統(계통적으로 전해 내려온 것)이라는 틀, 더 나아가 正統(올바른 전통)의 解體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禪宗이 일단 출생한 다음에는 그 자체가 하나의 전통이 되고 나아가 정통을 구축했다는 데에서 그런 이중성이 비롯된다. 禪宗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不立文字 敎外別傳이라는 구호는 文字, 敎라는 기존 정통 전통의 틀을 부수면서 別傳을 세운 셈인데, 바로 여기에서 또 하나의 근본적인 물음이 제기된다. “보존”되고 “전수”되는 “원초적이고 순수한 체험”은 과연 무엇인가? 禪의 始原으로 역할을 하는 그런 체험의 순수성이란 것이 과연 있기는 있는 것인가? 禪에서 내세우는 頓悟의 修證論 자체가 이에 대해 否定으로 답변한다. 부처를 죽이고 祖師도 죽이고 바로 내가 주인 노릇을 하겠다는 것은 곧 “보존,” “전수,” “시원”을 부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 禪宗만큼 자신의 존재 근거, 준거로 강력하게 始原의 保存, 傳受를 내세우는 종교도 드물다.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法脈이라는 개념이 바로 그것이다. 전통의 부인과 전통의 구축, 정반대 되는 이 두 양상을 두고 어느 쪽이 禪宗의 眞狀인지 묻고 그 가운데 한쪽을 선택하여 대답하라고 다그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현명한 물음이 아니다. 그 둘이 겹친 이중성이 선종의 事實態이기 때문이다.
법맥을 포함해서 禪傳統을 두 가지 이미지로 그려볼 수 있다. 하나는 나뭇가지 모양이고 다른 하나는 江의 모양이다. 나뭇가지와 같은 형상으로 본다고 함은 始原이 되는 어떤 전통이 있고 그것이 여러 갈래로 가지를 쳐나갔다고 보는 것을 말한다. 역으로, 江의 형상을 모델로 삼을 수도 있다. 즉, 여러 支流가 모여 한 줄기 강이 된다는 비유이다. 선종의 법맥관에는 이 두 가지 반대되는 구도가 혼재하고 있다. 그 혼재는 모순을 담고 있지만, 모순이 안고 있는 긴장이 역동성으로 발휘될 수도 있다. 어느 쪽을 강조할 것인가를 두고 필요에 따라, 時節에 따라 방편적인 선택을 자유롭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만공스님의 법맥에 관한 여러 가지 설 가운데 어느 것이 옳으냐는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박해당 박사의 연구논문은 언뜻 보기에 온통 그 문제를 가리는 데 매달린 듯하지만, 그것 말고도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또 따로 있지 않나 싶다. 즉, “배타적인 인맥중심의 법맥관”이 이 시절에 합당한가 아니면 “이념적 규정으로서의 법맥관”이 더 합당한가를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하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다만, 법맥을 완전히 새로 그리는 것은 허용되지 않고 이미 주어진 몇 가지 법맥의 그림을 놓고 선택해야 한다는 조건 때문에 이런 서술형식을 취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제 좀 더 나아가 그러한 조건을 내려놓아 버리고, 법맥이라는 것이 과연 도저히 내릴 수 없는 禪의 깃발인지 아니면(또는 “그렇더라도”) 충분한 時節因緣이 갖추어지면 엉덩이 아래 깔고 앉을 수도 있는 것인지를 논의해 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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