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정권 색깔 지우기·체념… 뒤숭숭한 5개 행정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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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측이 차기 정부 출범 전 정부조직법을 개정, 행정 부처 조직을 축소할 것으로 밝혀지면서 관가(官街)가 뒤숭숭하다. 김형오 대통령직 인수위 부위원장이 “공무원을 줄이지 않겠다”고 했지만 불안감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특히 노무현 정부의 핵심 정책을 ‘청와대 코드’에 따라 밀어붙였던 부처 공무원들은 아예 체념하거나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는 생존 논리를 개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명박 측에서 나온 ‘5대 부처’ 관련 발언
- 통일부 → “외교부로 통합해야 한다는 개편안 검토”
- 국정홍보처 → “집권하면 취재봉쇄 풀고 아예 폐지”
- 교육부 → “교육부 권한을 교육감과 대학에 다 이양”
- 재경부 → “금융정책 기능을 빼내 금감원과 통합 검토”
- 건교부 → “이명박 흠집내려고 ‘대운하 보고서’ 변조”
“남북사업 태산인데… 일손 안잡혀”
19일 이명박 후보의 당선이 확정될 때만 해도 “남북관계를 상징하는 통일부가 없어지기야 하겠느냐”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재정 통일부장관은 투표 다음날(20일) 햇볕정책 10년의 성과를 정리하는 기자회견까지 준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1주일도 안 돼 분위기는 급변했다. 통일부 축소·폐지 가능성이 보도되자 “사실이냐”며 초긴장 상태다. 한 국장급 공무원은 “현재 진행 중인 남북회담과 사업이 태산인데 일손이 안 잡힌다”며 기자들을 상대로 인수위 동향을 탐문했다.
반면 10년간 핵심 보직에서 밀려났던 공무원이나 젊은 사무관들은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분위기다.
한 사무관은 “통일부가 외교부나 총리실과 합쳐 발전적 해체를 한다면 꼭 부정적인 것도 아니다”고 했다.
한 팀장급 공무원은 “10년간 일부 인사만 핵심 보직을 돌아가며 맡았다”며 “통일부 내부의 물갈이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 당선자측의 대북정책을 담당하는 핵심 인사는 “다른 부처는 선을 대서 어려움을 이야기하는데 통일부는 회담만 하러 다닌다”며 “보기 안쓰럽다”고 했다.
통일부 고위 당국자는 “우리도 선을 찾아봤지만 통일부에 비판적이던 인사들이 많아서…”라고 했다.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 체념 분위기
노무현 정부의 브리핑룸 통·폐합과 취재 통제를 주도한 국정홍보처는 폐지 1순위로 꼽히자 체념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홍보처의 한 공무원은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했다. 대선 직전까지 기사송고실 ‘대못질’에 앞장선 데다 한나라당과 계속해서 마찰을 빚었기 때문이다. 그는 “나름대로 존속 논리를 준비했지만 먹힐 것 같지가 않다”고 했다.
볼멘 소리도 나온다. 다른 공무원은 “청와대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데 그 책임은 전부 우리가 떠안게 됐다”고 했다. 특히 취재 통제 조치를 주도한 핵심 인사들이 각자 ‘살길’을 찾아 떠나는 것도 달가워하지 않는 분위기다. 김창호 처장은 명지대 교수로 복귀할 예정이고 취재 통제 조치를 작성한 방선규 홍보협력단장은 주미대사관 홍보참사관에 내정된 상태이다. 한 공무원은 “축하 박수를 쳐주고 싶은 생각이 안 든다”고 했다.
한 팀장급 공무원은 “부처는 없어지더라도 홍보업무는 계속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잘리지 않는 게 다행이라는 표정이다.
“정말 쪼개지는 것인가” 수군수군
지난주부터 언론을 통해 교육부 개편안이 소개되자 교육부 공무원들은 “정말 쪼개지느냐”며 촉각을 곤두세웠다. 특히 현 정부의 ‘교육 평등화’정책을 앞장서 추진해온 고위 공무원들은 새 정부에서 살아남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하며 거의 일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수능등급제, 특목고 억제정책 등에 직접 관여했던 공무원들이 ‘표적 1순위’로 꼽히고 있다.
만약 과학기술부, 노동부 일부 부서와 통합해 한 부서를 만들 경우에도 이명박 당선자에게 밉보인 교육공무원들이 불이익을 받지 않겠느냐며 수군거리고 있다. 인수위 사회문화분과 이주호 간사는 대학 지원 업무, 대학입시 업무, 초·중·고교 정책, 초·중·고 교과과정 결정 등을 나눠 다른 부서와 통합하거나 일선 교육청으로 이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초·중·고 정책을 다루는 ‘학교정책실’은 업무를 교육청으로 넘겨줘야 할 판이어서 특히 촉각을 곤두세웠다. 주로 교사 출신의 전문직(장학관, 장학사)들이 근무하는 ‘학교정책실’ 직원들은 “교사 출신인 우리들이 왜 교육부의 잘못에 대한 희생양이 되어야 하느냐”는 반응이다.
이런 가운데 일부 간부들은 인수위에 파견 인원으로 선정되기 위해 뛰고 있다는 소문까지 퍼져 있다.
盧정부 경제정책 색깔 지우기 착수
대선 이후 경제정책에서 노무현 정부의 색깔을 지우는 작업에 착수한 상태다. 이 당선자의 공약인 금산(金産) 분리 완화 등에 대한 검토에 들어갔다. 한 관계자는 “관료는 영혼이 없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하루 아침에 정책을 뒤집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고 털어놓았다.
특히 현 정부 부동산정책의 핵심인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세 강화에 대해서도 완화 방안을 연구 중이다. 재경부 세제실의 과장급 이상 간부들은 크리스마스였던 25일 대부분 출근해 밤늦도록 회의를 갖기도 했다.
그러나 조직 통·폐합 문제를 둘러싸고는 오히려 기대를 나타내는 분위기도 있다.
한 고위 관계자는 “이 당선자가 성장을 내건 만큼 경제정책 주관 부처인 재경부의 위상이 강화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재경부는 그러면서 이번 기회에 명실상부한 조정력을 발휘하기 위해 기획예산처가 갖고 있는 예산권까지 가져와야 한다는 논리를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관계자는 “예산권을 확보할 수 있다면 금융 분야를 완전히 떼내더라도 상관없다”고 말했다.
“비대해진 조직 축소 불가피할 것”
한반도대운하, 신도시 개발 반대, 도심 재건축 활성화 등 이 당선자의 공약에 사사건건 반대 입장을 밝혀온 건교부는 대선이 끝나자 각 실무 부서별로 대운하 등 이 당선자의 공약 관련 대책회의를 갖는 등 180도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 관계자는 “대통령의 핵심 정책을 따르는 것이 공무원의 소명”이라며 “아직 인수위에서 구체적인 지침이 내려오지 않았지만 나름대로 추진 방안에 대해 검토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공무원들은 그러나 조직 축소는 불가피한 것 아니냐며 받아들이고 있다. 건교부는 현 정부 핵심 정책인 행정복합도시·혁신도시·국민임대주택 등을 추진하면서 사무실을 미처 마련하지 못할 정도로 급속도의 조직·인원 팽창 시대를 맞았다. 한 관계자는 “조직이 너무 커진 데다 이 당선자의 공약에 반대, 차기 정부에서 부처가 갈가리 찢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인수위에 건교부 출신인 최재덕 전 차관이 합류하면서 건교부가 오히려 거대 부처로 도약하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도 일부 나오고 있다. 한 관계자는 “조직을 개편해 건교부가 해양부, 환경부 등과 합쳐지면 건교부가 중심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안용현 기자 ahnyh@chosun.com]
[안석배 기자 sbahn@chosun.com]
[이진석 기자 island@chosun.com]
[차학봉 기자 hbch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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