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참여정부가 표방하는 과거사 청산 바람과 맞물려 찬성하는 쪽에서는 이를 박정희 유산의 청산이라는 측면에서 의미를 부여하고 이른바 보수우파에서는 문화유산까지 정치바람을 타야 하느냐고 반박했다.
이 문제는 논란 끝에 고종시대 경복궁 중건 당시 한문 현판글씨로 교체하는 쪽으로 결정됐다. 고종시대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현판 글씨를 구할 수 있느냐는 새로운 난제가 대두됐지만 문화재청은 이를 국립중앙박물관 도움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박물관에는 조선총독부박물관에서 물려받은 식민지시대 각종 유리건판 3만8천장이 소장돼 있었고, 마침 그 중에서 경복궁이 본격 훼손되기 이전 '광화문' 현판글씨사진을 찾아낸 것이다.
이는 유리건판이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작은 사례라 할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그 정리사업 일환으로 경복궁을 비롯한 조선시대 옛 궁궐 모습을 담은 유리건판 500여 점을 골라 27일 공개한 자료 중에는 문제의 광화문 사진 외에도 의미가 작지 않은 자료가 다수 포함돼 있다.
예컨대 현재 보물 809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는 지금의 경복궁 자경전 꽃담에는 여덟 개 꽃 문양이 남아 있으나 식민지시대만 해도 그 숫자가 아홉이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또 햇빛에 의한 그림자 위치나 길이로 시간을 측량하는 앙부일구라는 시계는 다리를 포함한 몸체가 받침돌 위에 노출된 채 현재 전시가 이뤄지고 있으나 유리건판에는 시계 몸체가 받침돌 중앙에 있는 홈에 완전히 잠겨 있는 모습으로 드러난다.
물시계 일종인 자격루는 경복궁 보루각에 있다가 지금은 덕수궁 경내로 옮겨져 있으나 그 모습이 조선시대 당시의 그것을 얼마나 반영하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적지 않았다. 유리건판에 포착된 경복궁 보루각의 자격루는 실상 시계라는 본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 사진 자료를 근거로 원형을 추정하거나 복원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해와 달, 그리고 다섯 개 봉우리를 그린 일월오봉병이란 그림 병풍은 조선국왕의 용상 뒤에 설치했다고 알려져 있다. 한데 유리건판 사진에 담긴 그 실물 사진을 보면 현전하는 작품과는 달리 한결같이 해와 달 부분에 금속판이 붙어있다.
경복궁 서문인 영추문이 붕괴된 직후 모습을 담은 사진도 있다. 현재의 영추문은 1975년 원래 자리에서 남쪽으로 약 40m 아래 지점에 새로 지은 것이다. 그렇다면 영추문은 언제 붕괴 사고가 있었을까?
1926년 4월29일자 매일신문 보도를 보면 그 해 4월27일 오전 10시 무렵에 영추문 일부가 붕괴된 것으로 나온다. 그 원인은 영추문 바로 옆을 종점으로 해서 운행된 전차의 진동 때문이었다고 한다.
유리건판과 비슷한 성격을 지닌 희귀자료로 박물관에는 문화유산 정책과 관련한식민지시대 각종 고문서가 지천으로 깔려있으나 그 정리작업은 아직 원문을 스캔하는 수준에 그쳐있어 그 내용 분석은 거의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이번 유리원판 일부 공개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앞으로 주력해야 분야가 자체 수장고를 '발굴'해 그것이 지닌 무궁한 가치를 캐내고 그 의미를 새롭게 부여하는 데 있음을 새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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