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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最古 무구정광다라니경 제작시기 놓고 논란

淸潭 2007. 10. 28. 10:27
세계 最古 무구정광다라니경 제작시기 놓고 논란

 

신형준 기자 hjshi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입력 : 2007.10.27 15:54 / 수정 : 2007.10.27 16:06

세계 최고의 목판인쇄물로 알려진 무구정광다라니경은 기존 주장처럼 서기 8세기 통일신라 때 제작된 것인가, 아니면 11세기 초반 고려 때 제작된 것인가? 무구정광다라니경은 현재로서는 명확하게 제작 시기를 밝힐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이 그간 문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던 ‘묵서지편’(석가탑에서 나온, 먹으로 글씨를 쓴 110장의 종이 조각)을 외부 전문가들에게 의뢰해 판독한 결과다. 그간 묵서지편은 외부에 전모가 공개되지 않은 상태에서 국립중앙박물관이 외부 전문가인 노명호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와 이승재 서울대 언어학과 교수에게 묵서지편의 판독을 의뢰했는데, 이 조사 결과에서 이 같은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경주 불국사 석가탑에서 나온 무구정광다라니경은 그동안 석가탑이 한 번도 중수(고려 세움)되지 않았으므로 석가탑이 세워졌던 8세기 중엽 이전 것이라는 게 통설이었다. 교과서에도 이렇게 기록돼 있다. 그러나 석가탑이 고려 때인 1024년과 1038년에 중수(고쳐 세움)됐다는 사실이 2005년 알려지면서 무구정광다라니경의 제작 연대에 논쟁의 불이 붙었다.

▲무구정광다라니경의 제작 시기와 관련해서 27일 오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중간 보고회가 열렸다. 무구정광다라니경의 제작 시기에 대해 발표자들은 신라제작설과 고려 제작설 모두에 가능성을 두었다./신형준 기자

이 같은 기록은 무구정광다라니경과 함께 석가탑에서 발견된 묵서지편(먹글씨를 쓴 종이 조각)에 적혀 있었다. 묵서지편에는 석가탑을 1024년과 1038년에 고쳐 세웠으며, 이 때 ‘무구정광다라니경을 석가탑에 넣었다’고 기록하고 있다.(조선일보 2007년 3월 9일자 A 2면)


국립중앙박물관은 27일 오전 박물관 소강당에서 그간 공개하지 않았던 110장에 이르는 묵서지편에 대한 해독 작업을 마치고 이 내용을 공개하는 ‘보고회’를 가졌다. ‘석가탑 발견 유물 조사 중간 보고’였다.


노명호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와 이승재 서울대 언어학과 교수였다. 두 교수는 각각 발표한 발표문에서 “무구정광다라니경의 제작 시기는 통일신라로 볼 수도, 고려로 볼 수도 있다”고 했다.


노명호 교수는 ‘묵서지편 문서들의 구성과 내용에 대한 기초적 검토’에서 “석가탑은 1024년과 1038년 즈음 크게 보아 두 차례 중수됐는데, 1024년 때는 신라 때 안치한 무구정광다라니경을 꺼냈다가 다시 안치했으며, 고려 때 유행한 보협인다라니경을 새로 추가해서 넣었다고 기록돼 있다”며 “그러나 1038년 기록에는 무구정광다라니경과 보협인다라니경을 다시 넣었다고 기록돼 있다”고 했다.


그러나 1966년 석가탑에서는 무구정광다라니경과 보협인다라니경이 각각 하나씩만 나왔다. 때문에 현재로서는 석가탑에서 나온 무구정광다라니경이 신라 때 것일 수도 있지만, 고려 때 넣은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노 교수는 그러나 “설사 1966년 석가탑에서 나온 무구정광다라니경이 고려 때 나온 것이라고 할 지라도 신라 때 인쇄했던 것을 보물처럼 소장하고 있다가 이 때 다시 집어 넣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이승재 교수는 ‘석가탑 묵서지편의 지편 조립과 이두 판독’에서 “신라 때 넣은 것인지 고려 때 넣은 것인지 지금으로서는 확인할 수 없으며, 두 해석 모두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신라 때 넣은 것이 1966년 발견됐다면 왜 무구정광다라니경이 2권(고려 때 것을 포함해서)이 나오지 않았는지 설명할 수 없다.

  • ▲이승재 서울대 언어학과 교수가 무구정광다라니경의 제작 시기에 대해 논하고 있다. 그는 발표문에서는 통일신라-고려설 두 가지 다 가능하다고 했지만, 막상 발표 때는 신라설에 더 무게를 둔다고 했다./신형준 기자

또한 고려 때 넣은 것이라면 묵서지편에서 “신라 때 것은 사리장치에 그대로 넣었다”고 했는데 왜 신라 때 것은 발견되지 않았는지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발표문에서는 묵서지편 기록만으로는 무구정광다라니경이 신라 때 것인지 고려 때 것인지 판단할 수 없다”고 했다. 이 교수는 그러나 27일 오전 발표 때는 “금동제사리외함 안에서 무구정광다라니경이 나왔고 보협인다라니경은 금동제 사리외함 밖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그리고 신라 때 사리함에 넣은 유물은 그대로 다시 넣었다는 점 등을 볼 때 무구정광다라니경은 신라 것으로 본다”고 했다.


발표자들은 “무구정광다라니경을 실제로 조사해야만 제작 연대를 밝힐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날 종합토론에 참석한 천혜봉 성균관대 명예교수(서지학), 박상국 문화재위원(서지학) 등은 “무구정광다라니경은 서체나 종이의 재질 등으로 볼 때 통일신라 때 것으로 봐야만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종합토론회에 참석한 이들은 “지금 당장 무구정광다라니경의 시기를 명확히 과학적으로 밝히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데 동의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지난 3얼 28일 무구정광다라니경의 제작 시기와 관련한 논란이 계속되자 기자회견을 열고 “무구정광다라니경이 통일신라시대에 제작됐다는 사실을 뒤집을만한 증거는 없다”고 했다. 그러나 국립중앙박물관이 의뢰한 조사에서, 무구정광다라니경 제작 시기 해석의 열쇠를 쥐고 있는 묵서지편만으로는 제작 시기를 통일신라인지 고려인지 못박을 수 없다는 해독 결과가 제기된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은 어떤 입장일까?


“지난 3월 28일과 비교해서 국립중앙박물관의 현재 입장을 밝혀달라”는 질문에 국립중앙박물관은 공식석상에서는 답하지 않았다. 조사보고회가 끝난 뒤 이 박물관 이내옥 유물부장은 “위원회에서 조사 중이니까 위원회의 조사를 계속 지켜보고 연구를 계속하겠다”고 했다.

  • ▲무구정광다라니경 제작 시기와 관련해 해석의 열쇠를 쥐고 있는 묵서지편이 해독돼 27일 공개됐다. 발표자인 이승재 서울대 언어학과 교수와 노명호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는 신라제작설과 고려제작설 모두 가능하다고 했다./신형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