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스펀 전 의장이 한국의 외환위기 가능성을 알게 된 것은 일본은행을 통해서였다. 일본은행 고위간부는 1997년 11월 FRB에 전화를 걸어 "댐이 붕괴되고 있다. 이제 한국 차례다"고 경고했다. 그는 "일본 은행들이 한국에 대한 수백억 달러의 대출을 연장해주지 않으려고 한다"고 전했다.
그는 "그것은 충격이었다"며 "아시아의 괄목할 만한 경제성장의 상징이었던 한국은 당시 경제규모가 러시아의 2배였다. 경제 지표로도 한국 경제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미국은 당시 한국의 외환보유고가 250억 달러로 금융위기에 맞서기에 충분한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우리가 몰랐던 것은 한국 정부가 비밀리에 외환보유고의 대부분을 민간은행에 팔거나 빌려줬으며, 민간은행은 외환보유고를 악성대출을 유지하는데 사용했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한국 경제는 태국이나 말레이시와는 비교가 될 수 없을 만큼 크기 때문에 한국 외환위기에 대해선 그린스펀 전 의장 본인이 직접 대응책 마련에 깊숙이 개입했다.
이에 따라 FRB와 미 재무부는 전 세계 주요 은행과 중앙은행에 일일이 전화를 걸어 "한국에 대한 대출을 회수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고 그린스펀 전 의장은 소개했다.
이 같은 요청 전화는 워낙 시간을 다투는 전화여서 시차를 고려하지 않고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많은 중앙은행 총재들과 재무장관들의 수면을 방해할 수밖에 없었다는 게 그린스펀 전 의장의 설명.
그는 "일각에선 한국에 대한 대규모 구제금융에 대해 도덕적인 해이를 부추긴다고 지적할 수 있지만 한국과 같은 규모의 국가에 대해 '디폴트'(채무불이행)를 허용하는 것은 일본 주요 은행을 파산시키는 등 전 세계 금융시장을 혼란을 빠뜨렸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한국은 (디폴트를 허용했을 때) 군사적인 위험마저 크다는 점도 문제였다"고 밝혀 당시 미국 정책 결정자들이 한국의 외환위기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남북 대치상황도 주요 변수로 고려했음을 내비쳤다.
그린스펀 전 의장은 한국, 싱가포르, 대만, 홍콩 등 이른바 아시아의 네 마리 호랑이가 이제는 1997년의 금융위기사태와 같은 경제위기를 겪을 것 같지 않다고 내다봤다.
그는 "아시아의 의 네 호랑이는 외환보유고 부족을 극적으로 개선했고 달러에 대한 고정환율제도를 폐기해 예상치 못한 경제적 충격을 훨씬 용이하게 흡수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네 호랑이의 경제정책 모델에서 중요한 것은 투자자들이 성공하게 되면 많은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줬다는 점"이라며 "중국의 수출주도 경제성장 전략도 아시아 네 호랑이의 성공적인 모델을 뒤따른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린스펀 전 의장은 한국 등 4개국의 향후 경제에 대해 "앞으로도 지속적인 성장이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다만 전 세계적으로 무역자유화에 대한 정치적인 반대 압력도 거세지고 있어 수출 주도 경제인 이들 4개국의 성장속도는 이전보다는 둔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뉴욕=공종식특파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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