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대 美대륙 울린 ARIRANG
음반 발매된지 1주일만에 ‘이주의 앨범’ 선정 인기
재즈-반전가요로도 불려… “세계인의 멜로디 입증”
1946년 어느 날. UP 통신사 기자로 한국을 찾은 스탠 리치 씨는 국제적십자사 직원 도리스 로지먼 씨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고백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둘은 꼭 껴안았다. 그때 누군가가 흥얼거리는 애절하고도 서정적인 가락이 들렸다. 로지먼 씨가 설명했다. “아리랑이에요. 떠나간 임을 그리는 사랑의 노래예요.”
뭉클해진 리치 씨는 노트에 멜로디를 옮겨 적었다. 미국으로 돌아간 그는 몇 년 뒤 음반사를 찾았다. 우연하게도 그 자리에 당시 떠오르던 가수 엘리 윌리엄스가 왔다. 악보를 본 윌리엄스는 멜로디를 흥얼거렸다. “이 노래, 제가 부르고 싶어요.”
“아리랑 아리랑, 바다 건너 멀리 있는 우리 연인의 노래를 부르네… 그는 사랑을 가르쳤다네, 그리곤 멀리 가버렸지/그가 울었을까, 날 생각하며 잠들었을까… 아리랑 아리랑 바다 멀리 떠난 우리 연인의 노래를 부르네.”
1954년 EP(Extended Play·도넛판)로 발매된 ‘아디동(아리랑)’ 앨범은 발매 1주일 만에 현지에서 ‘이 주의 앨범’으로 선정되면서 인기를 끌었다. 음반 이름은 2년 전 재즈 연주자 오스카 페티포드(1922∼1960)가 아리랑에서 모티브를 따와 발표한 ‘아디동 블루스(Ah De Dong Blues)’를 인용한 뒤 괄호 안에 아리랑으로 명기한 것이다. 당시 윌리엄스는 아리랑을 “2500만 한국인의 가슴속에 살아 숨 쉬는 노래”라고 소개했다.
이 같은 사실은 정선아리랑연구소 진용선 소장이 20일 공개한 윌리엄스의 ‘아리랑’ EP반 원본과 악보, 아리랑을 부르게 된 사연을 소개한 음악잡지 ‘디스크’(1954년) 등 희귀 자료를 통해 밝혀졌다.
음반의 팸플릿에는 “아리랑은 고개에 앉아 떠나버린 연인을 노래한다. 아리랑은 그 고개의 이름이다. 그러나 지도에 보이지 않는, 상상의 고개다”라고 적혀 있다. 진 소장은 “아리랑은 본질적으로 떠난 임을 그리는 사랑 노래”라며 “아리랑고개에 대한 해석 등이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다”고 말했다.
○ 아리랑을 블루스로
진 소장은 페티포드가 1952년 발표한 ‘아디동 블루스’가 수록된 SP(Standard Play·유성기음반) 원판도 함께 공개했다. 페티포드가 아리랑을 연주한 사연이 재미있다. 그는 6·25전쟁 때 한국에서 위문공연을 했다. 야전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던’ 그는 통역관이 흥얼거리는 서정적인 멜로디에 매료됐다. 통역관은 ‘아리랑’이라고 말했지만 그는 ‘아디동’으로 잘못 알아들었다. 1954년 피아노 베이스 드럼 첼로의 합주가 일품인 ‘아디동 블루스’가 탄생했다. 그의 미국 내 순회공연 때마다 ‘아디동 블루스’가 울려 퍼졌다.
진 소장은 반전가수 피트 시거(1919∼ )도 6·25전쟁 때 한국에서 아리랑을 들었다고 말했다. 1950년대 발표한 노래 ‘Ariran’의 내레이션에서 그는 “아리랑을 함께 부르는 남북이 왜 분단돼 총부리를 겨누는지 모르겠다”며 안타까워했다.
○ 19세기 말 서양에 처음 알려져
아리랑이 서양에 처음 알려진 것은 19세기 말.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미국인’으로 알려진 호머 헐버트(1863∼1949) 박사는 구전으로 전해오던 아리랑을 1896년 서양식 오선지에 처음 채보해 외국에 알렸다.
윌리엄스의 음반이 나온 지 53년. 이번에는 엔딩 장면에 ‘아리랑’을 넣은 심형래 감독의 영화 ‘디 워’가 미국의 2200여 개 관에서 개봉했다. 김민구 조감독은 “지난해 시애틀 오케스트라와 아리랑을 녹음할 때 외국 연주자들이 애절한 슬픔이 느껴지는 천재적인 노래라며 작곡자를 물어올 정도였다”고 전했다.
진 소장은 “아리랑은 국내에서 천대받던 시절에도 이국땅에서 애절한 서정시나 반전의 노래로 재해석돼 불렸다”며 “이는 아리랑이 세계인이 공감할 멜로디라는 증거”라고 말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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