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세상사는 이야기

정상 참작이라는 것

淸潭 2007. 8. 4. 18:59

아내의 내연남 칼로 살해한 남편 어떻게 됐을까

 

아내의 내연남을 부엌칼로 찔러 죽인 남편이 원심과 항소심에서 모두 집행유예(5년) 판결을 받았다. 과실치사나 상해치사도 아닌, 살인 사건에 대해 집행유예 판결이 나온 것은 극히 드문 일. 가정폭력과 부부 간 살해 사건을 전문적으로 지원해 온 여성단체와 변호사들은 이 판결이 한국 사법부의 남성 중심주의를 뚜렷하게 내보인 ‘가해자 온정주의’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번 판결은 법원이 정당한 사유가 있으면 살인을 해도 좋다고 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 살인 형태는 분명 계획 하에 고의에 의한 살인인데, 모욕이란 동기를 인정해 집행유예 판결을 내린 것은 결과적으로 사적 응징을 허용한 것이죠.”

배금자 변호사(해인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경제력과 성적 능력이 없는 남편이 받은 모욕감을 정상 참작했다는 점에서 분명 남성중심의 시각이 깔려있다”고 비판했다.

사건은 지난 1월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노점상 A(45)씨는 당뇨병으로 부부생활이 곤란했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웠다. 아내 B씨(41)는 외박을 하거나 술을 마시고 늦게 들어오는 일이 많아졌다. B씨는 다른 남자가 있으며 성관계도 가졌다며 이혼을 요구했다. A씨는 아직 어린 아이들 때문에라도 이혼할 수 없다고 거부했다.

사건이 벌어진 것은 2월 11일 새벽. 전날 밤 아내는 남편에게 노점 뒷정리를 맡기고 술 약속이 있다고 나갔다. 아내는 내연남과 만나고 있는 술자리에서 실수로 휴대폰 통화버튼을 눌렀고, 그 전화가 걸려간 곳은 바로 자신의 집이었다. 전화를 받은 남편은 아내와 내연남 C씨(44)의 대화를 중계방송 듣듯이 고스란히 듣게 되었다.

C씨는 B씨가 아이들 문제로 고민하자 “아이들도 버리고 이혼해서 나와 살자”고 했고 이에 격분한 A씨는 부엌에 있던 식칼을 상의 안주머니에 넣고 이들을 찾아 나섰다. 마침내 한 식당에서 이들을 찾아낸 A씨에게 C씨가 욕을 하자 A씨는 분을 못 이기고 그를 4차례 찔러 살해했다.

원심 판결에서 재판부(서울북부지법·부장판사 김경선)는 “살인의 확정적 고의로써 범행한 것”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아내가) 모욕적인 태도로 이혼을 요구하여 피고인을 심하게 괴롭힌 점” “분노가 폭발하여 순간적으로 이성을 잃고 다분히 우발적으로 범행에 이르게 된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들어 “피고인의 정상을 충분히 참작할 필요가 있다”며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검찰은 바로 항소를 제기했다. 항소심을 맡은 서울고등법원 제3형사부(부장판사 심상철)는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고 전제하면서도, “분노가 폭발하여 이성을 잃고 범행에 이르게 된 점” 등을 참작하면 “원심의 선고형이 너무 가벼워서 부당하다고 인정되지 않는다”며 항소 기각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의 남성 편향 비판에 대해 서울고등법원의 한 판사는 “남성이라는 이유로 달리 판결한 것이 아니라, 피해자가 다른 사람의 가정을 깬 제 3자인데다 사고 현장에서 가해자에게 욕을 하는 등 가해자의 감정을 폭발하게 만든 것을 정상 참작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가해자가 가정을 지키려 한 점을 무엇보다 중시했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가정폭력과 부부간 살해 사건 법률 지원을 해오고 있는 ‘서울여성의 전화’는 그러나 이 판결의 핵심 쟁점은 가정, 부부와 관련한 살인 사건에서 범행의 고의성, 우발성, 정상참작 여부가 남녀에게 차별적으로 적용되는 점이라고 지적한다. 서울여성의전화 인권운동센터 정원씨는 “우리 검찰과 법원은 가정폭력 관련 배우자 살해 사건에서 아내가 남편을 죽이면 살인 사건으로 보지만 남편이 아내를 죽이면 ‘우발적’인 상해 치사로 판단하는 성차별적 법 적용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