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세의 영웅들 후안무치 처세술…‘모략의 즐거움’
중국 당나라 시대에 독특한 책이 한 권 있었다. ‘나직경(羅織經)’이란 제목의 이 책에는 자신의 출세를 위해 짜낼 수 있는 온갖 권모술수의 모략이 빠짐없이 서술되어 있었다.
높은 자가 총애하는 자에게는 아무리 지위가 낮아도 무조건 머리를 숙일 것, 변화무쌍한 아이디어로 군주를 즐겁게 할 것, 난세에는 유능한 사람을 고용하되 천하가 안정되면 이들을 제거할 것….
대의명분을 중시하던 사대부들로서는 차마 읽기 민망한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결국 “죄를 조작하여 선량한 사람을 함정에 빠뜨리는 것이 이 책을 지은 목적이니 세상 사람들이 읽지 못하게 할 것이다”는 기록(당회요)과 함께 ‘나직경’은 세상에서 사라져 버렸다.
저자 마수취안은 당나라 사람 만국준이 베낀 필사본을 발견해 천 년 이상 소실된 상태로 이름만 전해지던 ‘나직경’을 되살렸다. 부활한 ‘나직경’을 통해 드러난 중국 영웅들의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다.
황제가 되기 위해 겉과 속이 다른 모습을 보인 당 태종, 출세를 위해 죽마고우를 배신한 장거정, 명성을 위해 명망가 집안 자제들과 어울린 왕안석 등의 모습은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영웅호걸과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그들이 그토록 경멸하던 간신배의 모습에 가깝다. 이런 이중적인 모습을 통해 과연 충신과 간신의 기준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나직경’이 쓰인 때는 중국 역사상 유일한 여황제인 측천무후의 시대. 측천무후는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당의 종실과 공신들을 무참히 살해하고 반대파를 처단하기 위해 밀고를 장려했다. 원저자인 내준신은 이러한 방법으로 측천무후에게 중용된 사람이었다.
마수취안은 “악독한 취지의 ‘나직경’이었지만 독자들에게는 처세서로 남길 바란다”고 썼다. 그러나 난세가 아닌 시대가 어디 있으랴. 다양한 ‘모략’의 수법은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애용되고 있음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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