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문학/책 속의 향기

남’들로 짜집기된 ‘나’를 해체하라

淸潭 2007. 3. 10. 09:58

남’들로 짜집기된 ‘나’를 해체하라

 

  • 몽타주 최수철 소설집|문학과지성사 506쪽|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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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습화된 소설의 문법을 벗어나 새로운 소설 언어를 탐구해온 작가 최수철(49·사진)이 10년 만에 소설집을 냈다. 맨 앞에 실린 단편 ‘몽타주’를 비롯해 ‘메신저’ ‘창자없이 살아가기’ ‘거인’등 9편을 묶었다.

      단편 ‘몽타주’는 이야기의 사실성에 집착하지 않으면서 이야기 속에서 이야기를 해체하는 최수철 소설의 특징을 보여주는 최신작이기 때문에 책표지를 장식했다. ‘서른일곱번째 생일을 맞던 날 나, 윤세화는, 나 자신의 삶이 누군가 다른 사람들의 삶, 다른 사람들의 모습으로 짜깁기 되어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고 시작하는 이 소설은 화자 윤세화의 독백으로 전개된다. 독백체 소설은 3인칭 시점의 소설에 비해 화자에게 폭 넓은 자유를 준다. 화자가 떠드는 대로 작가가 받아썼다는 인상을 독자에게 준다. 최수철은 독백체 소설의 자유를 적극 활용해 사실주의 소설의 원칙을 무너뜨린다. 화자의 현재와 과거, 일상과 환상, 체험과 추측이 뒤엉킨 채, 말 그대로 그 모든 것들의 몽타주를 거쳐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 소설의 화자 ‘나’는 경찰의 의뢰를 받아 용의자의 인상착의를 그리는 몽타주 화가다. 그 분야에서 일급으로 평가받지만 ‘나’는 어느날 연쇄살인사건에 직면한 뒤 정확한 몽타주를 그려내지 못하는 어려움에 빠진다. 세 명의 희생자가 처참한 상태로 발견된 사건이다. 목격자들도 숱하게 나타나지만 ‘나’는 제대로 된 몽타주를 떠올리지 못한다. ‘나’는 백일몽과 악몽과 환각에 시달리면서 자신의 진짜 이미지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부딪친다.

      이 소설은 욕망이 이미지의 탈을 쓰고 돌아다니는 시대 속에서 모든 개인성은 타인들이 만들고 유포한 이미지들의 몽타주에 불과하지 않는가라고 묻는다. 모든 ‘나’는 무의식 속에 걸어둔 거울에 비친 ‘나’를 바라보면서, 원하는 인물상들을 짜깁기해서 ‘나’의 얼굴을 만드는 욕망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 무의식 속의 욕망의 거울은 처음부터 깨진 거울이다.

      이 소설은 깨진 거울처럼 분열된 상태로 전개된다. ‘나’가 무의식 속에서 누군가를 시켜 세 명을 살해했다는 망상을 보여주다가, 느닷없이 ‘나’가 꿈 속에서 그린 몽타주 덕분에 살해범이 경찰에 붙잡히는 꿈을 꾸고, ‘나’는 자신의 몸을 재인식하면서 어딘가로 떠나는 이야기가 중첩된다. 의식의 흐름을 좇은 서구 모더니즘 소설, 남미 소설의 마술적 리얼리즘, 전근대적 괴담, 사이코 드라마가 가미된 헐리우드의 스릴러 영화 등이 짜깁기된 소설인 것이다. 그리고 독자들은 흩어진 이야기 조각들을 짜깁기해서 읽어야 한다.

      소설집 ‘몽타주’는 밀도 높은 한국적 단편 소설 양식에 남미의 마술적 리얼리즘이 융합된 상상력의 불꽃놀이를 보여주는 단편들로 구성됐다. 경쾌하고 발랄한 이미지의 서사가 지배하는 시대에 무겁고 진지한 최수철의 소설을 읽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작가는 반성(?)하지 않는다. 오히려 “팔리지 않는 책이, 세속의 논리에 저항하는 책의 고유한 가치를 고수하지 않으면, 이 감각과 이미지의 시대에 누가 책을 읽을 것인가”라고 항변한다.